이 정도면 ‘신세계’라 할 만하다. 회사 눈치 보면서 원천징수 서류를 뗄 필요도 없고, 점심시간을 쪼개 은행 영업점을 찾지 않아도 된다. 클릭 몇 번이면 15분도 안 돼 ‘금리가 더 싼 대출’로 갈아탈 수 있다. 갈아탈 수 있는 한도도 10억원까지니 웬만하면 모두 가능하다. 개인정보 동의를 하면 내가 이용 중인 대출이 금융사 3곳까지 자동 조회되고,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을 찾아준 뒤 갈아타기까지 앱에서 완료할 수 있다.
당국과 금융업계가 지난 5월 31일 세계 최초로 출시한 ‘대환대출 플랫폼’ 이야기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출시 일주일 만에 8936건의 대출이 이동하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대출 금액으로 치면 2346억원이다. 지금은 신용대출만 대상인데, 업계에서는 이 대환대출 시장만 1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간 신규 신용대출 100조원 중 약 10%가 이동할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1000조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도 이르면 연말부터 대환 인프라에서 취급할 예정이다.
대환대출로 가장 효과를 본 이용자는 2금융권에서 1금융으로 갈아탄 사람들이다.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사례에 따르면 저축은행에서 은행으로 갈아타면서 8% 넘게 이자를 낮춘 경우도 있었다. 대출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달 이자만 10만원 이상 줄어든다. 이들은 금리를 내린 것은 물론, 1금융권 대출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신용점수도 수십 점 이상오르는 효과를 봤다.
2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쪼개서 대출을 받고 있던 다중채무자들도 한 곳으로 몰아 대출을 받으면서 신용점수가 올랐다. 40대 직장인 오 모 씨는 “이번에 1금융권 한도가 나와서 저축은행과 카드사 대출을 정리할 수 있었다. 대환대출 조회를 해보지 않았다면 한도가 나오는 줄도 몰랐을 텐데 간편하게 이자를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출시 초기에는 신용점수가 내려간 사례도 일부 있었다. 기존 대출을 갚은 것은 신용점수에 늦게 반영되는 반면, 신규 대출은 바로 반영되는 시간차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6월 30일부터 대출을 갈아타도 신용점수에 변동이 없도록 조치했다. 기존에 하락한 신용점수도 원상회복된다. 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으로 대출을 추가로 받기 위해 은행권 신용대출을 2금융권 상품이나 더 높은 금리로 갈아탈 경우 신용점수가 떨어질 수 있다.
대환대출 인프라에는 53개 금융사와 23개 대출비교 플랫폼 회사가 참여했다. 주거래은행이나 선호하는 회사 앱에서 대출 갈아타기 메뉴를 클릭해 이용하는 방식이어서 ‘접근성’이 중요한데, 초반 승기는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토스 등 빅테크가 잡았다. 카카오페이에는 유일하게 5대 시중은행이 모두 입점했으며,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사전신청을 받은 토스에는 40만명이 넘게 몰리기도 했다. 뱅크샐러드도 일주일 만에 대출고객이 98% 늘었고, 최대 13% 이상 금리를 절감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은 금리 감면과 현금 지원 이벤트를 내놨다. 이에 힘입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월 한도인 333억원을 일찌감치 소진했다. 인터넷 은행 중에는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가 한도를 모두 채웠다. 출시일주일도 안 돼 한도가 동나면서 금융당국은 당분간 따로 한도를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상황을 지켜본 뒤 연간 한도를 늘릴지, 연간 한도는 그대로 두되 월간 한도를 없앨지 등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아직 출시 초기이고 연동 금융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빅테크와 주거래은행, 다른 대출비교 플랫폼 등에서 두루 조회해보면 갈아탈 상품을 찾을 확률도 높아진다. 대환대출 인프라에서 갈아탈 상품을 조회하는 것은 신용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용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DSR 규제다. DSR을 초과하는 차주들은대환대출 인프라에서 아예 상품 조회가 안 된다. 출시 첫날부터 갈아탈 상품을 조회해봤다는 윤 모 씨는 “금리가 더 낮은 상품으로 갈아타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DSR 초과라고 기회조차 안 주는 건 너무하다”고 말했다. 윤 씨의 경우 1금융권에서만 대출을 받고 있는데, 더 높은 금리의 저축은행 상품만 안내됐다. DSR을 초과해 1금융권에서 대출이 추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부터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을 경우 DSR을 제한하고 있다. 연소득에서 연간 원리금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정해둔 것인데 은행권은 40%, 2금융권은 50%를 적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취약 차주 10명 중 6명이 DSR 제한에 걸려 있다. 대출 갈아타기가 가장 절실한 계층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당국은 DSR 규제 완화에 미온적이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정책 기조가 분명한 데다 규제를 풀어줄 경우 자칫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과다채무자만 늘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도한 다중채무, 대부업권 대출, 연체나 압류 및 거래 정지, 법률 분쟁, 채권 조정 등에 관련된 대출은 대환이 불가능하다.
수요가 많은 2금융권과 카드론 대환이 활발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당국에 따르면 갈아타기 사례 중 90%는 같은 업권 내 이동이었다. 신용점수와 기존 대출 등을 고려할 때 2금융권에서 1금융권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업권 간 장벽을 낮추고 경쟁을 유도해 금리를 낮추겠다는 것이 당초 취지였지만, 업권 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2금융권과 카드사들의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다. 조달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굳이 대환대출을 유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카드론의 경우 중개수수료 부담 때문에 파격적인 금리 인하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현재 주요 카드사의 카드론 평균금리는12.87~14.56%(4월 말 기준) 수준이다.
실제로 대환대출 인프라 출시 이후 카드사들은 소위 ‘우량고객’을 인터넷 은행 등에 대거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한 카드사 고객은 19.9% 금리로 쓰고 있던 카드론을 인터넷은행 신용대출로 갈아타면서 금리를 14.06%나 낮췄다. DSR 규제 등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론을 썼던 고신용 대출자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7월부터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카드론 세부자료가 포함되면서 모든 카드론을 조회하고 갈아탈 길이 열렸다. 업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카드론 대환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알짜고객’ 유치를 위해 신용대출 한도를 높이고 있다. 토스뱅크는 대환대출 인프라 오픈에 맞춰 2억7000만원이던 최고 한도를 3억원으로 늘렸다. 의사, 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시중은행 ‘전문직론’ 한도가 3억~5억원 수준임을 감안한 것이다. 같은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도 3억원까지 한도를 높여놨다. KB국민은행 ‘온국민 신용대출’도 기존 상품보다 한도를 5000만원 높여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대환대출 플랫폼에서는 카드사 대출 한도도 조금 더 오른다. 카드사들은 그동안 대출자 소득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해왔는데, 당국은 대환대출 플랫폼 취급 대출에 한해 소득인정 비율을 높여주기로 했다.
지방은행들도 핀테크와 손잡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핀다에 따르면 모 저축은행에서 연 16% 금리로 4500만원을 빌린 고객이 연 8.13%의 광주은행 대출로 갈아탄 사례가 나왔다. 핀다와 토스에는 5대 지방은행(부산, 대구, 경남, 광주, 전북)들이 모두 입점했다. 시중은행에 비해 영업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지방은행들이 핀테크업계와 손잡고 대환대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당국이 이르면 연내 주택담보대출 대환대출도 시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금융사들은 벌써 긴장하는 분위기다. 주담대는 신용대출보다 훨씬 금액이 크기 때문에 작은 금리인하 효과에도 자금이 크게 쏠릴 수 있다. 게다가 장기대출이다보니 금리를 1%만 낮춰도 1인당 총 대출이자 감면 효과는 ‘억대’가 된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전쟁’이 따로 없다. 5월 말 기준 5대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77조6122억원이다. 건당 3억~5억원도 흔한 주담대가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많게는 수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업계에서는 특히 인터넷은행 3사가 적극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거래 서류들이다. 근저당권 설정, 주택 소유권 이전등기 등 집을 사고팔 때 필요한 서류들을 100% 비대면 플랫폼에서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다. 상대적으로 가격 확인이 쉬운 아파트 담보대출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신용대출과 달리 주담대는 중도상환 수수료도 무시할 수 없다. 통상 3년 내에 주담대를 상환할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를 내야 한다. 대출 잔액의 1.5% 내외인데, 금리 감면 효과가 이보다 적을 경우에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다.
대환대출이 인기를 모으면서 ‘피싱 사기’도 등장했다. 사기범은 ‘신용 정보 조회’를 위해 모바일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면서 카톡으로 압축파일을 보내고, 이 파일을 내려받으면 스마트폰이 범죄조직에 장악되는 수법이다. 대출 신청서 특성상 직장, 연봉, 주소지,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이 모두 기재되기 때문에 각종 금융 사기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
대환대출 인프라가 ‘100% 비대면’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대환대출은 7개 플랫폼과 35개 금융사 앱을 직접 내려받거나 금융사 창구를 방문해야 가능하다. 전화나 문자, 카톡 메시지로 대환대출을 권유하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특히 메신저나 문자로 특정 앱이나 압축파일을 다운받으라고 링크나 파일을 보내는 경우는 100% 사기이므로 주의해야한다.
매일경제 금융부 신찬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