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PI(소피)라는 동네가 있다. 사우스 피갈(South Pigalle)의 앞 두 글자를 딴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먼저 뉴요커 스타일 축약어로 명명된 구역이기도 하다. 피갈(Pigalle)은 캉캉춤으로 유명한 카바레 물랑루즈가 위치한 파리의 대표적인 유흥지역이자 홍등가인데, 피갈지구 남쪽과 파리의 중심 번화가 오페라지구 북쪽 사이에 음악, 패션, 예술에 종사하는 요즘 말로 힙한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뉴욕의 소호(SoHo)에 빗대어, 2006년 뉴욕타임스가 처음 이름을 붙였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위치한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소피를 가장 파리답게 즐기는 방법.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들으며, 좁은 골목 돌길(Voie Pie‘ tonne Pave’ e)을 자전거로 달려보자. 돌길에 자전거가 덜컹 거릴 때마다 19세기에 지어진 신고전(Neo-Classic) 스타일의 건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빵빵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도 샹송과 어울리며 파리만의 독특한 배경음(BGM)이 된다. 2023년에 무슨 1940년대 샹송 가수냐고 반문을 제기한다면, 최근 주목받는 파리 감성 충만한 가수, 소개한다. 바로 스텔라 장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추억을 배가시키기 충분하다. 가장 파리다운 외형 안에서 가장 힙하게 변화하는 동네 소피를 많이 닮았다. 그녀가 노래한다. ‘누군가에게는 마법이겠지만, 사랑이고 바게트겠지, 파리.’
특정 브랜드여서가 아니라, 파리 하면 떠오르는 빵. 바로 오늘의 주제다. 바게트.
바게트는 프랑스어로 막대기라는 뜻이다. 어원은 라틴어 지팡이(baculum)인데, 스텔라 장이 노래한 복수의 ‘레 바게트(Les Baguettes)’는 젓가락이라는 단어로도 사용될 만큼, 바게트는 가늘고 긴 형태가 특징이다. ‘어원이 라틴어인 걸 보니, 바게트의 역사도 프랑스만큼 오래됐겠다’라고 생각한다면,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반전이다. 프랑스에서 1년에 소비되는 숫자가 100억 개에 이르는 이 프랑스 국민 주식의 출발,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기 때문이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중의 외침,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마리 앙뜨와네트의 확인되지 않은 구설, 그리고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이야기까지, 프랑스 대혁명의 서사는 빵으로부터 시작된다.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일반 노동자들은 생존에 필요한 칼로리의 80%를 빵에서 얻었고, 하루 섭취량은 1.4㎏에 달했다고 한다. 보통 하나의 빵으로 1주일 정도 버텼다고 하니, 빵 하나가 지금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장발장이 훔친 빵은 제과점의 단팥빵 하나이기보다 우리 정서에서는 쌀 한 가마니 정도를 훔친 것으로, 당시 위정자들 기준에서 볼 때 사회 혼란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중죄로 인식되었을 것 같다.
한편, 당시 빵의 모양은 현재 프랑스에서 시골의 빵(Pain de campagne)으로 불리는 둥근 모양의 캉파뉴를 닮았는데, 껍질도 제대로 벗기지 않은 호밀과 여러 곡식으로 만들어 시커멓고 도끼로 찍어 내려야 쪼갤 수 있을 만큼 딱딱했다고 한다. 반면에 귀족들은 하얀 밀가루에 버터를 넣은 촉촉한 빵을 먹으며, 노동자들과의 차별성을 각인시키려 했고, 빵은 당시 계급을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 급기야 1788년에서 1789년까지 이어진 2년간의 흉년으로 하루 빵값이 노동자 하루 일당의 88%까지 폭등하자, 프랑스 혁명을 이끈 국민공회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빵의 평등권(un pain de l’e‘ galite’ )’을 법으로 제정한다. 이 법에 따라, 제빵업자들은 시민 모두를 위해 밀가루 4분의 3, 호밀 4분의 1을 혼합한 한 종류의 빵만을 만들어야 했으며 빵에 대한 배급제도 시행되었다. 특히 빵의 평등권 9조에는 제빵업자가 규정되지 않은 빵을 만드는 경우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경고 조항을 둠으로써 그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비로소 프랑스 국민은 누구나 평등하게 같은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빵의 소비에 대한 권리는 빵을 만드는 노동자, 제빵사들의 권리 보장으로 나아간다. 빵은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3시간마다 한 번씩 효모를 넣어 주어야만 해서 새벽에 빵을 공급하기 위해 제빵사들은 밤을 새워야 했다.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1919년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 제빵사들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데, 3시간마다 효모를 추가하지 않아도 빵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둥근 빵의 모양을 기다랗게 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며, 단순히 빵(pain)이라 불리던 프랑스 국민 주식은 막대기라는 뜻의 바게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권리를 보장받은 제빵사들의 노력 때문일까, 평등하기에 평범할 것이라는 도식을 깨고, 바게트는 모두에게 맛있는 빵으로 발전해나간다. 밀가루, 물, 효모, 소금만을 사용하는 전통 제조 방식은 1993년 ‘프랑스 빵 법(Le De’ cret Pain)’으로 제정되어 보호받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역사와 함께 바게트는 길이 80㎝, 무게 250g의 마법으로 불리며, 2022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에서는 매년 최고의 바게트 장인을 뽑는 행사(Concours de la meilleure baguette de Paris)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프랑스 대통령 집무실이자 관저인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1년 동안 납품하게 되고, 자신의 빵집에 ‘최고 바게트 명인(1er Prix Meilleure Baguette Paris)’이라는 문구를 영예롭게 걸 수 있다. 4개의 단순한 재료와 규격화된 제조법 속에서도 장인의 정성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바게트의 질적 성장을 장려하기 위한 대회라는 평가다. 최근 한국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파리의 서용상 제빵사도 2013년도 이 대회 우승자 출신이다. 가장 전통적인 프랑스를 새롭게 구현하는 별들. 19세기와 21세기를 조화시킨 소피지구처럼, 한국적인 음색으로 가장 샹송다운 노래를 부르는 스텔라 장처럼, 프랑스 혁명의 평등 가치를 가장 잘 반죽하는 서용상 제빵사처럼. 사랑, 바게트, 그리고 파리, 오늘도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