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기에는 대출 이자 부담 때문에 은행을 멀리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주식 투자 관점에선 은행주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투자자들에게 금융주는 통상 ‘사지선다형’으로 요약되는데 그 대상은 바로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이다. 이들은 나란히 지난 1분기(1~3월)에 사상 최대 실적을 공시하면서 ‘금리 인상=실적 증가’라는 공식을 재확인했다. 순이익이 가장 높은 ‘리딩뱅크’는 KB금융이 차지했고 신한금융이 그 뒤를 이었지만 앞으로는 그 판도가 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식 시장이 약세로 돌입하면서 거래량이 줄고 금융지주 내 증권사의 실적이 퇴조하는 것은 KB·신한·하나금융의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되레 증권사가 없는 우리금융에겐 이런 리스크가 없는 상황이라 ‘역발상 투자’ 기회를 주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1분기 실적 1위는 KB
금융지주사들의 1분기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KB금융이 지주사 중 가장 많은 순이익을 올려 ‘리딩뱅크’ 자리에 올랐고 우리금융은 순이익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다만 금융지주들은 자회사인 증권사 실적이 감소하면서 은행 의존도가 한층 높아졌다. 여전히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를 통해 돈을 벌었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민심’은 나빠지고 있다.
KB금융의 1분기 순익은 1조4531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1조2700억원) 대비 14.4% 증가한 수치다. 주력 계열사 KB국민은행의 1분기 순익은 작년 1분기보다 41.9% 증가한 9773억원을 기록했다.
신한금융의 순이익은 올 1분기 1조40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5%(2085억원) 증가했다. 신한은행 홀로 순익이 2067억원(31.5%)이나 늘어난 것이 주된 상승 요인이다. SBJ은행(일본법인)과 현지 외국계 리딩뱅크로 도약한 신한베트남은행을 포함한 글로벌 부문 손익은 전년 동기 대비 34.5% 증가한 1295억원이었다. 반면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는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37.8% 감소했다. 증권 거래량 감소로 인해 증권수수료 이익이 줄어든 탓이다.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은행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1분기 55.1%에서 61.6%로 뛰었다. 이 같은 상황은 증권사가 있는 하나금융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금융은 올 1분기에 9022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 대비 순익은 8%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이 금융지주는 미래 손실 대비 준비금인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서 상대적으로 순익이 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이 1분기 순익 6671억원을 기록하며 그룹 순익의 74%를 책임졌다.
실적 이상으로 주목받은 것은 하나금융 이사회의 결정이다. 2005년 지주사 설립 이후 최초로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것이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수가 줄어 기존 주주의 주식 보유 가치가 올라간다.
우리금융은 5대 금융지주 중 실적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이 금융지주는 884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6671억원) 대비 32.5% 늘어난 수치다. NH농협금융은 상장사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실적이 감소했다. 작년 1분기 6044억원에서 올 1분기 5963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은 순익이 증가했으나 NH투자증권 등 다른 계열사들의 순익이 쪼그라들면서 그룹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지분 늘어나는 우리금융
횡령 사건 등 잡음에도 우리금융지주에 대한 투자 관심은 올 들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계속해서 지분을 줄이는 가운데 완전민영화에 성공했고, 외국인 주주 비중이 높아지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보는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나머지 우리금융지주 지분 매각에 나서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선 ‘오버행(대량 대기 매물)’ 이슈가 해소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전민영화에 이어 남은 정부 지분까지 감소하는 가운데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싱가포르와 미국을 잇달아 방문하며 일반 주주의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이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첫 해외 투자설명회(IR)다. 손 회장은 지난 5월 17일부터 2박 3일간 싱가포르에서 IR를 실시했다. 이번 일정은 당초 올해 1분기에 진행하려고 했으나 팬데믹 사태 탓에 5월로 연기된 것이다.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실시될 이번 해외 IR는 싱가포르 소재 해외 대형 자산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손 회장은 한국 거시경제 현황과 함께 우리금융그룹이 지주사 전환 후 달성한 재무 성과를 알렸다. 우리금융은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올 들어 5월까지 6%p 높아졌는데, 이번 IR로 하반기에도 지분율 상승을 노리고 있다. 업계에선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몸집 가벼운 하나금융
작년까지 우리금융지주의 문제는 은행이 순익의 80%가량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증권사나 보험사가 없다보니 은행 예대마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이 나오고 있는 올해는 우리금융지주가 가장 투자하기 좋은 은행주라는 얘기가 나온다. 금리 인상기엔 주식의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는 반면 은행들은 순익이 높아져 은행 의존도가 높은 금융지주사의 실적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은 올해 최대한 은행 위주로 실적을 쌓고 중장기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 건전한 포트폴리오를 짜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우리금융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내부등급법’ 최종 승인도 받았다. 내부등급법대로 자본 확충을 하면 종전 표준등급법 대비 더 많은 M&A 자금을 쓸 수 있다. 표준등급법은 위험가중자산을 평가할 때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하지만 내부등급법은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할 수 있게 돼 금융지주 입장에서 좀 더 자유로운 자금 운용이 가능하다.
우리금융의 첫 번째 타깃은 중소형 증권사다. 대형 증권사의 몸값이 높아진 가운데 지점이나 인력이 적을수록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일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점이나 인력이 많은 대형 증권사를 인수했다가는 수익성이 떨어져 전체 금융지주 ROE가 떨어질 수 있어 우리금융의 증권사 M&A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분기 순익 기준으로 1, 2위를 KB와 신한이 다투는 것은 최근 2~3년간과 다를 바 없지만 3위 싸움이 치열해진 것이 이례적이다.
1분기 기준 최대 실적으로 하나금융지주와의 우리금융지주의 순이익 차는 180억원에 불과하다. 언뜻 실적만 보면 하나금융의 3위 수성이 위태롭게 느껴지지만 속내를 보면 여전히 공고하다는 분석이다. 하나금융지주의 1분기 순이익은 희망퇴직 관련 대규모 일회성 비용(1759억원)과 대규모 대손충당금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런 일회성 비용을 빼면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이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향후 돈을 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쌓는 손실 대비 비용 대손충당금으로 봤을 때 하나금융지주는 가장 공격적으로 미리 비용을 반영했다.
우리은행의 충당금 적립액은 작년 1분기 755억원에서 올해 1분기 729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하나은행은 21억원에서 728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특히 하나은행은 그동안 지점 통폐합 등 조직 슬림화에 가장 성공한 은행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만큼 판매관리비 비중 부담이 다른 은행보다 낮은 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비용 부담이 낮은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런 조건에 맞는 은행주는 하나금융지주”라고 강조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KB금융그룹이 지난해 순이익만 4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첫 '4조 클럽'에 입성했다.
▶부채 리스크, 은행주 발목 잡나
금융지주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각 은행들이다. 은행이 부실 리스크에 노출된다면 이는 금융지주 주가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 4대 은행의 올해 1분기 실적과 대손충당금을 비교해본 결과 우리나라 은행의 충당금 적립 수준은 미국에 크게 못 미쳤다. 국내 은행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을, 미국은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웰스파고, 씨티그룹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올 1분기 1852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 1분기(2123억원)보다 12.8% 감소한 수치다. 금리 인상과 충당금 등 비용 감소로 올 1분기 4대 은행 순익은 작년보다 34.5% 증가한 2조6019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오는 9월로 끝난다. 그동안 금융 혜택을 받던 이들이 10월부터 이자를 갚아야 하고, 이와 함께 경기가 꺾일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어 부실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부실 가능성이 높은 이자 상환 유예 규모는 5조원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 위험이 커지면 충당금을 늘리는 게 맞는데 국내에선 정반대 상황”이라며 “대출 규모에 비해 충당금 수준도 지나치게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은행들은 실적을 손해 보면서까지 올해 충당금을 대폭 늘려 국내와 대조를 이뤘다. 올 1분기 이들 은행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1조1969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은행(1852억원)보다 6.5배 많이 쌓으며 미래 부실에 대비하고 있다. 총대출 대비 충당금 비중을 뜻하는 대손비용률을 보면 미국과의 격차가 더 분명해진다.
미국 JP모건의 대손비용률은 올해 1분기 기준 0.1%인 데 반해 국내 ‘리딩뱅크’ 국민은행은 JP모건의 5분의 1 수준인 0.02%에 그쳤다. 국민은행은 작년 1분기에 충당금 662억원을 적립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195억원으로 크게 줄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