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다. 괜한 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수(5122만명)의 20%를 넘어섰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옆 나라 일본은 10년, 독일은 36년, 프랑스는 39년 걸린 일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성한 셈이다. 당연히 ‘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관련해 기대수명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며 건강수명을 늘리려는 노력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08년 80.83세에서 2020년 84.55세로 늘었다. 2020년 기준 남성은 81.48세, 여성은 87.38세다. 최근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이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건강보험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을 살펴보면 기대수명에서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기간을 제외한 건강수명은 2008년 68.89세에서 2020년 71.82세로 2.93년 늘었다. 여성은 73.98세, 남성은 69.43세로 여성의 건강수명이 남성보다 4.55년 길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수명은 늘었지만 기대수명이 건강수명보다 길어지면서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사는 기간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단순 계산하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는 2008년 11.94년에서 2020년 12.73년으로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소득수준에 따라 건강수명의 격차도 약 9년이나 차이가 났다. 건강보험료 부과액에 따라 소득을 5개 분위로 나눠 비교·분석한 결과, 최고소득층의 건강수명은 74.88세로 최하위 저소득층(66.22세)보다 8.66년이나 길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강이 키워드로 떠오르며 ‘느리게 늙기’, 이른바 ‘저속노화’가 트렌드가 됐다. 쉽게 말해 달력상의 실제 나이보다 신체 나이를 최대한 젊게 만드는 활동이다. ‘9988234’란 건배사처럼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는 바람도 한몫했다. 그럼 초고령화시대에 노인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걸까. 저속노화란 개념을 유행시킨 정희원 서울 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교수)는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에서 “생물학적, 의학적, 사회적 의미를 모두 종합해보면 2022년 시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노인 기준은 여성 73세, 남성 70세 정도가 될 것이고,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72세로 정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꾸준히 내재역량 관리를 수행하는 사람은 90세에 가깝다 해도 젊은 성인과 비슷한 삶을 영위한다”며 “경제적 부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노화속도에도 양극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래에는 숫자로서의 나이보다 내재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데, 2015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내재역량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기능을 모두 고려해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이다.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이 내재역량의 4가지 요소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나이보다 젊게 살기 위한 비법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무엇일까. 프랑스의 국민 의사라 불리는 지미 모하메드는 저서 ‘저속노화를 위한 초간단 습관’에서 장수마을 100세 노인들의 공통점을 설명하며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고 평생 규칙적인 신체활동을 하고 낮잠을 자고 공동체생활에 사회적 유대관계와 종교적 믿음을 중시한다”고 요약하고 있다.
지미 모하메드의 설명은 적극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는 ‘웰에이징(Well-Aging)’의 의미와도 연결된다. 노화를 부정적인 개념이 아닌 긍정적인 삶의 단계로 받아들이며 건강한 노화를 추구하는 웰에이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목표다. 노화를 거부하는 안티에이징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개념인데, 건강한 식단, 꾸준한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저속노화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한다.
노화에 대한 이해와 접근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19~6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웰에이징 관련 인식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81.6%가 ‘노화 자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평균 수명 증대, 고령화 등으로 웰에이징이 더 주목받게 될 것’이란 의견엔 83.4%가 동의했다. 지금까지 노화에 대한 관심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트렌드화됐던 것에 비해 최근엔 MZ세대가 그 중심에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노화 방지 관심도’와 ‘건강관리 노력 수준’에 대한 질문을 살펴보면 2030세대의 관심도가 중장년층 못지않은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노화 방지에 대해선 40대보다 높게 집계됐다. 건강관리는 20대가 60대 다음으로 노력 수준이 높았다.
저속노화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 대한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2030세대의 관심도가 80%를 넘어섰다. 이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을 세대별로 살펴보면 30대 응답자가 74%로 가장 적극적이었다.
노화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이 높아지자 은퇴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생활과 소비활동을 즐기는 50세 이상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에 대한 주목도 또한 높아졌다. 이덕철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저속노화가 트렌드가 된 건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인데, 탄탄한 경제력까지 갖춘 액티브시니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현재 법적 노인 기준인 65세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이 자리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층 진입과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사회활동이 왕성한 액티브시니어의 등장으로 노인 시작 연령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액티브시니어에 대한 논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시장에서 좀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LG경영연구원이 발표한 ‘향후 30년간 확대될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파워’ 보고서를 살펴보면 “과거의 시니어는 세월이 흘러 쇠약해진 고령층으로 돌봄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의 액티브시니어는 신체·정신·경제·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 실버세대와 차별성을 보이며 강력한 소비 주체로 거듭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침체, 고물가 상황에도 액티브시니어의 소비활동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NH농협카드의 ‘소비트렌드 인사이트 보고서-액티브시니어 고객의 카드 소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카드 결제액이 전년 대비 7.9% 늘어나며 전체 고객 증가율(4.6%↑)보다 높았다. 같은 기간 카드 이용 건수도 전체 고객은 2.2% 상승에 그쳤지만 액티브시니어는 9.4%나 올랐다. 그럼 실제 액티브시니어의 생활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발표한 ‘2024 액티브시니어 소비트렌드 조사’를 살펴보면 이들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액티브 시니어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건강·운동(68.1%)’이었다. 최근 1년 내 주요 활동으로는 ‘국내외 여행(77.9%)’ ‘헤어샵 방문(64.1%)’ ‘영화관람(60.4%)’을 꼽았다. 외모 관리에도 관심이 높아 ‘패션·잡화(52.8%)’나 ‘화장품(42.6%)’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았다. 취미 활동으로는 ‘헬스(58.6%)’와 ‘사교모임(54.3%)’의 응답 비율이 높았다.
그런가 하면 액티브시니어의 88.7%는 ‘스마트 페이 사용은 편리’하고, 74.5%가 ‘유튜브에서 정보 습득을 한다’고 응답해 디지털 활용에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소비활동에서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쇼핑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었다. ‘온라인 오픈마켓과 커머스’(63.2%), ‘포털사이트’(36.5%)를 통한 구매도 많았다. 대형마트도 자주 이용(60.1%)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구매하는 물품은 ‘의류·패션잡화’(68.4%), ‘건강기능식품·영양제’(66.9%), ‘여행·레저·숙박’(57.7%)순이었다.
저속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 주체로 떠오른 액티브시니어의 사회활동에 국내 실버산업도 잰걸음에 나서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가구주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 규모는 2023년 3890조원으로 국내 전체 순자산의 40%에 육박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30년 국내 실버 산업 규모가 168조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한 근거다. 이들을 겨냥한 산업생태계 변화도 눈에 띈다. 우선 국내외 렌털 서비스 이용 고객 1000만명을 돌파한 코웨이는 지난해 차세대 실버 라이프 솔루션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100% 지분을 출자해 ‘코웨이라이프솔루션’을 설립하고 올 상반기 서비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프리미엄 실버타운과 실버케어 사업을 중심으로 문화, 여행, 숙박, 펫, 요양, 상조 등 다양한 부문에서 라이프 솔루션 상품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대교는 이보다 앞선 2022년 시니어 라이프 솔루션 전문 브랜드 ‘대교 뉴이프’를 론칭했다. 데이케어, 방문요양 등 노인장기요양사업을 필두로 인지강화 프로그램, 인지-신체 케어 서비스 등 시니어 라이프 케어 솔루션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에는 일본 시니어 재활·자립 지원 전문기관인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일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상조기업인 보람그룹은 최근 토털라이프케이 서비스 전문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다. 노인돌봄 서비스, 시니어를 위한 크루즈 여행과 시니어 레지던스 등 실버케어가 새로운 사업 방향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