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근처 유명 레스토랑인 ‘버거&랍스터’ 를 찾았다.
이 레스토랑은 11시 30분부터 문을 여는데, 10분 전부터 입구는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순서를 기다려 입장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상당히 규모가 큰 레스토랑인데 12시가 되기 전에 좌석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맨해튼에서 이런 모습은 이례적이다. 고급 레스토랑들은 정오보다는 오후 1시가 되어야 손님이늘고 활기를 찾는다. 이런 레스토랑일수록 여유 있게 식사를 하려는 업무 오찬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계산서를 보자 6명이 식사를 했더니 점심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으로 20% 팁이 붙어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팁 가이드’라고 해서 20%와 별도로 추가로 20~25% 팁을 권유하는 숫자들이 계산서에 인쇄되어 있는 것이었다. 팁 20%에 25%를 추가하면 음식 가격의 최대 50%를 팁으로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부가세는 별도다.
통상 저녁에는 20% 팁을 주지만, 점심에는 15~18% 정도를 주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제 20% 미만의 팁을 주면 종업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특히 음식값만 1인당 135~150달러 가격표(테이스팅 메뉴, 일종의 오마카세)를 붙인 한 가지 메뉴만 파는 고급 K-푸드 레스토랑은 예약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와인 페어링(와인 추천)’까지 선택하고 팁을 추가하면 1인당 500달러 안팎이 드는 최고급 레스토랑도 예약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다소 씁쓸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주변을 걷다가 한 번 더 놀랐다.
오후부터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기 위해 늘어선 줄 때문이다. 같은 장소의 3년 전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는 이런 모습이 믿기지가 않는다. 대공황에 빗대 ‘대공허(The Great Vacancy)’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죽은 도시였던 뉴욕은 이렇게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데 조금 더 거리를 살펴보면 반전이 있다.
도시는 외견상 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맨해튼 곳곳에는 1층이 텅 비어 있고 ‘임차인 구함’이라는 광고가 붙은 건물을 목격하게 된다. 브로드웨이, 5번가(5th Ave)와 같은 대로변 건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각종 연구기관, 투자회사에서는 다음 위기가 터진다면 상업용 부동산에서 야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미국 경제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볼 수 있는 곳이 뉴욕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되는 통계들은 모순적이다. 경기 분석에 있어서 서로 상충되는 통계가 쏟아진다. 논리적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18세기 격동적인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대립되는 삶의 모습을 다룬 역사소설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된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6만 2000건으로 집계됐다.
직전 주와는 같은 수준이지만, 계속 청구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2주 전까지 22만~23만 건에 그쳤으나 최근 들어 다시 신청이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키는 가장 큰 변수로 여겨졌던 고용시장의 경색이 풀릴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같은 시간 발표된 5월 소매판매 동향. 조사 시점에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업자 수가 증가하며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면 소매판매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논리적이다. 소비는 미국 GDP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중요한 기둥이다. 그런데 5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월가 컨센서스가 0.2% 감소였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건축자재, 정원용품 등의 소비가 전월 대비 2.2% 늘어나면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경기 침체로 가고 있다면 소비가 늘어나기 쉽지 않은 분야에서 소비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통계가 미국 경제 현주소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모든 통계는(논리적 정합성은 떨어지지만 경제의 부분부분을 비춘다는 점에서) 다 맞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답변이 될 것 같다. 뭔가 맞지 않는 조합들이 이상하게 공존하고 있다.
현재 미국 경기 상태를 사람의 건강 상태로 비유해보자.
일부 암세포도 생겼다. 지난 3월 입원을 한 차례 했다. 몸이 쇠약해진 것은 사실인데, 외견상 건강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가끔 통증이 심해질 때가 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좀 먹으면 통증은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10년물과 2년물 국채금리는 지난해 7월부터 역전됐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의 선행지표라고 여겨진다. 최근 10년물과 2년물 국채금리 차는 더 커지고 있고 100bp(1%포인트)에 달하고 있다. 이런 역전 현상이 1년 가까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뚜렷한 침체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후 발표한 SEP(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미국 실질 GDP 성장률은 1%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전망보다 0.6%포인트를 상향 조정했다. 블룸버그가 FOMC를 앞두고 주요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올해 GDP 성장률 전망 컨센서스는 0.6%였다. 하지만 몸 깊숙한 한편에서는 암세포가 계속 자라나고 있다.
중소형, 지역은행들의 부실이 대표적이다. 3월 은행권 위기 이후 은행권 부실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도입한 BTFP(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 사용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5주 연속 상승했으며, 6월 첫째 주 기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유동성에 불안감을 가진 은행들이 계속해서 돈을 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불안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연준은 강력한 긴축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6월 FOMC는 금리 인상을 보류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 연내 추가 두 차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위험은 여전히 상방으로 기울어져 있다”며 “연내 금리 인하는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도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향후 추가 데이터를 검토할 시간을 갖기 위해 6월에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최종 금리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은 양면성(two-sided)이 있다”고 말했다. 두 도시에는 양면적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두 도시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이 아니다. 한 공간에 두 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이런 양면적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박용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