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의 주가가 올해들어 약 83%의 가파른 상승세를 거둔 후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러한 가운데 엔비디아가 1998~2000년 닷컴버블을 이끌었던 시스코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예상과 추가적인 파격적 상승장을 이어갈 것이란 주장이 대치하고 있다.
실제 주가 상승 속도를 보면 시스코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 시스코의 매출과 이익은 인터넷 혁명과 Y2K(2000년 이후 컴퓨터 인식 오류) 덕분에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8년 10월 이후 시스코 주가는 저점 대비 고점까지 640% 올랐다. 그러나 2000~2002년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며 주가도 함께 추락했다. 시스코 주가는 80달러에서 2002년 10월 8.6달러까지 폭락했다. 이러한 주가 하락은 버블을 붕괴시키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2022년 10월 이후 약 550% 상승했다. 당시의 시스코와 다른 점은 현재까지 엔비디아의 매출과 이익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적 증가 속도를 감안할 때 주가 상승 속도가 빠르긴 하나 당시만큼 과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주가 버블을 붕괴시키는 것은 매출 둔화”라며 “금주 이후 주가 모멘텀은 소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가 수준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버블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AI 반도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22일 전 세계 투자자들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주목했다. 결과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4분기 중국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매출 22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65% 증가했고 시장 전망치인 204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데이터센터 매출은 184억달러로 전년 대비 40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TSMC, 삼성반도체, 인텔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각각 196억달러, 164억달러, 154억달러 수준으로 엔비디아가 모두 넘어섰다. 또한 영업이익은 147.5억달러를 기록해 아마존을 웃돌았고 영업이익률은 66.7%를 기록했다.
닷컴버블 당시 대표주들의 PER(주가수익비율) 부담은 사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주가 급락 직전 시스코 PER은 205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시스코 못지않은 급등세를 보였던 오라클의 PER은 168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73배까지 상승했다. 엔비디아 PER이 지난해 여름 247배까지 오르긴 했으나, 실적 발표 시점마다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PER은 37배 수준으로 당시 대비 절반 이하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많이 상승했지만 매분기 주가수익률도 함께 증가하며 밸류에이션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2025년 연간 실적 및 예상 EPS를 기준으로 하면 PER 27.7배로 다른 빅테크나 반도체 업체 대비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닷컴버블 당시 상황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당시 대표주들에 과열 우려가 있었던 것처럼 현재도 나스닥 상위 기업들을 지칭하는 매그니피센트7(이하 M7) 기업들에 수급이 쏠려 있고 주가 상승세도 편중되어 있다는 평가다.
허 연구원은 이에 대해 “M7 시가총액 비중은 지난해보다 올해 들어 더 높아진 상황이다. 7개 종목을 제외한 S&P 493개 기업들의 PER은 15~16배 수준으로, M7 기업들 PER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닷컴버블 당시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현재도 상위 주도주로의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세계적인 투자 전략가로 알려진 제레미 시겔 와튼스쿨 교수는 엔비디아 주가가 향후 2~3배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 화제다.
지난 2월 13일 비즈니스인사이더 인터뷰를 통해 시겔 교수는 “엔비디아가 과거 시스코의 전철을 밟을 경우 주가가 현재 수준에서 2~3배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라고 운을 떼면서도 다만 “이건 하나의 가능성이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절대 아니다”라며 “AI라는 거대한 거품 속에서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겔의 시나리오대로 엔비디아가 시스코의 전철을 밟을 경우 엔비디아의 주가는 향후 2000달러마저 돌파하게 된다. 이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2배, 테슬라의 12배, 나이키의 42배에 달하는 가치다. 엔비디아는 3월 19일 종가 기준 884달러 수준에서 거래 중이다.
시겔 교수의 의견처럼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하는 쪽은 AI 시장 성장세를 주요 근거로 든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3년 뒤 현재 대비 10배 성장할 전망이다. 미즈호증권은 최근 엔비디아의 목표 가격을 850달러에서 1000달러로 상향 조정하며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기술주가 랠리를 주도하는 미 증시의 상황도 버블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나온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엔비디아 등 ‘M7’을 중심으로 올해에만 16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이들의 주가가 실적에 비해 비싸지 않다고 분석했다. MS·애플·엔비디아·아마존·알파벳의 PER은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델 등 상위 종목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반대로 캐시 우드의 아크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는 지난 3월 7일 엔비디아의 경쟁사들의 추격으로 인해 독점적인 입지를 유지하기 어려워 주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요지의 투자자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캐시우드는 “닷컴버블 당시의 시스코와 달리 엔비디아가 장기적으로는 경쟁에 직면할 것이며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은 점차 치열하게 격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AMD뿐만 아니라 엔비디아의 고객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들과 테슬라 같은 기업들 역시 자체적으로 AI 반도체를 디자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 인도기간이 최근 3개월 수준으로 줄었다는 점을 주지하며 빅테크 기업들의 수주가 늘어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면 재고가 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시우드는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부문의 폭발적 매출 증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재고가 늘어나도 놀라지 않을 것”이러며 “현재 재고 등을 고려하면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매출 고객의 약 절반 정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실제 엔비디아의 GPU H100의 리드 타임(제품 주문 후 수령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최장 11개월에 달했지만 최근 3개월까지 단축됐다. 수요 대비 공급이 늘었다는 의미다.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AMD는 지난해 12월 엔비디아 H100의 성능을 뛰어넘는 AI 반도체 M1300X 시리즈를 선보였다. AI 연산 성능이 H100보다 1.3배 높고 메모리 용량도 크다. AMD는 성능을 인정받아 이미 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공급 계약을 마쳤고 납품을 앞두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답을 내놓듯 지난 3월 18일(현지시간) 차세대 AI 칩을 선보이며 경쟁사들과의 초격차를 선언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개발자 콘퍼런스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2024’를 통해 새로운 GPU ‘블랙웰’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AI 칩 ‘B100’을 전 세계에 공개한 것이다. 칩의 이름은 게임이론과 통계학을 전공한 수학자이자 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국립과학원에 입회한 데이비드 헤롤드 블랙웰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블랙웰은 2년 전 발표된 엔비디아 호퍼(Hopper) 아키텍처의 후속 기술로, ‘B100’은 현존하는 최신 AI 칩으로 평가받는 엔비디아 H100의 성능을 뛰어넘는 차세대 AI 칩이다. 엔비디아는 ‘B100’의 연산 처리 속도가 현재 부르는 게 값인 H100보다 2.5배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B200 블랙웰 칩이 챗봇의 답변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작업에서 30배 더 빠르다”고 밝히면서도 챗봇을 훈련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때 얼마나 잘 수행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블랙웰은 최대 10조 개의 파라미터로 확장되는 모델에 대한 AI 훈련과 실시간 거대 언어모델(LLM) 추론을 지원하며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공정으로 제조된다. 또 208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내장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칩이라고 엔비디아는 밝혔다. 아마존과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많은 기업이 블랙웰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블랙웰 GPU 72개와 자체 중앙처리장치인(CPU)인 그레이스를 36개 결합한 ‘GB200 NVL72’라는 컴퓨팅 유닛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GB200’은 LLM에서 H100 대비 최대 30배의 성능 향상을 제공하며, 비용과 에너지 소비는 최대 25분의 1 수준이라고 엔비디아는 설명했다.
한편 이날 엔비디아는 또 서로 다른 AI 모델을 연결하고 쉽게 배포할 수 있는 ‘엔비디아 인퍼런스 마이크로서비스(NIM)’라는 소프트웨어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자체적으로 직접 훈련시킨 로봇 ‘오렌지’와 ‘그레이’를 등장시키고, 로봇 훈련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그루트(GR00T)’를 공개하기도 했다.
젠슨 황 CEO는 “엔비디아는 지난 30년 동안 딥러닝, AI와 같은 혁신을 실현하기 위해 가속 컴퓨팅을 추구해왔다”라며 “블랙웰은 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구동하는 엔진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업들과 협력해 모든 산업에서 AI의 가능성을 실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엔비디아가 B100을 발표한 이후 3월 18일 애프터마켓의 주가는 –0.76% 하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