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달 탐사궤도선 ‘다누리’가 지난 연말 임무 궤도에 완벽하게 진입했다. 2월부터 12월까지 달의 남극과 북극 상공을 지나는 원궤도를 하루 12번씩 돌면서 6종의 탑재체를 이용한 다양한 과학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달 표면 전체 편광지도 제작, 달·지구 간 우주인터넷 통신 시험 세계 최초로 수행, 향후 한국 달 착륙선이 내려앉을 후보지 탐색, 자기장 측정, 달 자원 조사 등이다. 특히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해 장착한 섀도캠은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를 위한 착륙 지점 탐색 임무를 맡는다.
누리호·다누리 발사 성공으로 ‘7대 우주 강국’에 도약한 우리나라가 ‘K-스페이스’를 선도하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특히 올해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민·관 협업 방식으로 K-우주 시대를 장식할 전망이다. 메릴린치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40년 시장 규모가 2조7000억달러(약 3363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성장은 국가가 이끌던 우주 탐사·개발을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접어든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주 산업의 선두 주자인 미국에서 뚜렷하다. 냉전시대 종식 이후 미국 정부는 NASA 예산 배정을 대폭 줄이고 권한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넘겼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 가운데 NASA 예산이 갖는 비중은 0.5% 수준으로 급감했다. 매튜 바인지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우주, 마지막 개척자(Space, the Final Frontier)’라는 논문에서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우주 산업의 탈중앙화(decentralized) 흐름을 일반적으로 ‘뉴스페이스’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국가별 우주 산업의 편차는 크다. 글로벌 우주 산업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439조원인 반면 국내 우주 산업 규모는 3조2610억원으로 세계 우주 산업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민간만 놓고 보면 격차가 더 커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1553개 우주 기업에 총 1998억달러가 투자됐으며 이 가운데 49%가 미국의 투자였다. 이어 중국(26.2%), 영국(5.1%), 싱가포르(4.8%)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의 민간 투자 규모(4억달러)는 0.2% 비율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우주 산업은 어느 정도 수준에 와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주 산업 발전 단계를 크게 태동기, 정착기, 성숙기 등 3단계로 구분했다. 태동기는 정부 주도로 연구개발(R&D)이 이뤄지고 산업 기반이 조성되는 단계다. 정착기는 민간 기업 참여가 시작되는 단계며, 성숙기는 기업 주도 우주 기술 개발로 산업 생태계가 한층 다양해지는 단계를 일컫는다. 과기정통부는 이 가운데 국내 우주 산업이 태동기를 거쳐 정착기 단계를 밟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국내 우주 산업은 여전히 중앙 집중적인 ‘올드스페이스’에서 답보 상태다. 우주 산업은 크게 발사체·위성 등 우주 기기의 제작·운용, 우주 관련 정보를 활용한 제품·서비스의 개발·공급과 관련된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우주 산업 규모는 3조2610억원으로 세계 우주 산업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재 약 1%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글로벌 우주 산업 시장 점유율을 2045년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 우주개발 투자액을 2021년 7300억원에서 2027년 1조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우주 선진국 대비 기술 격차가 10년 이상 벌어진 우주탐사, 관측, 대형 발사체 분야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던 폐쇄적인 생태계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스타트업을 비롯한 민간 기업의 활발한 참여로 우주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 우주 산업에서도 민간 기업의 활약이 조금씩 부각되는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한화그룹이다. 그룹 차원에서 ‘우주 경영’을 선포하고 적극 뛰어든 덕분이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우주 사업 총괄 조직인 ‘스페이스허브’를 직접 진두지휘한다. 스페이스허브는 최근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우주연구센터를 설립해 ISL(위성 간 통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왔다. ISL은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통신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술로 위성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이 핵심이다. ISL 기술을 통해 여러 대의 위성이 레이저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고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룹의 항공 엔진·기계·발사체 등 우주 산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제작에 전반적으로 참여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7년까지 누리호를 4차례 발사한다. 에어로스페이스는 이 과정에서 확보한 역량으로 우주수송 서비스, 위성 활용 서비스, 우주탐사에 이르는 우주 사업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우주연구원이 보유한 누리호 체계종합 기술과 발사운용 노하우를 순차적으로 전수받게 된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은 2020년 한화시스템의 영국 위성 통신안테나 기업 페이저 인수와 미국 위성 통신안테나 기업 카이메타 지분투자, 2021년 세계 최초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 지분 9% 인수 등 주요 의사 결정을 지휘해 왔다. ‘위성 제작→발사 수송→위성 서비스’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향후 우주탐사 기술까지 확보해 국내 최초의 ‘우주 산업 종합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입지를 굳힌다는 게 김 부회장이 그리는 우주 사업 청사진이다.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진이 설립한 쎄트렉아이는 국내 유일의 인공위성 시스템 개발 기업으로, 한화에 인수됐다. 한화그룹이 치고 나간 뒤로 방산 회사인 KAI와 LIG넥스원이 바짝 뒤쫓는다. 항공 우주 산업 전문 기업 KAI는 위성·발사체·지상 장비 제작 업체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회사다. 2014년부터 누리호 사업에 참여, 누리호 체계 총 조립을 맡는 등 국내 우주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떠올랐다. 300여 개 기업이 납품한 부품 조립을 도맡았다. 1단 추진체와 연료 탱크 그리고 산화제 탱크도 제작했다.
LIG넥스원은 경기도 용인에 위성체계연구소를 세우고 첨단 위성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 내부의 제어장치를 국산화하며 주목받았다. 틈새 우주 시장 공략에 나선 우주 스타트업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컨텍(관련기사 130p), 이노스페이스, 우나스텔라 등이 대표적이다. 컨텍은 자체 우주 지상국을 운영, 데이터 수신과 위성 영상 전처리 활용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노스페이스는 소형 위성 발사체 전문 제작 업체다. 우나스텔라는 국내 최초 민간 유인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이다.
우주 산업을 선도하는 선진국에 비하면 예산, 기술력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투자·연구개발에 적극 나선다면 ‘반전’을 이룰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위성과 우주 서비스 분야는 ‘규모의 경제’ 달성이 시급하다. 대량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들은 위성을 양산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2019년 대비 2020년 전 세계 위성체 제조 대수는 약 1000기 증가했다.
조시윤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호주·캐나다 등 우리나라의 우주 산업 경쟁국들은 달에 가는 것이 정책 목적이 아니다. 관련 기술 개발, 활용에 따른 신산업 창출과 경제 효과 극대화가 핵심 목표다. 우리나라 역시 0.4%인 현재 글로벌 우주 시장 점유율을 5%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우주 상업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 스스로도 수요 창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백기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수출 시장 개척이나 민간 기업·개인에게 판매하는 새로운 서비스 창출 등 수요 다각화를 위한 (기업 스스로의) 능동적인 변화를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제 발걸음을 뗀 발사체 분야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정귀일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공위성 제작과 활용 분야에서 앞서 있는 한국은 발사체 분야를 강화해나가야 한다. 최근 세계 각국은 구하기 용이하고 다루기 쉬운 메탄 기반의 엔진을 개발 중이다. 한국 기업들 역시 경제적이면서 고효율의 로켓 엔진 설계와 공정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단, 발사체를 비롯한 우주 산업 기술은 세계 각국이 ‘핵심 기술’로 지정, 까다롭게 관리하는 만큼 정부의 법적·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9호 (2023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