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23이 열렸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행사인 만큼 전시 규모는 지난해보다 50% 이상 커졌다. 전 세계 3000개 이상 기업들이 참여해 올해 IT 트렌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혁신 제품들을 제시했다.
올해의 핵심 키워드는 모빌리티와 초연결로 꼽힌다. 분야를 막론하고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모빌리티, 초연결에 초점을 맞춘 혁신 신기술과 신제품을 대거 전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로 열린 행사인 만큼 다녀간 관람객만 11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CES를 주관하는 개리 사피로 CTA 회장은 자신 있게 “변화에 빠져들어라(Be in it)”라며 새로운 미래들을 소개했다.
올해 CES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신산업 ‘모빌리티’다. 모빌리티는 이제 단순히 자율주행기술을 의미하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움직이는 모든 수단을 혁신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CES 현장에서 300곳이 넘는 기업들이 모빌리티와 연관된 부스를 꾸렸다.
특히 올해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등 빅테크 기업까지 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보였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심리스(끊김 없는)’ 경험을 위한 기능을 내세웠다. 아마존도 인공지능(AI) 플랫폼 ‘알렉사’를 탑재한 마세라티 차량을 전시하고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전기차 데이터 수집 기능을 공개했다. MS는 모빌리티의 5가지 미래와 모빌리티를 관리해주는 마이크로소프트 파워 플랫폼을 선보였다.
빅테크 기업들과 더불어 전통 자동차 기업들도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혁신들을 선보였다.
“디지털화 기술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해 운전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똑똑한 동료로 변신시킬 겁니다.”
올리버 칩제 BMW 회장은 CES 2023 기조연설에서 새로운 콘셉트 모델 ‘BMW i 비전 디(Dee)’를 소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2500여 명의 청중은 칩제 회장이 콘셉트카를 공개하는 순간 뜨거운 환호로 화답했다. BMW i 비전 디는 미래형 중형 세단이다. BMW i 비전 디의 디(Dee)는 ‘디지털 이모셔널 익스피리언스(Digital Emotional Experience)’의 줄임말이다. 운전자와 차량 간 관계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들겠다는 BMW의 목표 의식이 담겼다. 칩제 회장은 “디지털화를 통해 모빌리티를 한층 더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BMW는 이번 BMW i 비전 디 모델을 통해 어드밴스드 BMW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투영 범위를 차량 앞 유리 전체로 확대해 운전자에게 더욱 다양한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벤츠는 이전에 선보인 전기 콘셉트카 ‘비전 EQXX’를 재차 전시했다. 1회 충전에 1200㎞를 달리고 1킬로와트시(㎾h)당 약 12㎞의 전비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소니도 혼다와 합작한 첫 전기차 ‘아필라’를 공개하면서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필라는 소니의 첫 자율주행 전기차로 CES서 프로토타입의 내부와 외부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엔진이 없기에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전기차 특성을 살려 전면에 ‘미디어 바’라는 길쭉한 디스플레이를 설치했다. 이미 영화와 게임 등 강력한 콘텐츠와 지식재산권(IP)을 갖추고 있는 소니는 이를 아필라에도 활용하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이번 CES에서는 승용차 위주의 자율주행이 건설 중장비, 농기계, 보트까지 외연을 확장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승용차에 국한됐던 자율주행이 경계를 허물고 일과 일상에 더 빠르게 침투하는 모습이다.
‘농슬라(농기계의 테슬라)’로 불리는 존디어의 존 메이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3 기조연설에서 “우리 자율주행 트랙터는 콘셉트카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시판되는 제품”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존디어는 지난해 CES에서 자율주행 트랙터를 공개하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해 존디어는 단순히 자율주행을 넘어서 인공지능과 에지컴퓨팅까지 트랙터에 추가해 더 강력해졌다. 존디어가 공개한 ‘이그잭트샷(exact shot)’이라는 기능은 트랙터가 정확하게 씨앗을 심고, 살충제 살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능이다. 비료 사용량도 60% 줄일 수 있다. 친환경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얻는 것이다.
이그잭트샷 정확도는 AI를 활용한 컴퓨터 비전과 클라우드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기계의 지능화·전기화까지 한 단계 나아갔다. 거대한 자율주행 중장비도 등장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방문객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 이 중장비는 100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가 만든 100t짜리 자율주행 트럭이다.
자율주행 레이싱도 라스베이거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 KAIST를 비롯해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9개 대학 팀이 최고 시속 300㎞까지 달리는 자율주행 레이싱카를 들고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레이싱카 전시와 별개로 라스베이거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자율주행 레이싱 경기도 열렸다. 자율주행 영역 파괴는 바다로도 이어지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자회사인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레저용 보트(뉴보트)가 가져올 변화를 ‘오션 라이프’라는 비전에 포함해 지난 4일 발표했다. 아비커스에 따르면 뉴보트는 세계 최초로 항구 간 자율운항이 가능한 솔루션을 적용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능을 일부 포함한 유모차도 올해 CES에 등장했다. 한 캐나다 스타트업이 공개한 자율주행 유모차는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려서 걷거나 부모가 안고 걸을 때 직접 밀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다.
오찬종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