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乙巳年), 주얼리 업계가 ‘뱀’ 모티브에 주목하고 있다. 뱀은 인류 문명의 여명기부터 우리와 함께해온 신비로운 존재다. 길가메시가 영생의 비밀을 찾아 헤맬 때나,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지혜의 열매를 마주할 때도 그곳에 있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뱀의 모습은 불멸과 재생, 지혜와 초월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갈망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융이 뱀을 인류 정신의 중요한 원형 중 하나로 본 것도, 엘리아데가 뱀의 주기적 재생에서 영원한 회귀의 신화를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뱀의 상징성은 19세기 주얼리 세계에서 깊이 있는 미학적 변주를 맞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약혼반지가 사랑과 영원성의 상징으로 뱀 모티브를 부각시켰다면, 세기말 아르누보 시대의 장인들은 뱀의 유려한 곡선미를 주얼리로 승화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불가리’ ‘부쉐론’ ‘까르띠에’와 같은 주얼리 하우스들의 창조적 영감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섬세한 세공 기법과 보석의 조합으로 뱀이라는 고대의 상징을 독창적으로 해석했다.
불가리의 세르펜티 컬렉션은 신화적 상상력과 장인정신이 빚어낸 걸작이다. 1940년대에 첫선을 보인 이후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된 투보가스 기법으로 뱀의 본질적 특성인 유연성과 생동감을 구현했다. 육각형 패턴으로 짜인 금속 세공은 뱀의 비늘을 재현하는 동시에,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흐르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반응한다. 브레이슬릿 워치에서 시작된 세르펜티는 목걸이, 반지로 영역을 확장했고, 컬러 스톤과 다이아몬드의 대담한 조합으로 전통적인 디자인에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부쉐론이 1968년에 선보인 쎄뻥 보헴 컬렉션은 뱀을 추상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물방울 형태로 승화된 뱀의 머리는 공격성 대신 우아함을, 위협 대신 매혹을 강조한다. 골드 페블 디테일에서는 자연의 유기적 형태미가 느껴지고, 다이아몬드와 컬러스톤의 조화는 브랜드 특유의 자유로운 보헤미안 정신을 담아냈다. 이러한 추상화는 뱀이 지닌 관능과 우아함, 신비로움과 친근함이라는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표현하며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언어가 되었다.
까르띠에가 보여준 뱀의 해석은 대담한 창의성과 완벽한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1968년 멕시코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를 위해 제작한 뱀 목걸이는 그녀의 독특한 개성만큼이나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66년 파리에 머물던 그녀는 라 페(La Paix)가의 까르띠에를 찾아 실제 크기의 뱀목걸이를 의뢰했고, 메종의 장인들은 2년에 걸친 고민과 실험 끝에 56센티미터 길이의 걸작을 완성했다. 2473개의 다이아몬드로 채워진 비늘은 마치 빛나는 갑옷처럼 화려한 광채를 뿜어냈고, 에메랄드로 표현된 눈동자는 뱀의 신비로움을 한층 강조했다. 장인들은 살아있는 뱀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플래티넘과 골드로 특별한 내부 구조를 고안했다. 뱀의 배면에는 그녀의 조국 멕시코를 상징하는 삼색의 에나멜로 비늘을 장식했다. 이 목걸이는 까르띠에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기록되며 하이 주얼리의 이정표가 되었다.
세르펜티와 쎄뻥 보헴은 시간이 흐르며 각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컬렉션으로 자리잡았다. 불가리는 2023년 세르펜티 75주년을 맞아 투보가스 기법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 일상의 착용감과 하이 주얼리의 우아함이 어우러진 이 컬렉션에서 다양한 귀금속과 보석의 조합은 클래식한 디자인에 생동감을 더했고, 뱀의 비늘 패턴은 한층 더 섬세한 표현을 얻었다.
부쉐론의 쎄뻥 보헴은 우아한 미니멀리즘의 정수로 거듭났다. 물방울 형태의 디자인은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고, 화이트, 로즈, 옐로 골드를 넘나드는 시도는 컬렉션에 풍부한 감성을 더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메종의 장인들이 보여준 혁신적인 세팅 기법이다. 전통적인 비즈 세공에 현대적 보석 세팅을 접목해 빛의 움직임을 더욱 영롱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두 하우스는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통해 뱀이라는 고대의 상징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예술사에서 뱀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비엔나 대학 천장화에서 클림트는 ‘히기에이아’의 황금빛 뱀으로 치유와 재생을 표현했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모세의 청동뱀’을 통해 구원의 상징을 완성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나일의 독사여, 네 이빨로 이 매듭을 풀어다오”라는 여왕의 마지막 대사는 죽음과 해방이 교차하는 운명적 순간을 그려냈다.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뱀의 상징성은 주얼리라는 매개를 통해 다채로운 의미를 얻는다. 장인들의 기술은 이 고대의 모티프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보석의 깊이는 그 상징성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신화와 예술,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뱀의 이야기는 영원한 상상력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장인들은 뱀이라는 원형적 상징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미학 세계를 구축해왔다.
을사년을 맞아 주얼리 하우스들은 장인정신과 창의적 영감으로 뱀의 신비로운 매력을 다시 한번 빛내고 있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