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인데 쉽지 않겠는데~.”
퍼트 자세를 취하고 스트로크하는 순간 필자 뒤에서 동반자 둘이 나누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가 귀에 꽂혔다. 헤드를 살짝 갖다 댄 나머지 공은 핀에 채 1m에도 미치지 못하고 멈췄다.
두 번째 퍼트는 핀을 지났고 결국 3퍼트로 홀을 빠져나왔다. 버디를 노렸지만 결과는 통한의 보기였다. 미세한 소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모처럼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퍼트는 축구로 치면 골문 처리다. 승부를 결정짓는 초절정 몰입의 순간으로 경쟁하는 동반자마저 숨을 죽일 정도로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지지난해 사우스스프링스CC에서 열린 E1채리티오픈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하민송이 버디 퍼트를 하려고 공을 놓는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린 주변 스프링클러에서 분수처럼 물이 쏟아졌다.
스프링클러 오작동으로 그린 안팎을 흠뻑 적신 후에야 그쳤다. 사태가 진정되고 이내 시도된 하민송의 단독 우승 퍼트는 무위로 끝났다.
습기로 그린 스피드가 달라진 데다 끊긴 경기 리듬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결과였다. 결국 다른 선수 3명과 연장까지 갔지만 우승을 넘겨주었다. 하민송으로선 너무나 뼈아픈 돌발 사태였다.
스윙하려는 순간 예기치 않은 일로 미스 샷을 범해 종종 경기를 그르친다. 집중력이 분산되지만 셋업을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진행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가장 흔한 주범이 난데없는 소음이다. 드라이버로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을 하려는 순간 울리는 새소리나 옆 홀에서 크게 들려오는 “볼~” 소리다.
가까운 나무 위에서 터지는 까치 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이때 셋업을 풀고 다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면 대단한 멘털의 소유자다. 스윙 연속 동작을 중간에 풀기는 정말 어렵다. 시간을 지체하면서 동반자에게 민폐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그냥 클럽을 휘두르고 만다. 결국 뒤땅이나 토핑을 초래해 후회하지만 소용없다.
몰입해서 공을 치려는 순간 “볼~~”을 외치는 옆 홀캐디의 고함이 필드에 울리면 멘붕에 빠진다. 에이밍은 온데간데없고 치는 둥 마는 둥 클럽을 휘두르고 만다.
엎드리지 못하고 셋업을 풀지도 못해 그냥 클럽을 뿌려댄다. 공이 실제로 날아오면 위험하기도 하다. 피하려고 클럽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숙여 몸을 땅에 바짝 붙이는 동작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
공을 그린에 올리려고 아이언 샷을 하려는 순간 근처 동반자가 캐디에게 갑자기 큰 소리로 핀까지 거리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그 순간 미스 샷이 생기기 일쑤다.
동반자로선 고의가 아니라지만 억울하다. 캐디에게 거리를 물어보거나 클럽 번호를 불러줄 때는 앞뒤 전후 동반자 상황을 반드시 확인해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골프에 소리만큼 민감한 것도 없다.
캐디도 마찬가지이다. 자세를 취하는 플레이어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다른 동반자에게 방향과 거리를 불러주면 흐름을 끊어놓는다. 골프는 개인종목이자 단체종목이다. 동반자 전체의 흐름을 컨트롤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샷을 하려는 찰나 휴대폰 벨소리가 카트에서 울려퍼질 때도 참 난감하다. 카트로 가서 받을 건지 그냥 무시하고 샷을 할 건지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휴대폰을 받으면 통화 내용에 신경 쓰여 집중력을 잃을 것 같고 무시하면 중요한 전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래저래 샷을 하는 데 방해 요소다.
필자는 요즘엔 일단 샷을 하고 전화를 받는다. 그러고는 모니터에 나타난 발신자 이름을 보고 통화 여부를 결정한다. 보통 전반 라운드를 마치거나 아니면 아예 경기를 끝내고 통화한다.
직장생활 당시 야간 당직을 끝내고 아침 일찍 골프장에 갔는데 쇼트 홀에서 공을 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 전화이기에 일단 받았는데 야간 당직 관련 일로 경위서를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OB를 내고 말았다.
간혹 기업 경영자나 임원과 필드에 나갈 때가 있다. 잘 나가다가 비즈니스 관련 일로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이동하는 경우를 본다. 그 순간부터 이미 스코어는 그의 안중에 없다.
순조롭게 경기를 이어가다 어느 순간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미스 샷 확률이 높다. 파 플레이를 이어오다가 앞 팀 진행에 밀려 장시간 기다리는 경우다.
경험상 앞 팀이 빠지고 바로 플레이를 시도하는 골퍼의 경우 미스 샷 가능성이 농후하다.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경기 흐름이 늦어진 것이 아니기에 연습 스윙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신중하게 셋업을 한 다음 경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김명선 한국체대 특임교수는 이동할 때엔 신속하더라도 셋업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롱 홀에서 투 온을 하려고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다. 혼자 버디를 노리는데 갑자기 동반자가 생각지도 않은 칩인 버디를 하는 순간 호흡이 빨라진다. 느긋하게 버디를 노리다가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방어 모드로 전환되면서 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버디에 실패한다. 예상치 않은 동반자의 먼 거리 퍼트 성공도 마찬가지다. 잔잔하던 마음에 순간 파도가 몰아친다.
전반을 잘 마치고 10~15분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후반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30~40분 기다려야 한다는 캐디 말에도 맥이 풀려버린다. 시간을 때우려고 술까지 몇 잔 기울이면 전반의 기호지세는 오간데 없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고수라도 이 순간만큼은 술을 자제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자세를 풀고 다시 셋업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동반자들도 이해해야 합니다.”
김명선 교수는 프로선수들은 백스윙을 하다가 돌발 상황이 생기면 셋업을 푼다고 말한다. 미스 샷을 하고 후회나 원망하기보다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하지만 백스윙 톱에서 다운 스윙하려는 순간 주변 나무에서 들려오는 까치 소리에 바로 클럽을 내려놓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고수가 되려면 이를 극복하는 내공도 필요하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