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지난 20년의 성공을 잊어야 합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국가나 기업 역사의 교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투자의 야성을 갖고 제2의 창업에 나서야 합니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의 신년사는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던 ‘야성’을 가질 것을 상기시키는 한편 과거에 이룬 성공이나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강조했다. 대우증권을 인수하며 미래에셋대우를 출범시키면서 증권업계 1위로 우뚝 선 데 이어 PCA생명까지 품에 안았지만 만족스러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정글로 변하고 있는 글로벌 IB업계에서 미래에셋대우가 기틀을 잡기 위해서는 ‘제2의 창업’이라는 정신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없던 센 놈이 등장했다.’
영화 카피처럼 지난 12월 29일 대한민국에 없던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했다.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의 통합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가 지난 12월 29일 합병과정을 마무리하고 공식 출범한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 말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자로 확정된 지 1년 만에 정식 합병법인이 출범하는 셈이다. 지난 12월 30일(금) 합병등기를 마무리하면서 통합 ‘미래에셋대우’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등 금융투자회사로 출발하게 됐다.
통합 미래에셋대우는 고객자산 220조원, 자산규모는 62조5000억원, 자기자본 6조6000억원으로 독보적인 국내 최대 증권사로 출범하게 됐다. 이 규모는 국내 금융투자업을 뛰어넘어 은행을 포함한 금융업에서도 5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국내와 해외거점 또한 최대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돼 향후 초대형 글로벌IB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합병 후 미래에셋대우의 지점은 168개, 해외법인은 11개에 2개 해외사무소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40조원 상당의 고객자산에 지점 168개는 많은 편이 아니라며 지점 확장·점포 대형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김대환 미래에셋대우 창업추진단장은 “지난 1년간의 통합 작업을 통해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미래에셋대우가 출범하게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는 아시아 대표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업계는 미래에셋증권과 대우라는 두 대형 증권사의 만남으로 시장이 원하는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 미래에셋대우는 총 15개 부문, 78개 본부로 구성되었으며 부문장 15명 중 8명은 미래에셋증권, 7명은 미래에셋대우 출신으로 꾸려졌다. 미래에셋대우 호를 이끌어나가는 선장은 박현주 회장을 필두로 3인 각자 대표가 맡게 됐다.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디지털금융·글로벌·IT·경영지원 부문을, 조웅기 사장은 투자은행(IB)·트레이딩·홀세일 부문, 마득락 사장은 투자전략·자산관리(WM)·연금·IWC 부문을 담당한다.
▶이제는 글로벌 IB 플레이어로
“투자 없는 성장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투자는 자본에 모험정신과 야성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자본에 모험정신과 야성이 없었다면, 역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박현주 회장이 그리는 통합 미래에셋대우의 큰 그림은 역시 IB 확장이다. 장기적으로 미래에셋대우는 자사주매각 등을 통한 자본 확충과 이익잉여금을 활용해 자본금을 8조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자본금 8조원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종합투자계좌(IMA) 운용과 부동산 신탁업무도 가능해진다.
지난 11월 미래에셋대우는 대표이사 직속의 초대형IB추진단을 신설했으며, 추진단 산하에는 초대형IB기획팀과 초대형IB상품팀도 들어선다. 이를 통해 글로벌 IB 전략으로 아시아 시장과 선진국 시장 양 갈래로 본격적인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 1월 10일 연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법인에 총 2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법인에 각각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증자가 마무리되면 베트남 법인 자본금은 1300억원, 인도네시아 법인 자본금은 1400억원가량으로 늘어난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법인이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은 자기자본투자(PI)를 늘려 수익성을 높이는 데 쓸 계획이다.
성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특히 인도네시아 로컬시장에서 주식시장 월간 시장점유율(M/S) 3위권에 오르며 순조로운 시장 확장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시장 진출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4월과 11월에는 미국 뉴욕 법인에 2900억원가량을 유상증자로 투입했다. 뉴욕 법인의 신사업인 현지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진출을 위해서다. PBS는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신용공여 컨설팅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다.
올 상반기 중에는 미국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증권사로서는 첫 도전으로 지난해 4월 1억달러(약 113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이후 종속회사인 미국 뉴욕법인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1억5000만달러(약 17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진행한 바 있다. 한편 PBS의 원할한 업무 진행을 위해 뉴욕법인의 인력을 15명 정도 충원한 상태다.
또한 바이오, IT 등의 산업 벤처 투자도 늘릴 계획이다. 미래에셋은 지난 19일 네이버와 미래 기술산업 육성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신성장투자조합을 결성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성장투자조합을 통해 두 회사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로봇, AR·VR, 자율주행, 헬스케어, 스마트홈 등 향후 성장성이 높은 분야의 우수 업체들을 적극 발굴하고, 육성해 신성장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
▶‘체급에 맞는 체력 키운다’
감원 대신 수익확대로 정면돌파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면 당장 몇 년간은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법은 임시 처방전일 뿐 장기 생존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미래에셋대우를 창업하면서 구조조정과 같은 비용 절감의 방식이 아닌 투자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 것도 미래에셋대우가 한국 자본시장의 야성과 모험정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과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대우가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에 걸맞은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통합 전인 지난해 3분기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두 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대 수준이었다. ROE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금융회사 경영평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지표로 궁극적으로 10%(세전)를 목표하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로써는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통합 미래에셋대우의 임직원 수는 4800여 명으로 2위 NH투자증권 2800명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칼바람 같은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박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하며 수익확대를 통한 정면돌파의 길을 택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순이익 목표를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잡았다. 통합 성공에 따른 시너지, 자기자본 업계 1위 증권회사의 프리미엄을 앞세워 국내외 시장에서 파상적인 영업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미래에셋대우가 세운 올해 당기순이익은 8000억원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약 35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업계가 최대 호황을 누린 2015년 순이익이 4735억원(합병 전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실적 합산)에 머문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목표치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각 사업부문에서 자발적으로 내건 목표 수치를 취합한 결과”라며 “출범 첫해를 맞아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 구성원들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박현주 회장은 5조원의 자기자본을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와 신사업을 통해 순이익 8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에 영위하고 있는 국내외 부동산 사업, 기업 지분투자 등을 늘려나가고 그룹 차원에서 조성하는 1조 벤처펀드 등에도 신규로 투자해 수익을 낸다는 방침이다.
▶화학적 통합도 마무리 단계
물리적 통합을 마친 미래에셋대우는 세밀한 화학적 통합작업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먼저 해외 법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통합 전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동시에 진출한 지역의 해외 법인을 합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두 곳인 홍콩 법인은 이르면 1분기에 통합할 계획이다.
단 두 해외 법인의 거리가 멀거나 주요 업무가 다른 경우에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경우 동시에 운영하는 것이 해외 사업 거점으로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미국 뉴욕 법인의 경우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컨설팅·증권대차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PBS를 주 업무로 삼지만 로스앤젤레스 법인은 자산운용(WM)이 주 업무로 두 법인의 역할이 다른 만큼 유지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 전 양 사의 직급체계가 달라 커뮤니케이션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 3개 직급으로 단순화했다.
매니저, 선임매니저, 수석매니저 3개 직급으로 이뤄진 직급체계는 기존 사원과 대리는 매니저, 과장·차장은 선임매니저, 부장은 수석매니저로 분류됐다.
미래에셋대우 측은 이러한 직급체계를 통해 합병 이후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가 뛰어난 직원들을 지원하기 용이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1인 평균 급여는 5200만원,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8100만원으로 격차가 있었다.
사전정비작업으로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은 작년 말 통합 작업 과정에서 급여를 미래에셋대우 수준으로 상향한 바 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부터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양 사의 연봉 차이를 고려해 통합 법인 출범 후에는 성과에 기반한 연봉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심해왔다.
올해부터는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연봉 인상률을 사원에서 부장까지 5개로 나눠져 있던 기존 직급별로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 고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직급체계는 올해부터 3단계의 매니저로 개편해 적용했지만 급여 체계나 고과 평가 방식 등과 관련된 세부사항은 아직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