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여전히 안갯속 미중 무역협상… 美 강경파 나비로, ‘중국 7대 죄악’까지 언급, 중국도 미국산 농산물 수입 지체 ‘시간 벌기’
김대기 기자
입력 : 2019.12.05 16:19:13
수정 : 2019.12.06 14:20:02
“중국은 ‘7대 죄악(deadly sins)’이라고 불리는 7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3단계 협상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피터 나비로 백악관 무역 제조업 정책국장은 11월 1일 중국의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비로 국장은 중국의 7대 죄악으로 ▲지식재산권 도용 ▲기술이전 강요 ▲컴퓨터 해킹 및 사이버 테러 ▲덤핑 수출 행위와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 퇴출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공급 ▲위안화 환율 조작 등을 꼽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에서 중국이 미국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미국 내 대표적 ‘반중 인사’다.
그의 주장이 새삼스레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최근 미중 무역협상 정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초까지 협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미중은 앞서 10월 10~1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제13차 고위급 무역협상을 가졌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우 실질적인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후 미중 협상 대표단이 ‘1단계 합의’ 공식 서명을 위한 후속 작업을 하던 중 중국 상무부가 깜짝 발표를 하게 된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1월 7일 주례 브리핑에서 “지난 2주간 중미 협상 대표들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양측은 협상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고율 관세를 취소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상대 국가에 부과한 고율 관세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이어 “만약 양국이 1단계 합의에 도달한다면 반드시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동시에 같은 비율로 고율 관세를 취소해야 한다”며 “이는 합의 달성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1단계 합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평가하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1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과의 단계적 관세 철회 합의 여부와 관련해 “중국은 관세 철회를 원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합의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중국은 완전한 관세 철회가 아닌 일정 부분의 관세 철회를 원할 것”이라며 “내가 그것(완전한 관세 철회)을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중국 상무부가 언급했던 양국 간 관세 철회 합의를 부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중 양국이 ‘1단계 합의’ 자체를 아예 접고, 예전처럼 무역전쟁 국면으로 돌입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단계 합의’에 공식 서명할 장소로 아이오와 등을 거론하며 협상 분위기는 이어나가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중국 압박 메시지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12일(현지시간) ‘뉴욕경제클럽’ 연설에서 “중국과 1단계 무역합의가 곧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중국은 죽도록 합의를 하고 싶어 한다. 중국과 딜을 만들지 못하면 (중국에 대한) 관세를 상당히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미국 측 요구 사항을 중국이 적극 수용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지난해 7월 6일부터 현재까지 양국이 서로에게 부과하고 있는 관세 현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중국에게 매기고 있는 관세는 크게 ▲107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는 관세 10%와 ▲2500억달러어치 중국산에 매긴 관세 25%다. 중국의 경우 총 11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25%의 관세를 차등 부과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1단계 합의’의 조건으로 전면적인 관세 철회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1단계 합의에 관한 공식 서명에 앞서 최대 3600억달러 물량에 대한 관세를 전면 취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관세 철회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도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사들이는 등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협상 자체가 균형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향후 약속 이행을 담보할 도구로 현행 고율 관세를 최대한 많이 남겨두는 방향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1단계 합의’에 응하더라도 중국과의 2단계, 3단계 협상에서 ‘관세 카드’를 계속 손에 쥔 채 대중 압박 전략을 쓸 것이란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미국과 조건부 협상을 계속 진행하면서 ‘시간 벌기’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은 관세 철회 조건으로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사들이겠다고 미국 측에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팜벨트(농업 지대)인 점을 감안해 성의를 표시하면서 중국이 원하는 관세 철회를 이끌어내려는 속셈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는 데 뜸을 들이고 있다. 나아가 ‘1단계 합의문’에 향후 구입할 구체적인 농산물 수치를 명시하길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양보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내년 미 대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과의 장기 협상을 진행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에는 ‘어떻게 미중 무역전쟁에서 탈피할까’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주요르단 중국 대사관 경제상무처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 담겨있다.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은 각자의 경제 모델(체제)을 유지하고,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행해지는 각종 무역정책을 인정해야 한다”며 “다른 국가의 경제를 희생시켜 자국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을 펼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경제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미국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나아가 나비로 국장이 7대 죄악으로 언급했던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 문제는 현행 중국식 경제 체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띠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중이 ‘1단계 합의’를 이끌어내더라도 차후 2단계, 3단계 협상 과정에서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