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업종·지분·자산 유지 엄격한 3대 사후요건부터 고쳐 7월 세법 개정안에 포함 추진 전문가 "상속·증여세도 낮춰야"
서찬동,정석환,조성호,김태준 기자
입력 : 2019.01.30 17:54:17
수정 : 2019.01.30 20:02:37
◆ 가업승계 출구가 없다 ③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10년간 업종·지분·고용 유지 요건이 있는데 너무 엄격하다"고 언급함에 따라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가업상속제도에 대한 개편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개편 방향이 주로 상속공제의 사후 요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업계가 요구하는 상속세율 인하까지 손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0일 홍 부총리의 작심 발언에 대해 중소·중견기업들은 "국내 가업상속공제 활용도가 해외 선진국에 비해 극히 낮기 때문으로 늦었지만 당연한 개편 방향"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정부가 가업상속공제제도 활성화를 본격 추진한 2008년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공제제도를 적용받은 기업은 2017년 75곳이 최고였을 만큼 활용도가 미미하다. 명문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은 2014년 이미 2만건을 넘어서 국내보다 300배 이상 많다.
기업들이 상속공제제도를 외면하는 것은 독일 등 해외보다 사후 조건 등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5년만 경영해도 85%를 공제해주지만, 한국은 10년 이상 대표로서 직접 경영해야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상속받는 이는 최대주주로 지분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며, 최대 공제액 500억원을 받으려면 사업 영위 기간이 30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 외 상속 후 10년간 평균 정규직 근로자를 상속 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중견기업은 이보다 더 엄격해 상속 전 정규직 근로자의 120%를 넘게 고용해야 한다.
홍 부총리는 특히 10년 동일 업종 유지 요건에 관해 "급변하는 세계에서 가업을 상속받은 이들이 업종을 확장하는 데 제약이 있다"며 "동일 업종의 범위와 개념을 확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곡물 제분업으로 상속을 받으면 제분업 외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빵을 만드는 사업을 못하고 면 제조로 상속을 받으면 직조업은 할 수 있지만 관련 제품은 만들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부연했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사후 요건 개정안을 연내 입법하려면 7월에 발표하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 개정안을 포함해야 한다. 이를 정부가 9월 국회에 제출하면 개정안은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돼 12월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다. 여당도 홍 부총리가 언급한 내용과 방향성에 우호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도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기업은 이런 일감 몰아주기를 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하고, 국가적으로는 가업승계를 위한 상속·증여세는 낮춰주는 '사회적 빅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언급은 그간 여당이 '상속세 강화'라는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홍 부총리가 언급한 내용만으로 가업승계를 활성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학 교수는 "기업 승계는 단순히 현금·주택을 상속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를 풀기 위해서는 가업승계제도를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가업 상속 과세특례 적용 요건은 크게 가업의 요건·피상속인 요건·상속인 요건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모두 독일·일본·영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매우 까다롭다. 우선 가업상속공제 대상인 가업의 범위와 관련해 한국은 규모·업종에 대해 엄격한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즉 한국에서의 가업상속공제 대상 '가업'은 연 매출액 300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반면 독일은 기업 규모에 제한이 없다. 영국은 규모와 업종에 제한이 없고 단지 이익을 위한 영업 활동으로 규정한다. 피상속인의 사업 참여 요건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은 10년 이상 경영하고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최대주주여야 한다. 영국은 2년간 지분 보유 요건이 있고, 일본은 기간에 대한 규정 없이 회사 대표이기만 하면 된다. 독일은 아예 이런 요건을 두지 않는다. 상속인 요건은 독일과 영국은 없지만, 한국은 상속 직전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며 상속 신고 기한까지 임원에 취임하고 신고 기한 후 2년 이내에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상속세율 인하와 증여 제한도 더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영호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후 요건 완화와 함께 궁극적으로 상속세와 증여세 세율을 낮춰야 가업승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서찬동 차장(팀장) / 정석환 기자 / 조성호 기자 / 김태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