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가의 재산 상속 분쟁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삼성 특검 과정에서 드러난 차명 주식과 관련해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한 장자가 현 회장인 동생을 상대로 재산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이 소송전이 보도된 이후 언론을 이용한 형제간의 감정싸움이 끝 모르게 계속되는 듯하다가 최근에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번 송사 자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관심의 대상으로 남을 전망이다.
과거부터 조상의 재산이나 지위를 어떻게 계승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한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결정했다. 계승의 원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정하고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후계자를 잘못 둘 경우 왕조가 날아가 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책임마저 뒤집어쓴 채 희대의 폭군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제라든가 수양제와 같은 황제를 보자. 그들은 남긴 업적에 비해 사후에 극단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계절적 이동으로 인해 핵가족을 유지하면서 생활해야만 했던 유목민들은 부모를 마지막까지 모신 막내가 이미 분가한 형들을 대신해 재산을 물려받는 독특한 말자 상속제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칭기즈칸의 막내 아들인 톨루이 집안이 부왕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이후 제국 내에서 강력한 권력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주 예외적인 것이었다.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집단 내부의 서열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게 하는 장자 상속은 그들에게도 가장 유효한 제도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장자가 상속한다고 하는 원칙이 깨지게 되면 국가 내부의 권력 집단은 갈등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결국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실상을 들여다보면 유목국가에서는 중국보다도 권력 집단 내부의 분쟁이 많았다. 이러한 분쟁은 체제의 약화와 붕괴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따라서 외부인 시각으로 볼 때 장자 상속보다는 형제 상속이 빈번하게 이루어져 계승이 무원칙하게 이루어졌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차기 군주가 되어야 할 후계자가 너무 어려 문제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권력 집단 내부의 세력 관계 등 복잡한 요소가 정상적 계승을 불가능하게 했다.
특히 유목국가는 중국에 비해 국가 체제가 군주 개인에 의존하는 체제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계승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처럼 황제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료 내지는 법률적 체계가 미비했던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유목국가는 군주의 계승을 제한된 권력 집단 내부의 능력자 중에서 제한적으로 공채하는 방식을 통해 뽑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것은 겉으로 일정한 원칙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들의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사람을 뽑는다는 '적임자 상속'에 대한 합의 정신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유목민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일견 계승의 원칙이 없어 보이는 국가 체제를 생각과 달리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