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가 실시간으로 반복되는 전례없는 이상 기후로 지구촌 곳곳이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식량위기론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 탓도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촌 각지의 식량 생산이 위협받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지구촌 먹거리는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유지되는데 식량 생산 자체가 흔들리면 각국은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장 글로벌 밥상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 이미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각국은 이제 식량 안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쌀, 밀 등 주요 곡물들의 가격의 고공행진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먼저 전 세계 30억 명의 식량을 책임지는 쌀 가격은 올해 강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7월 전체 쌀 가격지수는 2.8% 오른 129.7포인트를 기록하며 2011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1년 전과 비교해도 19.7% 오른 값이다. 쌀 가격 상승의 표면적 이유는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와 태국이 공급량을 줄였기 때문인데, 이들 두 국가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후위기 탓이 크다.
인도는 기록적 폭우로 경작지가 피해를 입었고 그 여파로 자국 내 쌀 가격 상승 압력이 강하자 아예 일부 종의 쌀 수출을 금지했다. 태국은 가뭄으로 강수량이 주는 바람에 물이 많이 필요한 쌀 농사 면적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에 나선 상황이다. 이로 인해 태국산 쌀 가격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태국의 가뭄은 해수면 온도가 올랐기 때문이다. FAO는 글로벌 쌀 가격 상승 움직임을 전하며 원인으로 “엘니뇨로 인해 일부 공급업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엘니뇨는 이상 기후 현상이다.
글로벌 쌀 수출국 1, 2위인 인도와 태국이 공급을 줄이자 파장은 즉각적이다. 인도 쌀 중 상당수를 수입하는 곳들이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 국가들인데, 마땅한 대체지도 없어 이들의 식량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밀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요 산지인 캐나다와 미국이 가뭄을 겪으면서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캐나다는 20년 만에 가장 건조한 재배환경에 놓여 있고, 미국 또한 올 누적 강수량이 2008년 이후 가장 적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이터는 “가뭄으로 인해 주요 수출 업체의 세계 밀 비축량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23~2024년에는 재고 수준이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알렉산더 카라바이체프 국제곡물위원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밀 재배 환경은 미국, 캐나다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지역도 좋지 않다”면서 “글로벌 공급 상황에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생산이 타격을 받아 가격이 상승하는 작물들은 이뿐만 아니다. 대두를 포함해, 오렌지, 설탕, 커피 등 전방위적이다. 이 중 오렌지 가격의 상승세는 무섭다. 런던 상품 선물거래소인 ICE에 따르면 오렌지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지난해 1.76달러에서 8월 초 3달러대로 치솟았다. CNN은 원인으로 “오렌지 주산지인 플로리다가 지난해 2번의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었고, 또 뒤늦은 한파가 밀어닥치는 바람에 감귤류 녹화란 질병이 퍼져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농부무(USDA)는 2022~2023년 시즌에 오렌지 생산량이 1590만 상자일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1936~1937년 시즌 이후 가장 적은 생산량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오렌지의 또 다른 주요 수출국인 브라질과 멕시코도 악천후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보통 소매 가격은 선물 가격을 따라가기 때문에 시중 오렌지 가격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요리에 필수품인 설탕도 주요 산지들이 이상 기후에 타격을 입으며 사정이 위태위태하다. 세계 설탕 생산 1위 국가인 인도는 폭우로 사탕수수 작황이 망가졌다. 블룸버그는 인도의 설탕 수출량이 올해 9월까지 1년 전의 절반 수준인 600만 톤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세계 3위 설탕 수출국인 태국도 설탕 작황이 31%나 감소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다른 주요 생산국들도 비슷한 처지다. 시장에 공급할 물량이 달리니 가격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올해 설탕 가격 추이는 11년래 최고치다. USDA는 올해 세계 시장의 설탕 재고량이 15% 감소해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인의 기호품인 로부스타 원두가격의 경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가뭄으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각종 식량 및 곡물 가격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이례적인 기후 변화이고 이는 지구 온도 상승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지구 온도 1.5℃ 상승은 식량위기 등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서 일종의 변곡점이다. 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1.5℃가 넘어가면 지구에 있는 모든 환경이 변한다”면서 “특히 이상 기후 현상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고 이로 인한 식량난은 닥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은 자신의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에서 “2℃가 상승하면 지구 고위도 지역의 삼림 황폐화, 가뭄 지역 확대로 인한 물 부족 심화,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작물 재배지 축소 등과 함께 농작물의 수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과 같은 곤충의 지리적 생존 범위가 지금보다 더 줄어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소개했다. 작물 재배 환경에서 꿀벌의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식량위기와 관련해 지구 온도 상승 문제가 중요한 것은 기존 작물 재배 환경이 바뀐다는 점이다. 재배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작물들이 이상 기온에 더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되지만, 기존 작물들의 재배지 자체가 변한다는 것이다.
남재철 교수는 “기후변화에 의해서 1℃가 상승하면 작물 과수의 재배 적지가 대략 80km 북상을 한다”고 했다. 경북이 사과의 대명사 격이었지만, 이제는 강원도가 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재배지가 변하더라도 수확량을 그대로 장담할 수 있다면 작물 재배지의 이동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바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고, 달라진 환경에 맞는 신품종이 나와 기존 작물을 대체해 나가야 하는 등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진다. 이런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공급망이 준비되지 않으면 식량 부족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비는 필수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구촌 중에서도 준비가 덜 돼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44.4%로 OECD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곡물 자급률은 20.9%로 더하다. 콩과 밀, 옥수수의 자급률은 각각 6%와 1% 이하다. 글로벌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도 대한민국은 지난해 조사 대상 113개국 중 39위로 평가됐다. 농사 환경이 우리보다 열악한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보다 뒤처진 수치다. 남재철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OECD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먼저 식량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현재 정부는 식량위기와 관련해 2027년까지 식량자급률을 55.5%로 상향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거시적 안목을 담은 대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역사 이래로 ‘배고픔’이 국가의 존망을 뒤흔든 사례가 숱하게 많았다는 점에서 ‘이른’ 경각심은 절대 과유불급의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2011년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발생한, 중동을 뒤흔들었던 ‘아랍의 봄’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2008년 러시아 가뭄으로 밀 생산량이 준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자국 내 밀 생산이 줄자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국제 밀 가격이 뛰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원료인 밀을 제때 수입하지 못했고 국민들은 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뭄이 배고픔을 부추기자 국민적저항 운동으로 번진 것이다.
이번 식량위기가 간단치 않은 것은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닌 글로벌 현상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초와 비교해 소비자 식품 가격은 유럽에서 약 30%, 미국에서 23%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FA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아 인구는 8억 명에 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수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정 국가에 집중되는 공급망을 가지고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부족하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90% 이상의 식량을 수입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법으로 특정 국가에서 특정 작물을 30% 이상 사오지 못하도록 규정해놓았다”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 같은 갑작스런 사태에도 식량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라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스마트팜 등 기후 영향을 덜 받는 산업 육성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