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1일부터 핵심 광물의 안보에 무게를 둔 ‘신(新)광물자원법’이 시행된 영향이다. 중국은 이 법을 통해 첨단 산업의 필수 원료인 핵심 광물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고 관리 체계를 개선할 계획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광물 자원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지난해 11월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12차 회의에서 통과된 개정안은 국가 광물 자원 안전을 보장하고 광업의 고품질 발전을 촉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번 개정안 시행과 관련해 중국 자연자원부는 “광물 자원은 발전의 기초이자 생산의 핵심이며 산업의 혈액”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광물 자원은 경제·사회 발전의 중요한 물질적 기초”라며 “광물 자원의 탐사 개발은 국가 경제와 민생, 국가 안보와 관련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개정안 시행은 중국의 ‘자원 무기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2010년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 처음으로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냈다. 지난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겼다. 중국은 지난 2월 텅스텐 등 5종 광물, 4월 디스프로슘 등 7종의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며 이번에도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로 맞받아쳤다. 상호 관세율을 세 자릿수까지 끌어올리며 치열했던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 5월 ‘제네바 협상’과 ‘런던 협상’을 거치면서 휴전에 들어갔다. 제네바 협상에서는 상호 관세율을 115%포인트씩 일정 기간 낮추기로 했고, 런던 협상에서는 희토류 수출 통제와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등 비관세 조치에 대해 합의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해제했다며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일부 완화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5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칩인 ‘H20’의 수출을 허가하기로 했다며 “중국과 (희토류) 자석 합의를 하면서 우리는 중국에 칩을 다시 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상호관세율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오는 8월까지 미·중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중국이 추가로 희토류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중국 상무부는 통제 목록에 없던 제품에 대한 추가 검사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토류는 란타넘 계열 15개 원소와 스칸듐·이트륨을 합친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17개 중 중국이 수출을 통제한 것은 7종이다. 앞으로 수출을 통제할 수 있는 희토류도 10종이나 남았다. 10종 중 수출 통제 시 영향이 가장 큰 것은 영구자석의 핵심 소재인 네오디뮴이다. 중국은 전 세계 네오디뮴의 80~90%를 생산하며, 90% 이상을 가공하고 있다. 영구자석은 전기차와 로봇, 전자기기, 방위 산업 등 첨단 산업에 주로 쓰인다. 중국이 수출을 통제할 경우 주요 선진국에서 입는 피해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제네바 협상 이후 다급하게 런던 협상을 추진한 것도 영구자석 소재인 디스프로슘과 사마륨이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중 디스프로슘은 중국에서만 생산된다. 이처럼 중국이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에 오른 배경으로는 정부 주도의 ‘40년 장기 투자’가 꼽힌다. 중국 정부는 1986년 광물자원법을 제정하고 국내 자원 개발과 관리를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중국 희토류 패권의 토대가 된 것이다. 초기 광물자원법은 광물 자원의 국가 소유를 강조하며 합리적 개발과 보호에 중점을 뒀다. 광물 자원을 임의로 채굴할 수 없고, 광물 탐사와 채굴을 하려면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후 1996년과 2009년, 2020년 세 차례 개정을 거치며 희토류에 대한 생산량 통제와 관리 체계를 도입했다. 특히 중국은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희토류 채굴과 정련, 가공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2021년에는 국유기업인 중국희토, 중국희유희토, 남방희토 등 3개 기업과 2개 연구기관을 통폐합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희토류그룹’을 출범시켰다. 현재는 중국희토류그룹과 북방희토그룹 2개 국유기업만 희토류를 채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희토류 채굴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희토류 산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희토류 공급은 미국이 주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환경 규제로 미국 내 주요 광산들은 문을 닫았다. 그사이 중국은 희토류 채굴과 정련, 가공 등에서 기술력을 확보했고, 현재는 희토류 산업에서 초격차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 희토류 매장량은 지난해 기준 4400만t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8.4%를 차지했다. 2위인 브라질(2100만t)의 두 배 규모다. 희토류 수출량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1년 4만 8917t이던 수출량은 지난해 5만 5431t까지 크게 늘었다.
희토류 시장에서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전략적 우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뉴욕 소재 싱크탱크인 스트래티지 리스크가 최근 보고서를 내고 이 같이 진단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미국의 관세 정책에 ‘희토류 수출 통제’로 대응한 점에 대해 “미국은 수십년간의 투자 부족과 전략 부재 등으로 인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희토류 산업에서의 중국과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여전히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물 매장량과 정부의 투자 모두 부족해 중국산 광물 수입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며 “미국의 장비 및 인프라스트럭처의 현대화 노력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중국 희토류 기업들은 잇따라 희토류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 베이팡시투와 바오강강롄은 전날 올해 3분기 희토류 정광(함유량 50%)의 거래 가격을 t당 1만 9109위안(약 366만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보다는 14.14%, 전 분기보다는 1.51% 오른 금액이다. 이들 업체는 올해 2분기 시장 가격 등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지난 9일(현지시간) 최근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핵심 광물을 태국과 멕시코 등에서 우회 환적하는 등의 방식으로 밀수입했다고 전했다.
[송광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