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까지 빨라야 5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당장 체감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단지뿐만 아니라 대부분 단지들이 입주 시점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보고 판단을 결정할 것 같다.”
윤석열 정부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개편’ 정책에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 조합 관계자는 이같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재초환 개편을 통해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로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환수해 주택가격 안정과 사회적 형평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6년 도입됐다. 그러나 비용 부담이 워낙 큰 탓에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의 재건축을 무력화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지목됐고, 신규택지 확보가 어려운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을 막는 대표적인 규제로 자리매김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통보된 재건축부담금 예정액은 3조1477억원이다. 2018년 784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 1429억원, 2020년 1조2058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조371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 6월을 기준으로 3492억원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강맨션의 경우 1인당 평균 재초환 부담액이 7억7700만원으로 집계되면서 재초환 논란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심 의원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15개 단지에서 1인당 평균 재초환 부담액이 1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공급 활성화를 목표로 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29일 ‘재초환 개편안’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9월 29일 발표한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재초환 개편안)’에 따르면 크게 부과 기준 현실화, 부과 개시 시점 조정, 1주택 장기보유자 감면제도 신설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재건축 부담금이 완화된다.
부담금 면제금액은 초과이익 3000만원 이하에서 1억원 이하로 상향된다. 재건축 초과이익은 준공 당시 집값에서 추진위 구성 당시 집값과 정상 집값 상승분, 개발비용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재건축 기대감으로 인한 집값 상승 덕분에 조합원이 얻은 이익을 의미하는데, 이 초과이익에 부과율을 곱하면 조합원들이 실제 내야 할 재건축 부담금이 된다.
부과율 결정 기준인 ‘부과 구간’도 완화됐다. 기존 2000만원 단위에서 7000만원 단위로 확대됐고, 최고부과율 구관도 기존 1억1000만원 초과에서 3억8000만원 초과로 상향됐다. 예를 들어 초과이익이 2억원으로 책정된 단지의 조합원은 기존 제도에서는 ‘최고부과율(50%)’이 적용돼 1억원의 부담금이 책정됐다. 개편안에 따르면 1억7000만~2억4000만원 구간인 부과율 20%가 적용되면서 4000만원으로 부담금이 줄어든다.
국토부는 부과 구간 확대에 대해 최근 집값 상승률과 여러 조세부과체계를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른 재산 관련 세제를 보더라도 최고부과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에 해당하는 납세자 비중은 각 3.5%와 5.9%밖에 안 된다”며 “그러나 현행 제도하에 재건축부담금은 최고부과율(50%)이 적용되는 단지가 절반이 넘는 52%나 된다”고 설명했다. 최고부과율이 적용되는 단지 비중을 줄여 다른 세제와의 형평성을 맞춘다는 설명이다.
부과 기준이 현실화되면 초과이익이 적은 아파트는 부담금이 큰 폭으로 줄고, 강남 등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은 감면 폭이 감소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방 재건축 단지는 거의 면제되고, 서울의 경우에도 기존 부담금 예정액이 적은 단지일수록 감면 혜택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과이익 산정 기준이 되는 ‘부과 개시 시점’도 변경됐다. 기존에는 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일을 기준일로 삼았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조합설립인가일로 변경된다. 아파트 재건축 절차는 일반적으로 ‘안전진단→정비구역지정→추진위 구성 승인→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착공→준공’순으로 진행된다. 초과이익 산정을 위한 집값 반영 시점이 늦춰지는 셈이다.
주택자 1주택 장기보유자 감면은 준공 시점에 ‘1주택자 조합원’일 경우에만 혜택이 적용된다. 보유기간에 따른 감면율(최대 50%) 역시 해당 보유기간 내내 1주택자 자격을 유지해야 적용 가능하다.
이같은 개편안이 시행되면 재건축부담금이 적용되는 단지는 지난 7월 기준 전국 84곳에서 46곳으로 줄어든다. 지역별로 따지면 수도권과 지방은 재건축부담금 부과 단지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아 초과이익이 큰 탓에 28개 단지 중 5곳만 부담금이 사라진다.
부과금도 줄어들 전망이다. 국토부 설명에 따르면 부담금 1억원 이상 고액 부과 단지는 18곳에서 5곳으로 감소한다. 부담금이 1000만원 이상~1억원 이하 수준으로 예상되는 단지 수도 35개 단지에서 17곳으로 감소한다.
개별 단지 시뮬레이션 결과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학우 하나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반포아파트 제3주구(반포주공 제3주구)’ 재건축 부담금은 기존 4억200만원에서 개편안이 적용되면 3억2700만원으로 18.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 감정평가사는 “반포주공 3주구의 경우 조합설립인가일이 2014년 12월로 준공예상시점을 2024년 12월 31일로 볼 경우 개시 시점 조정에 따른 감면이 없음에도 부담금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과 기준 현실화, 개시 시점 조정 등 이번에 발표된 감면 요건이 모두 적용되면 부담금 감면액은 더욱 줄어든다. 국토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 강북에 위치한 C단지는 기존에 통보된 부과예정액 1억8000만원에서 1억원이 감면된다. 여기에 10년 이상 주택을 장기보유한 1주택자는 장기보유 감면율 50%가 적용돼 최종 4000만원으로 부담금이 책정된다. 지방에 위치한 D단지의 경우 기존 부과예정액 8100만원에서 각종 감면을 받아 6년 이상 장기보유 시 650만원, 10년 이상 장기보유 시 360만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재건축 예정단지들이 밀집된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단지 부담금도 축소된다. 부과예정액으로 약 2억8000만원을 통보받은 강남의 A단지는 2억600만원이 감면된다. 10년 이상 장기보유한 1주택자는 감면 폭이 86%로 더욱 확대돼 최종적으로는 400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1억7000만원으로 예정된 강남의 B단지는 6년 이상 장기보유한 조합원 부담금이 5400만원으로 감소한다. 10년 이상 장기보유하면 3000만원으로 더욱 줄어든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그간 부담금 부과 사례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고, 면제금액, 부과율 구간 등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가 시장에서 꾸준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향후 시장 혼선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며 “과다한 재건축부담금 부과로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거나 지연되는 부작용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 서울 등 도심 주택공급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개편안에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다. 가장 큰 문제로는 개별 조합원들에게 재건축 부담금을 분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이 꼽힌다. 재건축부담금은 단지 전체 총액을 기준으로 조합에 부과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조합원 개개인에게 금액을 개별적으로 통보하지 않고 총액을 조합 스스로 개별 조합원에게 나누어 부과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부담이 이뤄질 때 조합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관리처분 이전에 주택 가치를 평가할 때에도 ‘내 집 가치가 왜 낮은 거냐’는 불만이 높은데 재건축이 끝나고 한 차례 더 평가해 분담금을 내라고 하면 조합원들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칫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분담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재건축으로 예상되는 아파트 가치 상승이 큰 상황에서 환수비율이 50%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재초환 개편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유주택 세대의 상당수가 ‘집 하나가 전 재산’인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재건축과 관련된 강력한 규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익에 대해서는 분담금을 부과하지만 집값이 떨어져 손실이 발생하면 보전 조항이 없다는 점도 조합원들에게는 불만이다. 이로 인해 재건축초과이익분담금은 그동안 ‘미확정 이익에 대한 세금’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부동산을 처분할 때 차익에 대해 양도세를 내는데 부담금이라는 명목으로 미리 돈을 걷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같은 불만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재건축부담금 제도가 취지에 맞지 않게 현실에 적용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과세 형평성이라는 취지나 실효성보다는 징벌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불만이 폭주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정부 시절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지만 한 차례 유예됐고, 문재인 정부 시절 이를 다시 적용하려고 했지만 지자체장 가운데 그 누구도 부담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심 의원에 따르면 재초환이 다시 시행된 2018년 이후 지난 6월까지 재건축 부담금은 단 한 차례도 실제 징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누구 하나 총대를 메지 않고 ‘눈치 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초환 감면은 얼마가 되건 원론적으로는 재건축에 긍정적이지만 개별 재건축 단지가 체감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장기적으로는 현실을 더욱 반영한 추가 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초환 개편안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국회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입법 키를 쥔 ‘최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이번 개편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가운데 민주당이 반대하면 개편안이 유명무실해지는 만큼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민주당 설득이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석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