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미국 주식 시장에 ‘비트코인 선물 ETF’ 상장 소식이었다. 지난 10월 19일 미국 나스닥 증권거래소(NYSE)에 데뷔한 프로셰어스의 비트코인 전략 ETF(Proshares Bitcoin Strategy ETF) ‘BITO’는 상장 이틀 만에 순자산액 11억달러를 돌파했다. 코인거래소에 머물던 비트코인이 금융상품의 기초자산으로서 주식 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자금유입으로 드러났다.
BITO는 미국 증시 사상 가장 빠르게 순자산 10억달러의 벽을 넘은 ETF 상품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메이저 시장인 나스닥에 안착한 첫 비트코인 금융상품을 환영하듯 ‘BITO’는 상장 이후 이틀간 5%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후 10월 22일에는 두 번째 비트코인 ETF인 발키리 인베스트먼트의 비트코인 전략 ETF ‘BTF’도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외 다수 가상자산 ETF 상품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비트코인 선물 ETF의 출시는 시장에도 훈풍을 불러오는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기대감으로 시작된 상승추세는 실제 출시 이후까지 이어져 지난 10월 한 달 동안 비트코인 가격이 무려 40%나 올랐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 선물 ETF 출시를 필두로 다양한 금융상품이 출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에 출시된 비트코인 선물 ETF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입장에서 일반 민간 암호화폐 거래소에 비해 감독과 규제가 수월해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월 19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ETF ‘BITO’
▶감독·규제 수월해 보안 안전
코인거래소 대비 투자자 보호 유리
비트코인 선물 ETF의 출시는 일반 주식 종목처럼 주식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추종하는 상품을 간편하게 사고 팔 수 있어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점은 분명하다. 보안이나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하지 않아도 되며, 비트코인 현물을 구매하지 않고도 비트코인을 간접보유했다가 처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래소 내 비트코인 구매나 지갑 관리 시스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선물 ETF가 좋은 투자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을 보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보안시스템을 적용해 인터넷에 연결된 채로 보관하는 ‘핫 스토리지’, 그리고 USB 등에 저장한 후 인터넷 연결을 차단하는 ‘콜드 스토리지’가 그것이다. 가장 안전한 것은 콜드 스토리지다. 인터넷 연결이 차단돼 있기 때문에, 저장장치를 물리적으로 강탈하지 않는 이상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다만 콜드 스토리지 상태인 비트코인을 거래하려면, 저장장치에 물리적으로 접근한 뒤 인터넷에 연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이 시간은 거래에 불투명성이 커진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핫 스토리지 방식을 사용해야 하지만, 여전히 해킹의 위험성이 남는다.
반면 BITO는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아닌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비트코인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선물 기반 ETF다. 일반 종목과는 달리 투자자들에게 요구하는 최소 증거금(마진)이 존재한다. 이러한 장벽을 통해 투자자를 제한해 투자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높은 수수료에 롤오버 비용까지 부담
수수료나 상품구조에서 현물투자에 비해 더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투자자들은 선물 ETF 상품의 구조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CME 비트코인 선물 계약은 각 5 BTC를 만기일에 인수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지만 실제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5 BTC의 가격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거래소 운영시간에서도 차이가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365일 24시간 운영되지만, CME 선물 시장의 경우 상품 명세서에 명시된 거래 시간(미국 중부 시간 기준 일요일~금요일, 5:00PM~4:00PM)에만 거래가 가능하다. 이에 CME에서 거래가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현물 시장에서 큰 가격 변동이 생길 경우 CME 선물과 현물 간 가격 차이인 ‘CME 갭(CME GAP)’이 커질 수 있다.
운영시간 외에 투자 흐름에 따라 현물 가격과의 차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거래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거래되는 가상자산의 특성상 거래소별 투자자 매수·매도세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기관투자자들의 매수·매도세에 따라 CME 선물 계약과 비트코인 현물의 가격 차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수수료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현물을 구매할 경우 거래소 매수 수수료는 대략 0.05%에 불과하다. 이러한 비용을 지불한 후에는 직접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비트코인 선물 ETF는 프로셰어스, 반에크 등 자산관리사가 운용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용 수수료가 현물 시장에 비해 높은 편이다. 프로셰어스의 BITO와 발키리의 BTF는 0.95%, 반에크의 XBTF는 0.65%의 거래 수수료가 투자자들에게 부과된다.
이러한 수수료 외에 선물상품의 공통적인 특징인 롤오버 비용(차월물 이월)도 만만치 않게 발생한다. 선물 계약을 기반으로 만기가 다가오면 전월물을 처분하고 차월물 선물 계약으로 재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롤오버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까닭에 지난 10월 15일 미국 NBA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이자 억만장자 기업가로 잘 알려진 마크 큐번은 CNBC 샤크탱크에 출연해 비트코인 선물 ETF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비트코인 선물 ETF에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비트코인 선물 ETF에 투자할 계획은 없다. (대신) 나는 비트코인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국내 가상자산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3일 최진영 후오비 코리아 애널리스트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거래소 접근성이 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선물 ETF를 거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미 시장에서 좌절된 현물 ETF
비트코인 시세 추락 이끌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하며 코인 시장에 찾아왔던 상승세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암초를 만났다.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거부 이유는 투자자 보호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11월 14일 미 SEC는 “투자자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에크의 비트코인 ETF의 승인신청을 거부했다. 비트코인 선물 ETF와 현물 ETF가 가지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의 시세조종 행위 및 관행에 대해 노출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선물 ETF로 현물 상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최종 승인이 불발되면서 시장 역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19일 기준 BITO의 종가는 기준 고점(43.32달러) 대비 주가가 14.6% 빠졌다. 상장 첫날 시초가(40.88달러)와 비교해도 수익률이 –9.5%다.
SEC 위원장은 최근 “가상자산 시장은 사기가 만연해 있는 와일드웨스트(무법천지)에 가깝다”며 시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불발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완전한 제도권 진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미국 증권 시장에서는 좌초됐지만 캐나다·독일 등 국가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이미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운용사에서 직접 비트코인 현물을 보유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선물 계약 롤오버 비용이 따로 발생하지 않아 선물상품의 대안으로 꼽을 수 있다.
상품구조는 단순하다. 북미 최초의 현물 비트코인 ETF 상품으로 꼽히는 퍼포즈 비트코인 ETF(Purpose Bitcoin ETF)의 운용사 퍼포즈 인베스트먼트(Purpose Investments)는 현재 약 2만4000BTC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물 보유량을 기반으로 비트코인 가격에 추종하는 형태로 호가를 형성한다. 상품운용을 위해 상당한 비트코인을 보유해야 하는 만큼 자금규모가 큰 미 증권 시장에 상장될 경우 여러 금융투자사들이 상품운용을 위해 비트코인을 자산에 유입할 것으로 예상돼 투자자들은 현물 ETF 출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승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비트코인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도 있다. 희소성이 떨어지고 투자자들의 유출입도 제한이 생기며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 11월 15일 비트코인닷컴에 따르면 리서치 기업 팩터 LLC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유명 암호화폐 투자자인 피터 브란트(Peter Brandt)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희소성과 구매의 어려움에 달린 것”이라며 “월스트리트(증권가)에서 비트코인을 자판기 자산(vending machine asset)으로 전락시키게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물 ETF 출시로 비트코인의 접근성이 향상되면 비트코인 시세에는 악재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