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6일 오전 11시 30분 오우야 합정점. 10평 안팎 작은 커피숍에는 기다란 바테이블과 작고 동그란 스탠딩 테이블 2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점심시간 전인데도 손님들이 하나둘 드나든다. 20대 여성부터 30대 직장인, 70대 노신사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짧게 담소를 나누거나 커피 맛을 음미하고는 10분여 만에 금세 자리를 뜬다. 넉 잔의 배달 주문이 들어와 라이더가 오가고 직접 테이크아웃(포장)을 해가는 손님도 간간이 있다.
# 같은 날 오후 1시 양재역 인근 SPC 본사 뒤편의 파스쿠찌 에스프레소 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식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러 온 이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35평 가까운 중대형 매장임에도 커피숍에 으레 있는, 책이나 노트북을 펴고 눌러앉은 ‘카공족’은 보이지 않는다. 두 손바닥을 쫙 펴면 끝이 닿을 작은 협탁 위에 탁구공만 한 작은 커피 잔 2개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발 디딜 틈 없이 밀려들었던 손님들은 30분여가 지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짧고 진하게’ 커피를 즐기는 에스프레소 바가 커피 업계에서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서울 핫플레이스를 중심으로 하나둘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SPC도 파스쿠찌를 통해 시범 매장 운영에 나섰다. 포화된 커피 전문점 시장의 ‘게임 체인저’ 창업 아이템이 될지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양재역 인근 SPC 본사 뒤편의 파스쿠찌 에스프레소 바. <윤관식 기자>
▶‘에스프레소 바’가 뭐길래
▷아메리카노에 물 안 탄 伊 정통 커피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이탈리안 정통 커피다. 그대로 마시기에는 쓴맛이 강해 물을 타서 희석시킨 아메리카노가 커피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커피 시장이 성숙해지고 소비자 입맛이 다변화되며 추출한 원두커피 맛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에스프레소 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바의 특징은 한마디로 ‘패스트 캐주얼’이다. ‘데미타세(demitasse)’라는 조그만 잔에 20~30㎖ 정도 소량의 커피를 1500~3000원 안팎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다. 특히 의자 없이 서서 마시는 바가 대부분이다. 의자를 놓은 파스쿠찌 에스프레소 바도 높은 스탠딩 의자 또는 쿠션이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 위주로 배치했다. 카공족이 안 오니 고객 회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고객당 평균 체류 시간은 5~20분 안팎에 그친다고.
서울 시내 에스프레소 바는 현재 수십 개에 그친다. 경쟁이 적은 블루오션이지만, 틈새시장에 그칠 수도 있어 아직은 확장세가 더딘 모습이다.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에 비해 대중적 수요가 적은, 마니아 수요가 강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업체들은 저마다 다른 콘셉트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메뉴 전략부터 매장 형태, 배달·포장 여부까지 모두 상이하다.
선발 주자로 꼽히는 곳은 서울 시내 4개점(합정, 해방촌, 마곡, 종로)을 운영하는 에스프레소 바 체인 ‘오우야’다. 오우야는 상권에 따라 매장 인테리어나 메뉴를 차별화하는 ‘하이퍼 로컬’ 전략을 편다. 해방촌점은 빈티지하고 자유로운 콘셉트, 종로점은 낭만과 추억, 마곡점은 절제된 경쾌함, 합정점은 얼리어답터 감성에 초점을 맞췄다. 서서 마시는 ‘스탠딩 콘셉트’가 주력이지만 종로점은 상권 특성에 맞게 25평 매장에 의자를 두고 ‘쌍화차라떼’도 판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라떼류 매출 비중은 8:2 정도.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곳’이라는 콘셉트에 집중하기 위해 음료류는 팔지 않는다.
“오우야는 ‘산미 없이 진하고 묵직한 각성 커피’가 특징이다. 이를 위해 생두를 사서 직접 블렌딩, 로스팅한 원두를 쓴다. 지난 9월부터는 카페에 원두를 납품하는 유통 사업도 시작했다. 매장은 오우야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보여주는 쇼룸 기능을 하고, 원두 유통으로 수익을 내는 ‘에스프레소의 블루보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김성빈 오우야 대표의 설명이다.
‘스탠드업플리즈바이턴온’은 지난 2월 성수동에서 문을 열었다. 아르바이트 포함 20년 가까운 커피 경력을 가진 육관영 대표가 운영 중인 커피 전문점 7곳 중 하나다. 성수동 직장인들이 식후 짧게 커피를 즐기거나 아이디어 회의를 하러 즐겨 찾는다는 전언이다.
“커피 전문점은 상향 평준화된 시장이어서 얼마나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난해 말부터 에스프레소 바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해 올해 트렌드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진입했다. 오픈 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매출이 오르고 있다. 초기에는 아메리카노 매출 비중이 80%에 달했지만, 인지도가 높아지며 지금은 에스프레소 비중이 40%까지 늘었다.”
육관영 대표의 설명이다.
파스쿠찌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게 이탈리안 정통 커피를 표방한다. 대표 메뉴는 ‘골든색(Golden Sack)’ 원두로 만든 싱글 에스프레소 1잔과 베리에이션 메뉴 1종을 선택해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 세트(4200원)’다. 베리에이션 메뉴는 마끼아또, 콘 파나 등 총 7종. 주류도 취급하는 이탈리아 현지 에스프레소 바의 콘셉트에 맞춰 칵테일도 파는 것이 특징이다. 단, 쿠션 없는 의자를 두고 샌드위치 등 디저트류를 강화한 것은 국내 상황에 맞게 현지화한 부분이다.
파스쿠찌 관계자는 “아메리카노 메뉴를 추가할지 검토 중이다. 수요는 분명 있지만 그럼 에스프레소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질까 하는 고민이 있다. 기존 파스쿠찌 점주들의 가맹 문의도 들어온다. 연내 인천공항에 2호점을 오픈, 시장성을 계속 확인하며 가맹 여부를 검토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오우야 합정점의 바테이블 앞에 서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고 있는 손님들. <윤관식 기자>
▶창업 시 주의할 점
▷‘마니아 고객’ 많은 상권 찾아야
입지와 콘셉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에스프레소 바는 커피 전문점과 창업 비용이나 수익률이 대동소이하다. 스탠딩 콘셉트의 10평 안팎 소형 매장이면 바리스타 혼자서도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다. 육관영 대표는 “커피 전문점은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된다. 최근 인건비가 높아져 순이익률은 매출의 25~30% 정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창업 시 주의할 점. 에스프레소 바는 아직 마니아 수요가 많은 틈새시장이어서 상권 분석이 특히 중요하다. 오래 머물지 않고, 테이크아웃이 어려워도 아메리카노 외 색다른 커피를 즐기려는 커피 애호가가 많은지 살펴봐야 한다.
회전이 빠른 만큼 설거지를 많이 해야 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는 일회용컵이 아닌, 작은 잔에 제공된다. 식기세척기를 이용한다면 소음에 신경 써야 한다.
기존 커피 전문점들이 에스프레소 메뉴를 추가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눈꽃빙수, 흑당버블티 등은 반짝 인기를 끌자 카피캣 매장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잇따라 유사 메뉴를 선보이며 전문점만 살아남았다. 에스프레소는 가격이 저렴해 자칫 아메리카노 수요를 잠식하는 ‘카니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기존 커피숍의 신메뉴 추가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한쪽에서 제기된다.
“국내 프리미엄 커피 시장에서는 스페셜티커피 이후 새로운 커피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에스프레소는 합리적인 가격에 마끼아또, 콘 파나, 에스프레시노, 돌체 등 다양한 변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물론 국내 커피 시장의 90%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즐기니 에스프레소 바는 우후죽순 늘릴 수 있는 창업 아이템이 아니다. 커피 시장의 성장과 함께 서서히 애호가들이 늘게 될 것이다.” SPC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성빈 대표는 “에스프레소는 커피의 본질이고 시작이어서 반짝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향후 지속적으로 대중화될 것으로 본다. 브랜드 정체성과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