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물결이 사납게 일렁인다. 빠 드 깔레(Pas de Calais, 영국명 도버 해협)를 바라보는 나폴레옹의 눈빛이 일렁이는 파도만큼이나 조바심에 타오른다. 불과 30㎞. 저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유럽을 제패하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완성할 수 있는데. 1805년 스페인과 연합함대를 만들어 영국에 맞선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대패는 나폴레옹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다를 건너 영국을 정복할 수 없다면 영국 스스로 항복하고 자신에게 자비를 청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패권에 눈이 먼 영웅은 1806년 베를린 칙령과 1807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다. 영국 경제를 고립, 붕괴시키기 위해 유럽 대륙의 모든 국가는 물론 미국 등 중립국까지 영국과의 교역을 전면 제한하는 대륙봉쇄령이 그것이다. ‘영국은 상인의 나라’로 무역 차단을 통해 쉽게 굴복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은 그러나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고 있었던 상황을 간과하고 말았다. 유럽은 오히려 영국의 상품이 필요했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밀수가 성행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이를 견디지 못한 러시아가 봉쇄령을 이탈하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결정하고 마침내 제국의 몰락은 시작되고 만다. 팍스 브리타니카. 대영제국의 서막도 그렇게 시작된다.
비단 대륙봉쇄령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패권 경쟁은 관세와 통상을 둘러싼 헤게모니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오스만 제국의 교역 중단 조치는 대체 무역로 확보를 위한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차 조례(Tea Act)로 대변되는 영국의 고율 관세는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 미국이 선택한 자국 산업 보호 명분의 고율 관세정책인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세계 무역의 3분의 2를 감소시키며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다. 그래서일까? 전후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를 출범시키며 세계 무역의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Si les marchandises ne traversent pas les frontières, les soldats le feront.”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군대가 국경을 넘게 된다.) 180년 전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했던 시절을 살아간 고전 자유주의 사상가 프레데릭 바스티아(Frederic Bastiat, 1801-1850)의 말이다. 오래된 서적의 한 구절이어야 할 문구가 다시금 주목받는 시절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폭탄으로 불리는 새로운 무역환경의 시대는 GATT체제가 추구해 온 가치와 기반을 흔들고 있다. 배경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한 것처럼 재래식 무기에 기반한 패권 경쟁이 아직은 유효하다는 판단일 수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추구하며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옮겼던 미국이 재래식 전쟁을 맞이했을 때 국가 안보를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자각을 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한 다소 시대 역행적인 선택일까? 아니면 매우 미래지향적으로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전혀 새롭게 펼쳐질 세계질서에서 지속적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흔들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현재의 역량을 총결집하는 것일까?
그 배경이 무엇이든 오늘의 주제는 패권국가의 속내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세계인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 가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세계사는 부침이 있었지만 하나의 세계를 향한 도도한 행보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15구 센강 한가운데 백조섬(île aux Cygnes)이라는 인공섬이 있다. 영화 인셉션에 등장하는 비르하켐 다리(Pont de Bir-Harkem)에서 시작되는 이 섬은 신혼부부들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는 명소로 유명하다. 섬의 끝에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4분의 1 크기인 작은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세계를 계몽시키는 자유(La Liberté éclairant le monde)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담아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며 1886년 10월 28일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에 기증한 선물이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 국민들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그대로 복사한 여신상을 파리에 선물한다. 바로 백조섬 자유의 여신상이다. 뉴욕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가 제작했다. 파리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책에는 ‘1776년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과 1789년 7월 14일(프랑스 혁명 기념일)은 같다(IV Juillet 1776 = XIV Juillet 1789)’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서양을 오가며 서로를 응원하고 세계가 나갈 방향을 함께 인식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두고 프랑스의 한 의원이 자유의 여신상의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원색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우리에게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무엇을 지향하고 우리는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까? 서로에게 실망하고 과거의 선의를 돌려달라고 하기 전에 그 가치를 처음 세웠던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의 혼란 그 너머 분명히 있을 우리의 목표를 찾아야하지 않을까?
JR(Jean René)이라는 젊은 프랑스 작가를 소개한다. ‘거리는 나의 갤러리다’라는 철학을 주장하며 사진을 공공 공간에 부착해 불평등, 정치적 경계, 인종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화를 촉진시키는 활동을 하는 작가다. JR은 미국 뉴욕의 엘리스 섬(Ellis Island)의 폐허가 된 이민자 병원에서 대형 설치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1902년부터 1950년까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입국한 이민자 27만 명이 거쳐간 이 병원의 당시 의사, 간호사, 환자의 흑백 사진을 폐허가 된 건물에 설치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흔적을 되살려 내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려는 노력이다. 뉴욕에 여신상을 선물한 프랑스인의 마음,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보답, 그 가치가 말하고 있는 보편적 정신. 다시 그 기억을 살려야 한다.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마음이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게 세계사의 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