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오픈AI의 챗GPT와 경쟁할 수준의 AI 모델 R1을 전격 공개하면서 세계 AI 반도체 시장이 요동쳤다. 딥시크의 깜짝 등장은 AI 반도체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했다. 딥시크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딥시크 등장은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가 중국의 기술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한편,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딥시크의 성공은 AI 반도체 시장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주요 반도체 기업에도 큰 숙제를 안겨줬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글로벌 핵심 공급업체로서 중국 AI 기업들의 수요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HBM은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로, 엔비디아, AMD 등 주요 AI 칩 제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딥시크가 저사양 GPU로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SK하이닉스 주가는 하락했다. 딥시크가 오픈AI의 챗GPT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개발 비용이 더 적은 모델을 출시하여 주목을 받은 결과다. 저사양 GPU에도 HBM이 사용되지만, 높은 대역폭이 필요하지 않아. 앞으로 HBM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이 같은 혁신 기술의 등장으로,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로 인해 반도체 수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여전히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공급 기업으로 남아 있지만, 향후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딥시크로 인한 충격에 대한 질문에 “시장에서는 장기적인 기회와 단기적인 위험이 동시에 존재할 것”이라며, “현재 여러 고객에게 GPU에 필요한 HBM을 공급하고 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업계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론 딥시크가 주요 메모리 업체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주요 빅테크들이 최근 실적 발표에서 딥시크의 영향력을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언급하면서, 당분간 AI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메모리 업체의 단기 실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의 올해 판매 계약이 이미 끝났다는 점도 딥시크로 인한 충격을 줄여주는 핵심 요인이다. 통상 HBM 공급은 1년 단위의 사전 계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고부가 AI 반도체의 올해 판매 물량과 가격에 대한 변동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HBM의 공급 구조가 1년 단위의 사전 계약을 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올해 연간 판매 물량이나 가격에 큰 변동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하며, “따라서 HBM 시장에서 급격한 변화는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딥시크로 AI 생태계가 더욱 다양하게 확장됨에 따라 장기적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딥시크의 LLM 공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는 오히려 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투자가 더욱 촉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와 데이터 처리 기술 발전이 반도체 수요를 더욱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고성능 AI 칩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소규모 AI 모델 개발 시장을 열면서 반도체 파운드리와 맞춤형 HBM 시장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딥시크의 성공을 계기로 소규모 인공지능 모델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이를 지원할 맞춤형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소형 AI 모델에 적합한 고성능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술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HBM과 파운드리 시장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AI 모델의 요구 사항에 맞춘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 사항도 존재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한층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 발전과 AI 모델의 확장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을 막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내놓고 있다. 향후 규제 수준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AI 기업들은 우회적인 방법을 찾아내며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AI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AI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기술 패권 경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대비한 전략적 대응이 각국 정부와 기업들에게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 또한 변화하는 AI 반도체 시장에 맞춰 유연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 시장의 수요 변화는 향후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반도체 시장 내에서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존 반도체 업체들은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다각도로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향후 AI 반도체 기술과 관련된 산업 환경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며 이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망 전략, 연구개발 투자 방향, 시장 점유율 경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그에 맞는 기술 혁신과 유연한 공급망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든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