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보험 줄줄이 신용등급 강등 예고… 코로나19 정책으로 실물·금융 복합위기 넘어설까
박지훈 기자
입력 : 2020.04.27 15:18:23
수정 : 2020.05.02 12:24:31
코로나19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금융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방위적인 실물경제의 타격은 생산, 소비, 투자, 고용, 수출 등 모든 경제 지표를 떨어뜨렸다. 이러한 현실에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해 발표했다. 자동차, 정유·화학, 철강 등 기간산업은 물론이고 이동제한과 소비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항공·호텔·유통산업, 금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실물경제의 위기는 곧바로 기업들의 실적악화로 이어진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금리가 인상되어 제때 필요한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실물경제의 위기가 금융위기로 이어지며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있다.
▶은행·증권 신용등급 줄줄이 하락 예고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먼저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리스트에 오른 회사는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로 지난 8일 신용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에서 ‘하향 조정 검토’로 변경했다. 지난 4월 2일 한국 은행업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증권사들도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 검토하겠다는 신호다. 금융사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회사채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부담으로 작용하고 은행권의 이러한 자금 조달 문제는 국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무디스, 피치가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이 단초가 되기도 했다. 당시 외국계 신평사들은 유동성 위기로 판단해 국내 은행에 대해 등급 전망 하향 조정에 그쳤으나 올해는 직접적인 실제 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무디스는 은행들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은행들의 영업 환경과 대출 실적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업환경이 악화하고 있고 식당이나 접객업소, 교통, 제조업 등 부문에서 대출 부실화의 위험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6개 증권사의 경우 ▲파생결합증권 관련 거래 ▲단기금융업과 우발부채 ▲저금리 환경에서 리스크 선호 확대에 따른 해외·부동산 자산 증가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앞서 증권사들은 해외지수 급락으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증거금 요구에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현금화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다. 아울러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해외 자산, 부동산 자산을 급격히 늘린 것도 자산 건전성에 우려를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국내 증권사들은 신규먹거리를 창출하고자 해외 부동산펀드 규모를 확대해 왔다.
특히 국내 지방은행들은 대형은행에 비해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아 기업부실에 따른 유동성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지방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지난해 말 기준 0.59%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0.86%)에 비해서도 악화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2008년 말 11.54%에서 5.60%까지 뚝 떨어졌다. 지방은행의 높은 예대마진 비중도 위기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국내 지방은행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전반적으로 금리 하락 추세로 순이자마진(NIM)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였다. 특히 지방은행은 시중은행 대비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데, 기업대출은 대부분은 변동금리 대출이라 금리 하락기에 수익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무디스는 이미 코로나19발 자산리스크 확대를 우려하며 지난 3월 부산은행, 대구은행, 제주은행, 경남은행 등 4개 지방은행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구·경북지역과 관광, 서비스, 식음료, 유통업종의 중소기업 거래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규제 풀어 금융사 숨통 트일까
금융당국은 먼저 시중에 떠도는 위기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6일 “‘O월 위기설’ ‘발등에 불’ ‘OO기업 자금난’ 같은 표현은 정부를 더 정신 차리게 하지만, 시장 불안을 키우고 해당 기업을 더 곤란하게 할 우려도 있다”며 업계에 떠도는 위기설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은 위원장은 이날 언론과 민간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기업자금 위기설’을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경제가 어려운 시기마다 자금 위기설이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결국 과장이었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또한 금융위는 또 최근 상승하는 기업어음(CP) 금리는 3월 분기 말 효과가 작용한 것이라 분석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회사채(CP) 스프레드가 미국 등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많이 벌어진 것은 아니고,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379bp(1bp=0.01%포인트)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4월 19일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함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 논의동향과 국내 금융권의 실물경제 지원 역량 강화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마련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금융규제 유연화 방안’을 발표했다.금융당국은 먼저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에 출자하는 금융사들의 자본부담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은행의 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을 완화하는 등 금융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금융사들의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이를 통해 전 금융권의 자금공급 여력이 최대 394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100조원+α’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금융사들은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자본·유동성규제 등 금융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줄 것을 요청해 왔다. 금융안정위원회(FSB)도 각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해 금융규제를 유연화할 것을 권고했고, 현재 각국도 유연화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방안에 따르면 증안펀드에 참여하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자본적립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현행 규정상 은행의 증안펀드 투자금은 위험가중치 300%가 적용되나 이를 100%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증안펀드가 주식시장 안정이라는 ‘특정 경제 분야 지원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일반적인 주식 보유 대비 3분의 1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된다는 설명했다.
3월 3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오른쪽 둘째) 등 은행권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보험사와 증권사의 경우 증안펀드 출자액에 적용되는 위험값은 일반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대비 하향 조정된다. 보험은 기존 8~12%에서 6%로, 증권은 9~12%에서 4.5~6%로 낮춘다. 이는 세제혜택 등 정책적 지원으로 일반적인 ETF 투자에 비해 손실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증안펀드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결과다.
증권사의 경우 기업 대출채권에 대한 순자본비율(NCR) 규제가 완화된다. 기업에 대한 증권사의 자금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건전성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른 조치다. 증권사들은 오는 9월 말까지 신규 취급한 기업 대출채권에 대해서는 최대 2년 만기까지 위험값 산정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키로 했다.
이에 따라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오는 9월 말까지 신규 취급한 기업대출금 위험값은 현행 0~32%에서 0~16%로, 일반 증권사의 대출채권은 영업용 순자본에서 차감(위험값 100%)하는 대신, 거래상대방별 신용위험값(0~32%)을 적용한다. 단 부동산 관련 법인은 제외된다. 또 일정 규모 내 중소·벤처기업 대출채권에 대해서는 위험값을 영구적으로 현행 100%에서 0~32%로 내린다. 이를 통해 증권사들의 자금공급 여력이 8조6000억원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다. 코로나19로 자금이 부족한 자회사에 대한 다른 자회사의 신용공여 한도는 한시적으로 확대한다. 자회사의 다른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현행 자기자본의 10%에서 20%로, 자회사의 다른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합계를 자기자본의 20%에서 30%로 확대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간 신용공여 한도를 원칙적으로 자기자본의 10%로 제한하고 있다.
은행들의 예대율 규제 적용은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개인사업자대출 가중치는 하향 조정된다. 은행의 신규 대출 및 기존 대출 만기연장 등 실물경제 지원 과정에서 대출 규모가 증가할 경우 예대율 준수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고, 특히 소상공인 대출의 경우 중소기업 등 법인대출에 비해 높은 가중치가 적용되고 있어 은행들이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제약할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금융당국은 내년 6월 말까지 5%포인트 이내의 예대율 위반에 대해서는 제재 등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조치의견서 및 법령해석을 발급토록 했다. 구체적으로는 위반 시에도 경영개선계획 제출 요구 등의 제재를 면제하고, 경영건전성을 크게 저해하는 의무 경영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법령해석을 발급할 예정이다. 예대율 한시적 완화로 은행들의 자금공급 여력이 71조6000억원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또 올해 중 취급한 개인사업자대출에 대해서는 가중치를 현행 100%에서 85%로 내려 은행들이 개인사업자대출 여력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다만 개인사업자·법인 대출 중 신규 주택임대업·매매업 대출에 대한 가중치는 가계대출과 동일수준(115%)을 적용한다. 이밖에 채권시장안정펀드, 증안펀드 출자자금 조달을 위한 보험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가 허용된다. 현행 규제는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 또는 적정 유동성 유지 목적으로만 차입을 허용하고 있으나, 채안·증안펀드는 수익 목적이 아니라 시장안정을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므로 유동성 유지 목적이 인정된다는 법령해석을 발급키로 했다.
아울러 전 금융권에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에 대해 기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유지함으로써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할 필요가 없고, 미수이자를 회계상 이자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법령해석을 발급할 계획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일괄적인 상환일정 변경일 뿐, 개별 차주의 상환능력 악화에 따른 원리금 감면이 아니므로 채권의 가치변화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은행들 위기 이후 넥스트 노멀 대비해야
한편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넥스트 노멀(Next Normal·새 표준)’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영업이 급증하고 향후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될 것이란 예측이다. 아직 디지털화가 미진한 은행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며 이런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은행, 코로나19 이후 넥스트 노멀에 대비 필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점을 방문하는 대신 비대면 채널을 통해 업무를 보는 고객이 증가했다”며 “이미 진행 중인 은행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해 결국 은행의 영업 모델을 바꾸는 ‘넥스토 노멀’을 야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대 재무 설계 자문 기업인 드비어(deVere) 그룹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생활이 확대되어 관련 핀테크 기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 퇴직 연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핀테크 업체인 ‘401GO’는 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해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도 API를 기반으로, 은행 시스템과 제3자의 서비스를 연계해 고객에게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인 ‘서비스형 블록체인(BaaS)’이 주목받고 있다.
이령화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은행 서비스를 API를 활용해 은행 라이선스가 없는 제3자와 연결하면, 고객에게 낮은 비용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즉각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국내 은행도 현재 보유한 오픈 플랫폼과 API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진행 중인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넥스트 노멀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