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달이 뒤처지고 정보화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일 년이 뒤처졌지만 AI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집니다.”
지난 11월 4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의 2026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 중 한 대목이다. 이날 이 대통령은 늦은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국내 기업들의 AI 도입 현황은 이미 잰걸음이다. 2025년 기업들의 AI 도입과 성과, 과제를 돌아봤다.
2018년 이전의 AI는 주로 대기업이나 IT, 금융 분야에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전체 기업의 5% 미만 수준이었다. 이후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며 2020년 7%대까지 상승한다. 2022년에는 챗봇과 RPA(로보틱 공정 자동화) 등 실무형 AI 솔루션 도입이 늘었고, 2023년에 챗GPT 등 생성형 AI기술이 대중화되며 기업의 AI 도입률이 30%대까지 근접한다. 2024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국내 기업들의 AI 도입률은 30.6%로 집계됐다. 반면 78.4%의 기업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 도입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1년이 지난 현재, 테크서베이 플랫폼과 메가존 클라우드가 올 6월 총 749명의 기업 내 IT 및 AI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국내 기업들의 AI 도입률이 55.7%로 껑충 늘었다. 이미 절반 이상 기업이 AI를 도입했고 내년에는 85%까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러한 수치의 근거 중 하나는 ‘피지컬AI’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다. 기존 생성형 AI는 텍스트·이미지·코드처럼 디지털 정보만 다루지만, 피지컬AI는 로봇·자율주행차·드론·휴머노이드 등 물리적 장치를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게 만든다. 지난 11월 20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최한 ‘피지컬 AI 인터내셔널 포럼 2025’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데니스 홍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컴퓨터 안에만 존재하는 데이터를 꺼내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게 인공지능 로봇이자 피지컬AI”라며 “AI가 실제 세계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로봇이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 즉 피지컬AI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네이버다. 미래 먹거리로 피지컬AI를 강조하며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엔비디아와 협력을 통해 피지컬AI 플랫폼을 공동개발을 위한 블랙웰 GPU 6만장을 확보했다. 네이버의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중심으로 클라우드·로보틱스·디지털트윈을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제조·물류 현장을 반영한 3D시뮬레이션 기반 AI플랫폼을 구축하고 로봇 학습에 이용하면 제조업 생산성 및 물류 자동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도 CES 2025에서 “피지컬AI가 50조달러(약 7경 2000조원) 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여타 국내 대기업에서도 꾸준히 투자를 늘리고 있다. 테크서베이 플랫폼과 메가존 클라우드의 보고서를 좀 더 살펴보면 70%의 기업들이 ‘업무 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생성형 AI를 도입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은 주로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문서요약’(43.1%), ‘데이터 분석’(40.3%), ‘프로그래밍 보조’(37%) 등에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올해 이미 AI 관련 투자를 늘렸다고 답한 기업 중 37.2%는 내년에도 50% 이상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대기업들이 활발한 움직임과 달리 중소·중견기업들은 AI 도입과 투자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임직원 수가 1000명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35.1%가 ‘전사적으로 AI를 활용한다’고 답했고, 중소·중견 기업에선 15%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 기업에서 AI 도입이 지연되는 이유는 ‘기술 및 IT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AI를 도입하려면 기존 IT 인프라와는 달리 고성능 컴퓨팅, 대규모 데이터 처리 및 저장, 고속 네트워킹 등 고가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을수록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선 ‘인프라 부족’과 함께 ‘AI 전문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AI 전문 인력의 잦은 이직과 퇴사로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군별 AI 도입율 차이도 눈에 띈다. IT·통신·방송 산업군이 전사적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이 37.5%로 가장 두드러졌다. 이에 비해 국내 제조업 AI 도입 수준은 초기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 제조기업들의 AI 활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최근 1~3년 사이 비제조업 분야 기업들의 AI 도입률이 74.3%인 것에 비해, 제조업은 64.5%에 그쳤다. 이중에서도 전사적 활용은 소수에 그치고 대부분은 일부 부서나 프로젝트 단위에서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비용·인재·불확실한 효과성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04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를 살펴보면 응답 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의 활용도(4.2%)는 대기업(49.2%)의 10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AI 전환 이전에 데이터 축적을 위한 디지털 전환(DX)부터 투자 비용이 가장 큰 부담으로 꼽혔다. 기업의 73.6%가 “데이터 라벨링, 센서 부착, 설비 공정 기획, 솔루션 구축, 전문 인력 투입 등 초기 투자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60.6%는 “AI 도입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조업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투자수익률(ROI)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재형 기자 · 박수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