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전개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묻힌 풍부한 광물 자원이 세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실상 종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미국의 전쟁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광물자원을 돌연 내놓으라고 압박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측면이 있지만, 이미 국제사회는 그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각종 지하자원을 주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빠르게 힘의 논리로 이슈 선점을 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을 시작한 직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면서 그 전제 조건으로 5000억달러 규모의 광물협정을 추진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동의하지 않는다면 군사적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미국이 더 이상 무기 지원을 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의 안보는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이에 광물자원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이지만 ‘주권’을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안에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후 광물자원을 지렛대로 국가 재건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려 했던 계획도 무위로 돌아갔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세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광물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터무니 없는 ‘막가파식’ 관세 정책을 통해 세계를 적으로 돌렸다. 이는 선택적 고립주의를 취하는 동시에 미국의 글로벌 패권도 유지해야 하는 이중의 숙제에 맞닥뜨린 측면도 있는데, 이 대목에서 최우선으로 의식해야 될 대상이 중국이다. 트럼프는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는 더욱 강경 대립 노선을 취하고 있는데, 중국도 손에 쥔 패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다분히 신경을 써야 할 존재다.
이 점에서 미국이 가장 취약한 고리가 바로 반도체·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주요 광물자원들이다. 현재 이들 산업에 쓰이는 희토류의 가치는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데, 중국이 이 대목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네오디뮴(Nd)과 세륨(Ce), 우주선 제조에 필수적인 터븀(Tb)과 프라세오디뮴(Pr) 등 중국에 매장된 각종 희토류는 세계 1위 수준이다.
AI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미국이 이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자국의 우위를 지속하려면 ‘희토류 공급망’ 역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이든 정부때부터 이 부분에 신경을 써왔지만, 자국에 없는 자원은 수입이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약한 고리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중국은 미국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실세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흔든다면 미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체가 이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경고음은 울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지정학적 위기는 세계 산업에서 필수인 핵심 원자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탄력적이면서도 다각화된 공급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미 방송사인 NBC는 “현재 희토류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는 곳은 중국이 문을 잠그면 미국에 큰 위협이 된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에 대한 욕심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도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풍부한 광물 자원은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이 생각대로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단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있는 희토류의 실체가 다소 불분명하다. 현재 추정되는 매장량은 구 소비에트 연방시절 나온 수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희토류가 상당한 매장량이 있다’고 만 할 뿐 매장량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게다가 희토류의 채굴과 생산이 진행된 적이 없다. 일각에서는 희토류의 경우 매장량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희토류를 포함한 각종 광물의 정확한 매장량부터 파악해야 하고, 또한 자원 개발이 진행될 때도 필수적인 막대한 재원도 조달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자원개발은 에너지 집약 산업인데, 러시아와 장기간 전쟁을 치른 탓에 우크라이나 내 전략 사정은 좋지 않다. 전략망이란 기간산업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되면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우크라이나로부터 희토류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30년 우크라이나 광물 및 원자재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산업적 경제적 가치에 따라 광물을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는데, 희토류의 경우 상당한 매장량을 갖고 있으나 채굴이 제한적이거나 채굴하고 있지 않는 광물로 분류하고 있다. 스칸듐, 이리트륨, 세륨 등의 희토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의 상당 부분이 현재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지역에 있다는 추정도 광물협정으로 미국이 얻을 실제적 이익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단 분석에 힘을 싣고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약 20%가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추정이 있는데. 캐나다 싱크탱크 세크데브(SecDev)는 이 곳에 묻힌 광물 매장량 가치를 약 12조 4000억달러로 추산했다.
주로 전쟁 이후 러시아로 강제 합병된 자포리자와 도네츠크에 있는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을 향한 시선이다. 일단 알려진 것들은 희토류 아닌 철강석, 망간 등이다.
철광석의 경우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지역에 있는 빌로제르스케 및 프리아조프스키의 매장지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이자 망간의 주요 생산지인 드니프로페트로브스크 지역의 니코폴도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포리자내에는 전기차 시대 비중이 높아진 리튬 광산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희토류가 묻힌 곳도 러시아의 통제권 아래에 들어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글로벌 차원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각국, 특히 유럽의 발걸음이 미국 못지 않게 빠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에 대한 헤게모니를 확실하게 쥐기 전에 발을 같이 담그려는 모양새다. 다만 미국과 달리 유럽은 우크라이나와 의 윈-윈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지난 3년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프랑스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광물 협정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자신들은 2024년 가을부터 방위산업을 위한 광물 활용 방안을 논의해 왔다고 공개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자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2024년 가을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파리에 왔을 때 전쟁 승리를 위한 계획에 원자재 문제를 포함했다”며 “우크라이나측은 원자재 문제가 우리와 거래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 방위산업도 특정 원자재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의 광물이 전쟁 지원에 대한 ‘대가’냐는 물음엔 “아니다. 보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테판 세주르네 유럽(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는 유럽이 필요로 하는 30개의 중요 자원 중 21개를 공급할 수 있지만 (우리는) 서로 상호 이익이 되지 않는 거래는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에너지 안보 우수 센터(ENSECCOE)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광물 자원의 약 5%를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지질 지형을 가진 덕에 116종의 자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약 2만 개의 천연 매장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산업적으로 중요한 매장지는 약 8300개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침공 전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광물 자원 중 전 15% 정도만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을 향한 국제적 관심이 높은 것은 티타늄, 리튬, 베릴륨, 망간, 갈륨, 우라늄, 지르코늄, 흑연, 인회석, 형석, 니켈 등 첨단 산업에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자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 지질조사국이 2022년에 지정한 국가 안보 및 경제에 가장 중요한 광물 50개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먼저 티타늄의 경우 매장량 기준에서 세계 10대 국가에 포함된다. 20개가 넘는 티타늄 매장지가 있으며, 세계 매장량의 7%가 우크라이나 내에 묻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티타늄은 항공우주, 의료, 자동차 등의 산업에 필수적이다. 러시아와의 전쟁 전 유럽 내 군사 부문의 주요 티타늄 공급국이었다.
전기차 시대 필수소재인 리튬 보유량도 풍부하다. 리튬 역시 유럽 내 매장량이 가장 많다. 50만 톤 정도로 추정되는데, 세계 매장량의 1% 정도 된다. 반도체와 LED에 반드시 쓰이는 갈륨의 경우 세계 5위의 생산국이다.
베릴륨(항공우주·전자 산업), 우라늄(원자력·군사), 지르코늄·아파타이트(의료) 등도 우크라이나 내 매장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흑연 매장량은 전 세계 자원의 20%를 차지한다. 철강석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지가 있다. 구리, 납, 아연, 은과 같은 전통적 광물자원도 상당한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상당하다.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약 5조 4000억입방미터(tcm)로 추정되는데, 노르웨이에 이어 유럽 내 가스 매장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세계 광물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광물 생산량 기준 24위로 평가되고 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