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을 뒤흔든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먼저 5월, 드비어스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고, 곧이어 GIA(미국보석감정원)가 감정 체계 개편을 예고했다. 무게감 있게 다가온 건 다이아몬드 업계의 전통적인 강자 드비어스가 자사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 ‘라이트박스’를 완전히 접는다는 소식이었다. 6월 초 라스베이거스 JCK 쇼에 참석한 것도 이 격변의 흐름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수호자가 적진에 뛰어들었다”는 표현과 함께 시장을 술렁이게 했던 바로 그 브랜드가 7년간의 실험을 끝내고 결국 무대를 떠난다. 한때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 예상했던 브랜드의 퇴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드비어스는 2018년, 캐럿당 800달러라는 가격표를 붙인 라이트박스를 내세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패션 주얼리 영역에 묶어두려 했다. 핵심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상징성, 특히 결혼 반지 시장을 지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드비어스의 이름값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신뢰를 부여했고, 이는 애초의 전략과 반대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알 쿡 드비어스 CEO는 철수 발표에서 “라이트박스 사업 철수는 천연 다이아몬드에 대한 드비어스의 책임에서 비롯된 결정”이라고 밝혔다. 치열한 가격 경쟁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가격의 급락, 수익성 악화가 주요 원인이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라이트박스 생산 시설은 산업용 다이아몬드 생산 기지로 전환된다. 드비어스가 보석용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서는 손을 떼지만 전자·자동차·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의미다.
GIA의 결정은 더 근본적인 경계를 드러낸다. 2025년 후반부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기존의 4C(Color, Clarity, Carat, Cut) 등급 대신 ‘프리미엄’ 또는 ‘스탠다드’ 두 등급으로만 분류된다. 품질이 기준에 미달하면 등급 자체를 부여하지 않는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95% 이상이 매우 좁은 범위의 컬러와 클래리티 등급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인공 다이아몬드가 표준화된 환경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수십억 년에 걸쳐 각기 다른 조건으로 형성된 천연 다이아몬드와 표준화된 공정에서 대량 생산되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근본적 차이를 GIA가 공식 인정한 셈이다. 개별성과 희소성을 갖추기 어려운 제품에 천연석과 같은 정교한 등급 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소비자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판단에서다. GIA는 두 시장의 명확한 분리를 통해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아몬드 시장의 흐름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데이터는 젊은 소비자층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2023년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의 14.3%를 차지했고, 2025년에는 21%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2024년 52%의 커플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선택할 정도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확연하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현재 같은 품질 기준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대비 최대 80%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품질이 향상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와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동시에 중국과 인도 제조업체들의 대거 진입으로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처럼 가격 격차는 여전히 소비자 선택에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나 분쟁 지역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소비라는 명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생산 역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특히 화석연료 기반 전기에 의존하는 생산지에선 환경적 이점이 제한적일 수 있다. 온라인 쇼핑 확산이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보급을 가속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급격한 가격 하락으로 인한 투자 가치 상실과 희소성 약화에 대한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라이트박스의 7년 여정은 시장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강력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기업도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 트렌드 앞에서는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이아몬드 시장은 브랜드의 힘보다는 소비자 가치와 시장 논리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두 시장이 어떻게 차별화를 통해 공존해 나갈지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결혼, 기념일 같은 특별한 순간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일상 속 합리적 럭셔리로서의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선택지는 넓어지고, 업계는 두 갈래 시장에서 각각의 성장 기회를 꾀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가 만든 흐름이 산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는 셈이다. 7년 전 드비어스조차 예상치 못한 결과. 시장은 늘 예측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인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