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집권여당의 상법 개정 후폭풍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소주주의 권익을 확대하는 취지를 담은 1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는 조만간 더 강화된 2차 상법개정안 통과를 예고하며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기업과 재계, 경제단체 등은 상법 개정의 여파와 영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선 분위기다.
1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한 점이다. 기존에는 이사가 회사 자체의 이익을 위해 의무를 다하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개별 주주의 권익 보호까지 고려해야 한다. 상법상 충실의무 확대는 향후 소송 리스크 증가와 맞물려 경영진의 의사결정 신중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는 이를 두고 “주주의 단기적 이익과 회사의 장기 전략이 충돌할 경우 경영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투자 의사결정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IT·제조업 등에서는 경영진이 법적 리스크를 지나치게 의식해 기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다른 핵심 조항은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그 비율을 기존 전체 이사의 1/4에서 1/3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코스피 상장사 2300여 곳 가운데 약 800여 곳이 해당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추가 선임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독립이사 시장 수요가 커지고, 법조·학계·회계 분야에서 전문 인력 수급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이번 개정안의 큰 변화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약 225개(전체 상장사의 약 45%)가 의무 적용 대상이 된다. 소수주주가 연합해 특정 이사를 밀어 올리는 경우, 최대주주의 이사회 장악력이 약화될 수 있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취약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역시 강화됐다. 삼성·현대차·LG 등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서는 지배구조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실제로 재계 추산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주주 측 지분이 21% 수준임에도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단 3%만 반영된다. 이는 글로벌 기준으로도 매우 엄격한 편이라는 평가다.
2027년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이 전자주주총회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약 225개 기업이 대상이며, 관련 IT 인프라 투자 규모는 최소 연간 2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이미 클라우드 기반 전자주총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대형 통신사와 보안업체들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전자주총 시스템은 해킹·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리스크가 뒤따른다. 이에 금융권을 중심으로 “국제 표준 보안인증과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의 반응은 업종별로 온도차가 컸다. 금융권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중대표소송 요건이 완화되면서 소액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금융사에 한해 적용 기준이 낮춰져 책임성 강화와 투명성 제고가 기대된다. 반면 제조업·IT기업은 전자주총 및 독립이사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대기업은 수백억원대의 이사회 개편 및 IT 보안 투자 계획을 이미 마련 중이다. 중소기업은 직접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래 대기업과의 관계를 통해 간접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8개 경제단체는 공동 성명을 통해 “상법 개정은 기업 경영권을 제약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특히 “집중투표제와 3%룰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개혁”이라며 환영했다. 이번 개정안은 단기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과 경영권 불안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투명성 제고와 기업 신뢰도 상승, 해외 투자자의 신뢰 확대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MSCI 등 글로벌 지배구조 평가기관은 한국의 개정 움직임을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적극적인 주주 권익 강화 조치”로 평가했다.
여당과 정부 측은 1차 상법개정안에 이어 더 강화된 상법 개정 통과도 예고하고 있다.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본회의 통과도 무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2차 개정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다. 이번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를 대상으로 소액주주 권익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담고 있다.
1차 개정에서 도입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토대로, 2차 개정은 구체적 실행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국회와 법조계에서는 “한국 상법이 주주 중심 지배구조로 한 단계 도약하는 분수령”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재계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앞으로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1주당 이사 수만큼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대주주가 독점하던 이사회 진입을 소액주주에게도 열어준다.
그동안 일부 기업들은 정관 규정으로 이를 배제하며 사실상 ‘형식적 제도’로만 존재했는데, 이번 개정으로 대기업 이사회에 다양한 주주의 목소리가 반영될 길이 열린 것이다. 예컨대, 과거 삼성물산-엘리엇 사태처럼 해외 펀드와 소액주주 연합이 특정 이사 후보를 밀어주려 했던 경우, 집중투표제가 있었더라면 보다 현실적인 위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계에서는 “주주권 보호 취지는 공감하나, 한국 특유의 재벌 지배구조에서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실제로 현대자동차·SK·LG 등 주요 그룹의 자산 규모는 수십조원에 달해, 집중투표제 도입 시 외국계 헤지펀드와 연합한 소액주주가 이사회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현저히 커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요건 강화도 핵심이다. 기존에는 감사위원 중 1명만을 일반 이사 선임과 분리해 뽑으면 됐지만, 앞으로는 최소 2명 이상을 분리 선출해야 한다. 이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그간 국내 기업들의 감사위원회는 대주주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형식적으로는 사외이사가 감사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그룹 총수와 지배주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 회계 투명성과 내부 통제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과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이나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처럼 감사위원회의 독립적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한 대규모 기업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1차 개정에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하여, 이사회가 단순히 대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주를 위해 행동해야 함을 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구체적 장치가 없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번 2차 개정은 바로 그 실천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즉, ‘추상적 의무에서 구체적 권한 강화’라는 단계적 진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소액주주 권익 강화라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외국계 펀드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무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헤지펀드가 단기간 주식을 매집한 뒤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를 교란하거나 경영진 교체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2015년 삼성물산-엘리엇 분쟁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제도 도입은 하되, 투기적 공격 방어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면, 자본시장과 투자자 단체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관계자는 “이번 개정으로 한국 시장의 지배구조 투명성이 강화되면, MSCI·FTSE 등 글로벌 지수 편입 비중 확대와 투자자 신뢰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국민연금과 같은 장기 기관투자자들은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하는 이사 후보를 밀어줄 수 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들도 “지배구조 개혁은 외국인 투자자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춰, 코스피 전반의 밸류에이션 개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시점 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삼성·현대차·SK·LG 등 주요 그룹들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 전에 정관 변경 및 이사회 구성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벌써부터 로펌과 자문사를 동원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는 소액주주 친화정책을 강화하며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상법 개정안의 시행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뉴 노멀’을 가져올 예정이다 과거처럼 최대주주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시대는 저물고, 독립이사·전자주총·집중투표제라는 새로운 규칙 속에서 기업들은 주주와의 관계 재정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업별 대응 전략은 이미 분주하다. 일부 대기업은 선제적으로 전자주총 플랫폼을 구축하고, 독립이사 풀을 확대하기 위한 전문 인력 확보에 나섰다. 중견기업과 금융사도 제도 변화에 맞춰 지배구조 보고서를 수정하며, 새로운 규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정치권과 산업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이번 개정안이 한국 기업 생태계에 ‘투명성 강화’라는 명분과 ‘경영 부담’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향후 경제계의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