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의 해외 시장 진출 계기는 초코파이라는 히트상품의 출현이었다. 그때가 1974년이었다. 초코파이가 한국 시장에서 대박을 치자 이를 무기로 시장을 해외로 확장하기로 결심한다. 전략은 초코파이가 출시돼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1970년대의 한국 상황과 비슷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였다.
신현창 수석은 “이들 국가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나 급격히 개혁개방을 추진한 공통점이 있다”면서 “수요 측면에서는 시장이 급속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고 공급 측면에서는 현지 제과기업의 경쟁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오리온이 중국 사무소를 연 것은 1993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다음 해였다. 이렇게 신속하게 중국 진출을 생각한 것은 1980년대 선대 회장 때부터다. 서남 이양구 회장은 향후 중국 시장이 열릴 것을 대비해 전북 익산에 공장을 지었다. 중국이 개방되면 서해가 아주 큰 길이 될 것이고 군산항이 가까이 있으니 한국보다 몇 배나 되는 중국의 제과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시기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1979년 당시 중국의 최고 실권자인 덩샤오핑(鄧小平) 주도로 소위 4대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고 이는 개혁개방의 포문을 여는 신호탄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의 보따리상들이 한국에서 초코파이를 대거 사 들고 가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정도면 중국 시장을 과감하게 노크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오리온 경영진은 1991년부터 중국 시장 답사를 시작했다. 시장이 개방될 것이란 분위기를 감지한 오리온은 현지화 준비 작업에 착수했고 1992년 수교를 맞아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오리온이 한중수교 이후 중국 시장에 뛰어든 첫 번째 기업이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담 회장이 화교 출신이어서인지 오리온은 무늬만 중국화가 아닌 진짜 중국 기업이 되고자 했고 그 방향은 옳았다. 오리온의 중국 현지화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있었다. 그건 중국 법인 설립 6년 후인 2002년 담 회장이 베이징에서 중국 법인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였다. 거기서 소위 현지화 5대 원칙이 탄생한다.
개인적으로 담 회장의 장남인 서원 씨의 서울대 경영대학원 지도 교수 인연으로 오리온 컨설팅에 깊숙이 관여했던 박남규 교수의 설명.
“담 회장이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중국 현지 직원들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재원들에게 중국에 얼마 동안 근무를 하냐고 물었더니 통상 3~4년 하고 본사로 돌아간다는 답을 하더랍니다. 그렇게 해서는 중국법인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해 ‘주재원으로 나가면 중국에 뼈 묻을 각오로 일하라’고 지시했답니다. 한국 본사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본와의 탯줄을 끊고 현지화하라는 엄명을 내렸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오리온의 글로벌 시장 진출 5계명. ①현지 시장에 왔으면 뼈를 묻어라 ②국내보다 훨씬 좋은 최첨단 장비를 가져가라 ③세계 최고의 위생 조건을 갖춰라 ④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을 팔아라 ⑤30년 동안 한국보다 30배 이상 키워라. 박 교수는 이런 원칙하에 제품과 마케팅, 영업 및 유통의 현지화를 추진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중국 시장에서 위기가 발생한 건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2016년. 공장만 짓고, 생산만 하면 그냥 팔릴 줄 알았다. 영업사원에 대한 교육도 없었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기준도 없었다. 허 부회장은 대수술을 단행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당시 중국은 생산, 영업직 합쳐 8000명 정도 인원이 있었다. 이중에는 그냥 직원의 가족까지 올려 월급만 타는 유령 직원들도 있었다. 무려 3000명을 1년에 걸쳐 정리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인데 여기서는 법에 의해 보상금만 주면 됐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서 새출발. 지금은 4133명. 2020년, 이제는 제대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2024년에는 처음으로 본사에 1334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바닥까지 추락했던 오리온을 건져내 정상화의 궤도에 올려놓은 맹장 허인철. 이제 식품업계에서 오리온은 ‘얄미운 알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걸음 더 나이가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아가고 있다. 제과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식품까지 영업을 확장했다. 그러고는 바이오로의 진격. 중국에서 결핵백신, 대장암 진단키트 등의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며 치아세포 재생기능이 있는 펩타이드를 활용한 치약도 곧 동남아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2024년에는 55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ADC(Antibody Drug Conjugates; 항체약물접합체) 항암치료제 개발회사인 리가켐바이오를 인수해 명실상부한 바이오기업으로 미래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만들기까지 허인철의 오리온 11년은 외줄타기였다. 외부에서 낙하산처럼 날아와 개혁의 칼을 휘두르는데 선뜻 반길 직원도 없었으며 오너 역시 개혁이 가져올 불확실한 미래와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마음 편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위로 아래로의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럴 때 그를 버틸 수 있게 한 건, 단 하나의 철학. 업의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약속과 그의 실천. 그리고 그 결과가 성과로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2024년 매출 3조원, 영업이익 5000억원 돌파, 영업이익률 16%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종업계 최고의 임직원 처우. 그래도 그는 두렵다. 성장이 끊어지면 그건 추락임을 알기 때문에.
“회사는 후퇴하면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어쩌면 단 하나뿐인 목표는 성장입니다. 성장이 멈추면 암담해집니다. 오리온에는 사업계획 없다는 거 아시죠. 아마 유일한 기업일 겁니다. 우리 회사의 핵심성과지표(KPI)는 전년 대비 매출과 이익이 얼마나 성장했느냐, 그 신장률입니다. 연말에 사업계획 짜느라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라고 하죠. 목표 대비 몇 % 달성 이런 거 없어요. 그런 거 하면 허위 보고 나옵니다. 그냥 심플하게 작년보다 얼마 성장했느냐. 그걸로 끝입니다.”
<취재도움: 김시균 기자>
[손현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