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국내 증시에서 약 1년 5개월 만에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례없이 길어진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이제 모든 상장 종목에 대해 공매도 거래가 가능해진다. 2023년 11월 이후 전면 금지되었던 공매도가 다시 허용되면서 외국인·기관·개인투자자 모두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맞이하게 됐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번 공매도 재개를 준비하며 무차입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시스템 도입, 개인투자자와 기관 간 공매도 거래조건을 통일하는 제도 개선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오랫동안 지적돼 온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지다.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은 갈린다. 공매도가 재개되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매매 전략이 더욱 다양해져 거래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동시에 일부 투자자들은 단기적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기도 한다. 역대 최장기간 금지가 풀림에 따라 “주가가 재평가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특정 업종이나 종목에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 아 질 것”이라는 불안 또한 만만치 않다.
공매도는 보통의 매수와 달리,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팔고 나중에 주가가 내려가면 싼 가격에 사들여 갚아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이때, 빌릴 주식이 없이 매도 주문을 넣는 ‘무차입 공매도’는 시세 조작 등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 될 수 있다. 2023년 11월 이후 정부가 전면 금지했던 이유도 바로 이 불법 공매도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 어느 곳에서도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기 금지’가 오히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신인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은 공매도는 ‘시장 가격 발견 기능’을 높이는 보편적 제도라는 입장이다.
다만, 개인투자자와 기관·외국인 간 불평등한 거래조건으로 인해 ‘개인만 손해 본다’라는 비판이 거셌던 점을 고려하여, 이번에는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먼저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원천 봉쇄할 수 있는 NSDS(중앙점검시스템) 구축을 완료해, 모든 공매도 거래 법인은 ‘공매도 등록번호’를 발급받아야만 주문을 낼 수 있게 했다. 또한 기관은 대차 거래(여러 기관 등에서 주식을 빌리는 방식), 개인은 대주 거래(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리는 방식)로 주식을 빌렸을 때 서로 다른 담보 비율·상환 기간 등을 적용받아왔는데, 이번에 이를 최대한 통일했다.
예컨대 대주 거래(개인)가 기존에 적용받아온 120% 담보 비율을 대차 거래(기관) 수준인 105%로 낮추고, 기관 대차 거래에 기간 제약이 없던 부분을 개인 대주 거래와 같이 ‘90일 + 연장 가능’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과거 공매도를 막연히 ‘기관 투자자만 유리한 전유물’로 보던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제도적 장벽이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다.
이제까지 공매도 금지 후 재개가 이뤄졌던 때는 2009년, 2011년, 2021년 세 차례였다. 과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재개 직후 1개월 안팎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으나, 3개월 이상 중장기 관점에서 보면 증시 전반을 끌어내리는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라는 점이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공매도가 재개되면 한동안 투자 심리가 위축돼 증시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는 오히려 외국인 자금 유입 등 긍정적인 효과가 더 드러났다”라고 분석했다.
배철교 NH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공매도는 주가가 상방으로 과열될 때 과열을 완화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기능이 있어서, 시장 전체 변동성을 오히려 완충해주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관심사는 공매도 재개가 시장 주도주의 ‘판’을 흔들어 놓을지다. 최근 글로벌 테마로 주목받는 AI 관련주나 반도체업종이 연초부터 탄력을 받고 있는데, 이들이 공매도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세린 KB증권 연구원은 “공매도는 국내 이슈지만 주도주는 글로벌 테마와 경기 사이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반도체 업황이 크게 꺾이지 않는 한, 공매도 재개가 시장 주도주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은 작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염동찬 연구원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높아 기업 가치보다 고평가된 종목들은 공매도 재개 직후 1개월간 상대적으로 주가가 부진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시가총액이 작거나, 최근 무리하게 오른 종목들은 시장 충격이 집중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선진국 시장에서 공매도는 일반적인 투자 기법이다. 단순히 ‘주가 하락을 노리는 매도 전략’이 아니라, 보유주식 매수(롱) 포지션과 공매도(숏) 포지션을 동시에 운영하는 ‘롱숏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은 시장의 거래량을 늘리고, 과열된 종목의 거품을 빼주는 순기능도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매도가 허용되면 외국인으로선 개별 종목 롱숏 플레이가 가능해지므로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도 높이는 긍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는 단연 ‘무차입 공매도’ 문제가 크다. 과거 법규상 공매도 사고가 터져도 이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절차가 미비했고,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기관과 외국인의 주가 하락 꼼수’로 받아들인 이유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NSDS 시스템 구축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불법 공매도 적발 시 법인과 증권사 모두 최대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불법을 통해 얻은 이익의 6배까지 부당이득 환수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강조된다.
이상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재개 초기에는 ‘과거 공매도 상위 종목’ 위주로 대금이 몰릴 수 있지만, 결국 해당 업종의 주당순이익(EPS)이나 실적 전망이 어떻게 개선되느냐가 더 중요한 지표였다”고 설명했다.
공매도 표적이라 해서 반드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아니며, 실적이 뒷받침된다면 오히려 ‘숏커버링’(공매도자가 빌린 주식을 갚기 위해 되사는 과정)으로 주가가 빠르게 반등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도 “하방 베팅이 예상되는 업종에서라도, 기업 이익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있다면 단순히 고평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면서 “시장이 공포로 몰려 매도세가 커질 때 펀더멘탈에 확신이 있는 투자자들은 역설적으로 저점 매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LS증권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3.7배에 달하는 두산에 대해 “고평가 상태를 고려하면 공매도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에코프로, HLB, 레인보우로보틱스, DB하이텍 등도 과거 공매도 잔고가 많았던 종목이라는 이유로 수급 부담 우려가 제기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기관·외국인의 분석 리포트에서 ‘투자의견 하향’이 나오면, 단기간에 주가가 크게 출렁이는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다. 예컨대 지난 2월 말 한국투자증권이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춘 뒤’ HD현대중공업 주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하락한 일이 대표적이다 . 아프리카TV(SOOP) 역시 미래에셋증권의‘매도 의견’ 리포트가 나오자 단기 급락을 경험했다.
반면 신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방산 업종은 국제 경쟁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실적이 기대되고, 저평가된 화학·유틸리티 등 딥 밸류(Deep Value) 영역의 기업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매도 재개 후 기관이 하락 쪽에 베팅할 수도 있지만, 실적 개선 추세가 확실한 종목들은 ‘숏커버링’ 매수가 오히려 주가 상승모멘텀을 제공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철강, 화학, 배터리(이차전지), 유통, 미디어, 화장품, 방산·우주 등은 ‘2023년 11월 금지 전 공매도가 활발했던 업종’으로 꼽히지만, 이 중 방산·우주, 화장품 등은 오히려 최근 수익률이 높다. 따라서 반드시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배철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초점은 결국 해당 기업의 펀더멘탈 개선 여부에 맞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관처럼 정보력과 투자 경험이 풍부한 일부 개인은 공매도를 활용해 실적 대비 과도하게 오른 종목에 하방 베팅할 수 있다. 다만, 주가가 예상과 다르게 크게 오르면 손실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 실적 추정이나 회사 내부 이슈 파악에 대한 정보력이 부족하다면 위험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개인에게 공매도는 여전히 쉽지 않은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매도 세력이 높은 가격이 형성됐다고 판단한 종목을 겨냥하지만, 실적과 펀더멘탈이 튼튼해 주가가 잘 안 내려가면 결국 공매도자들이 ‘매수’를 통해 포지션을 청산해야 한다. 이를 숏커버링이라 하는데, 이때 기존 보유자들은 급등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외형 성장과 실적 개선이 확실한 기업, 특히 PBR이 너무 높지 않은 종목을 선별해 매수하고 대차 잔고나 공매도 잔고가 어느 정도 늘어나는지도 함께 모니터링하면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공매도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대형주를 분할 매수해두는 방법도 있다. 공매도가 기관·외국인의 투자 관행이란 점을 고려하면, 시가총액이 큰 우량주는 매도 압박이 분산되는 편이다.
이상연 연구원은 “시총이 크고 펀더멘탈이 안정적인 종목은 순간 하락이 오더라도 회복이 빠른 편”이라며 “단기 매매가 어렵다면 가치주 중심의 장기 포트폴리오를 고민해보는 것이 낫다”라고 조언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정치테마주 등 펀더멘털이 취약한 종목은 공매도 재개 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면서도 “결국은 기업 실적과 재무 안정성이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길고 복잡했던 공매도 금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시 제도권 안에서 매도 전략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증시에 어떤 변화가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