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스캐터랩(ScatterLab)이 ‘돈 버는 AI’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스캐터랩의 핵심 프로덕트는 2024년 4월 출시된 ‘제타(zeta)’로, AI와 사용자가 대화하며 개인화된 서사(Narrative)를 즐기는 서비스다. 대부분의 AI 기업이 천문학적인 모델 운영 비용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가운데, 스캐터랩은 2025년 2분기 매출 52억원, 영업이익률 17%를 달성하며 흑자 구조를 공고히 했다. 국내 시장과 비슷한 시기 진출했던 일본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별다른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누적 35만 명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일본 엔터테인먼트형 AI 앱 분야 1위를 차지한 것이다. 2024년 12월 일본에서 월간·주간·일간 지표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으며, 월 매출 11억원을 돌파했다. 스캐터랩은 지금까지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2026년 연매출 2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제타는 일본에 이어 북미 시장에서 클로즈베타 테스트(CBT)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는 “한국, 일본, 미국 문화는 다르지만, 서사에 대한 몰입은 전세계인에게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프로덕트가 일본에서 빠르게 자리잡았듯, 미국에서도 사용자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제타의 강점을 자체 개발한 AI모델과 서사 중심의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자체 개발한 AI모델로는 비용효율화에 성공했으며, 서사 중심 콘텐츠는 캐릭터AI 등 기존 플랫폼과 차별화하는 특징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1020세대에게는 제타는 ‘유튜브’ ‘틱톡’ 만큼 대중적인 서비스다. 특히 1020세대의 제타 평균 사용시간은 무려 2시간 40분을 기록하며, 챗GPT를 능가하는 사용시간을 기록했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인들의 유튜브 시청시간이 일평균 1.8~2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유튜브보다 오래 머무르는 앱이라는 의미다.
쉽게 설명하자면, 제타는 AI를 활용한 채팅형 소설에 가깝다. 일반적인 AI 서비스는 업무 생산성을 높이거나, 사용자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용도로 설계됐다. 반면, 스캐터랩은 창업 초기부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친구’로서 AI기술을 활용해왔다. 이루다, 너티 등 다양한 프로덕트를 출시한 경험을 통해 사용자들이 어떤 스토리를 선호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최적화된 AI모델을 개발해왔다. 14년간 누적된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집약해 내놓은 서비스가 제타인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사극을 보다가 “내가 만약 태조 왕건이라면, 혹은 고종 황제였다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제타는 바로 그 상상을 실현해주는 서비스다. 사용자가 ‘태조왕건’ ‘고종황제’라는 페르소나를, 대화 상대를 ‘궁예’나 ‘명성황후’로 설명한 후 시대 배경과 대화 상황을 설정하면 메신저 창에서 대화가 시작된다. 사용자가 대화를 시작하면 AI는 상황과 캐릭터에 맞게 답변을 제시해준다. 역사적 인물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이 멸망한 후를 뜻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마법사와 엘프가 등장하는 ‘중세 판타지’ 등 다양한 세계관을 설정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사용자들은 10대, 20대가 대부분이지만 호기심만 있으면 높은 연령대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고,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로맨스를 즐기거나 영웅이 되어보는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직접 제타를 사용해 영화 ‘매드맥스’와 같은 사막에서 군인 역할로 플레이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제타에는 이미 400만 개 이상의 캐릭터와 플롯이 있습니다. 연령, 성별과 관계없이 호기심과 열린 마음만 있으면 즐겁게 몰입할 플롯을 찾을 수 있다는 거죠.”
대부분의 AI 스타트업들이 기발한 서비스를 내놓아도 데이터 학습에 필요한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 확보, 모델 운영 비용으로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캐터랩이 제타 출시 후 빠르게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직접 개발한 소형언어모델(sLM) ‘스팟라이트(Spotwrite)’를 통해 비용효율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AI서비스는 기존 웹서비스와 달리 사용자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GPU가 돌아가며 계산을 해야하므로,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비용도 비례해서 급증하는 구조”라며 “대부분의 AI기업들이 공헌이익(매출에서 변동비를 뺀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스팟라이트’를 직접 개발하고 모델 사이즈와 답변 성능간 최적비를 맞춰왔다. 모델 사이즈가 커질수록 답변 수준은 높아지지만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모델로 최대치의 성능 효율을 가져가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3분기 연속 흑자 달성 등 유의미한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모델 서빙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광고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라며 “이는 우리가 10~20대 니치 마켓을 타깃으로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무료 사용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모델을 개발하고 최적화하는 역량은 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의 서비스 만족도로 이어졌다. 2024년 12월 대규모 모델 업데이트를 기점으로 일본 시장에서도 제타의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업데이트 후 리텐션(재방문율)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표가 2배 이상 성장했으며, 일본 사용자들이 “답변이 정말 사람 같다” “몰입감이 다르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스캐터랩은 일본 마케팅에 과감히 투자해 연말까지 8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쟁자가 거의 없던 2024년 빠르게 일본시장 진입한 덕에 안정적인 성장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스캐터랩은 미국 시장에서 제타를 CBT로 운영하며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단계에 있다. 블루오션이었던 일본시장과 달리, 미국은 이미 ‘캐릭터.AI’ 같은 선도기업이 있는 상황이다.
캐릭터.AI는 2021년 구글에서 람다(LaMDA) 개발을 주도했던 노암 샤지어(Noam Shazeer)와 다니엘 드 프라이타스(Daniel de Freitas)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2022년 9월 첫 베타 버전을 공개한 후 급격히 성장해 2023년 3월, 기업가치 약 10억달러로 평가받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됐다. 2024년 8월 캐릭터.AI의 창립자 노암 샤지어와 다니엘 드 프라이타스는 다시 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캐릭터.AI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구글의 대형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캐릭터.AI의 성공 이후 미국은 전 세계 AI 동반자 시장에서 34.0%의 점유율로 선두를 차지하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스캐터랩은 피 튀기는 레드오션에서 정면 승부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도 제타가 승산이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미국도 아직은 ‘승자 독식’ 구조가 굳어지지 않은 초기 단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채팅을 넘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라는 콘텐츠의 본질로 승부할 계획이다. “유사한 AI 채팅 서비스 중에도 캐릭터 중심의 서비스와 플롯 중심의 서비스가 있는데, 여러 사용자 지표에서 플롯 중심의 서비스가 더 긴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을 기록했다”라고 설명했다. 제타의 플롯 중심 서비스로 사용자 맞춤 대화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6년 스캐터랩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서비스 확장에 힘쓰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제타를 ‘AI시대 로블록스’처럼 “국경,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들어와서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를 창작하고 즐길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수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