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골프장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 잡지가 창간되었다. 이 잡지에서 필자에게 조언을 요청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좋은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잔디 관리와 그린 유지 등 기술적 수준이 기본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동시에 골프장을 이용하는 고객의 식견 또한 함께 높아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서비스 수지 적자가 세계 상위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역으로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여행과 유학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를 단순한 소비로 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더 넓은 세계를 배우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해외를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비교의 기준이 생기고, 삶의 질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골프 역시 다르지 않다. 골프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와 경영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골퍼들의 의식과 태도, 즉 이용자의 수준이 함께 높아져야 한다. 좋은 환경은 좋은 이용자를 만들고, 성숙한 이용자는 다시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한다. 이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골프 문화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건물의 유리창 하나가 깨진 채 방치되면, 그곳에서는 점차 더 큰 무질서와 범죄가 발생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사소한 방치가 결국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경고다.
이를 골프장에 적용해보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직원의 불친절, 정리되지 않은 시설, 관리되지 않은 그린과 벙커, 그리고 작은 불편을 그대로 두는 태도는 결국 그 골프장의 수준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쌓이면서 전체적인 품격을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최근 골프업계는 연간 내장객 1800만 명 시대를 맞이하며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최경주, 박세리, 김미현 선수 등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인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적당히 넘어가려는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골프장에 들어서면 프런트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캐디 교육이 충분하지 않아 서비스의 편차가 크고, 연습 그린과 실제 그린의 스피드가 달라 플레이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클럽하우스의 정돈 상태나 운영의 세밀함에서도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라운드 도중 작업으로 인해 흐름이 끊기는 일 또한 플레이어의 집중을 방해한다.
고객을 배려하기보다 속도를 재촉하는 캐디의 태도는 골프장의 품격을 스스로 낮추는 일이다. 반대로 일부 골퍼들의 태도 또한 문제다. 동반자를 배려하지 않는 언행, 캐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은 골프 문화 전체를 훼손한다.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 클럽은 하나의 기준이 될 만하다. 탈의실 라커룸 한쪽에 놓아둔 작은 제습제 하나에서도 골프장의 세심한 관리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는 태도는 단순한 운영이 아니라 ‘품격’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깨진 유리창은 테이프로 붙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임시로 덮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골프장 경영뿐 아니라 모든 조직과 사회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안양 베네스트를 찾았던 날,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원로들의 모임이라 했다. 그 모습에서 골프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사람과 시간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사실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이 골프장에는 창업주의 선구적인 안목과 철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본질을 지키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최근 이곳에서 국민가수 조용필 씨와 라운드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와의 인연은 2005년,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문화연구원에서 통일문화대상을 수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공연을 열어 남북간 문화적 간극을 좁히는 데 기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위해 원칙을 지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던 점 또한 높이 평가되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문화와 소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외유내강의 인물이다. 18홀 라운드 내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한 샷 한 샷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필요한 말 대신 플레이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진중함이 느껴졌다. 그의 스윙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절제되어 있었고, 필드 위에서의 움직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벙커샷으로 공을 핀 가까이에 붙이고, 까다로운 그린에서 원 퍼팅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골프는 결국 기술과 마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통일문화연구원을 설립하고 문화 진작을 통한 국격 향상과 통일 기반 조성을 실천해왔다. 핸디(O)의 골프 실력자다. 아시아 100대코스 선정위원장과 대한프로골프협회(KPGA)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한민국 골프문화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