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이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11개 전략 과제를 내놓았다. 단순 GPU확보(그래픽 처리장치) 를 넘어 인프라와 전 산업분야의 AI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아이템을 내놓기 위한 취지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연구원은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대한민국 전략경제 포럼: AI대전환 시대, 대한민국 전략경제의 길’을 공동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축사를 전했고, 박영선 전략경제자문단(이하 자문단) 위원장이 개회사와 기조발표에 나섰다.
이번 포럼은 전략경제자문단이 그동안 논의한 첨단 전략 정책과제를 공유하고 전문가들과 AI 시대 성장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략경제자문단은 반도체, AI, 바이오 등 6대 핵심 전략산업의 정책 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한 재정경제부 장관 직속 민관 합동 자문기구다.
특히 박홍근 기획처 장관이 이례적으로 타 부처 자문기구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구 부총리 또한 축사에서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의미없다”라고 강조했을 만큼, 자문단이 정책 발굴부터 예산 반영까지 예산 전 과정을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조연사로 나선 박영선 전략경제자문단 위원장은 “지금까지 AI 산업이 GPU확보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전체 AI 생태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한국형 AI 컴퓨팅 스택 구축, 산업 특화형 AI 에이전트 육성, 국가 차원의 AI 팩토리 전략 등 총 11개의 아이템을 제시했다. AI 전력 반도체 생태계, 실리콘 포토닉스 개발 상업화, 국가 조달 AI 에이전트 시범 운영, 제조 AX(AI 전환) 데이터 자산화 등 인프라부터 주요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건의안이다.
박 위원장은 “AI 반도체 2막의 승자는 더 많은 칩을 가진 나라를 넘어, 더 강한 AI 생태계를 가진 나라가 될 것”이라며, 이날 포럼에서 나온 11개의 아이템은 “2027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은 전력 에너지와 보안 등 AI 인프라 부문과 의료, 국방, 우주 등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의 AI 전환 부문으로 나뉘어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첫 발표자인 이상기 DB하이텍 부사장은 전력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정부 지원의 시급성을 피력했다.
전력 반도체는 전자기기나 전기차 등이 필요로 하는 전압과 전류로 변환하는 핵심 부품이다. GPU가 연산을 담당하는 ‘두뇌’라면, 전력 반도체는 두뇌가 구동될 수 있도록 전기를 지속해서 공급하는 ‘심장과 혈관’ 같은 장치다. 국내 기업들이 선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글로벌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반면, 전력 반도체의 한국 점유율은 2%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부사장은 충북 음성 8인치 양산팹을 기반으로 한 2단계 생태계 구축안을 제시하며, 과감한 정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소 에너지와 전력망 신설에 대한 발표도 주목받았다. 최서호 현대자동차 상무는 AI 데이터센터와 국내 최대 로봇 제조 플랜트, 대규모 태양광 및 국내 최대 그린수소 수전해 플랜트를 연계한 ‘AI 수소시티’ 계획안을 공개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권효재 코르 대표는 송전망 부족 문제를 짚으며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발전소를 어디에 짓느냐가 아니라, 변전소를 먼저 짓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천정희 서울대 교수는 AI 해킹 및 보안 위협의 대안으로 동형 암호 기반 암호화 컴퓨팅을 제시했다. 서울대가 개발한 4세대 동형 암호 ‘CKKS’는 올가을 ISO 국제 표준화를 앞두고 있다. 천 교수는 이 분야에서 한국이 “엔비디아 대비 8배 이상의 기술 격차로 앞서 있다”며 2030년 3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조지훈 삼성SDS 마스터 역시 “AI로 인해 보안 취약점을 발견하고 공격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라며, 정부가 동형 암호 컴퓨팅 플랫폼의 초기 수요자로 먼저 참여한 뒤 민간으로 확산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2부에서는 의료·국방·우주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AI 전환을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이 잇따랐다.
유승찬 연세대 교수는 한국 의료 AI의 승부처를 ‘표준 선점’으로 꼽았다. 의료 데이터는 민감성으로 인해 국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조차 전 세계 데이터를 독점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국은 단일 보험자(국민건강보험) 체계와 전자의무기록(EMR) 보편화, 5000만 인구 규모를 모두 갖추어 독보적인 강점이 있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의료계의 챗GPT로 불리며 기업가치 120억 달러를 인정받은 ‘오픈에비던스’를 사례로 들며, 국내 건강검진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의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심승배 국가AI전략위원회 국방안보분과위원장이 국방 분야의 클라우드 도입 시급성을 토로했으며, 김승조 스페이스디 대표는 우주 데이터센터가 5차 산업혁명을 촉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AI 전환에 관한 심층 논의는 오는 7월 21일 열리는 ‘AI의 현재와 미래: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 세션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박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