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에서 촉발된 채권시장 마비 사태는 자본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전말은 이랬다. 지방선거를 통해 새롭게 선출된 김진태 당시 강원도지사가 테마파크 건설에 투입된 지방채 2050억원을 상환하지 않고 개발회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지방채는 사실상 국채와 맞먹는 신용도를 지닌 채권. 그렇게 안정적인 지방채가 디폴트 위기로 내몰리자 변동성이 큰 회사채, 기업어음(CP) 시장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나비효과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부동산 PF발 자금경색,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연쇄적으로 맞물리면서 매머드급 경제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들이 연일 주요신문의 1면 헤드라인 기사를 장식했다. 한 달 가까이 시장 혼란이 지속되자 결국 정부가 개입해서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대책을 내놓고 간신히 불안심리를 진화할 수 있었다. 대책 가운데는 한국은행을 통한 6조원 규모의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도 포함됐다. 2050억원 규모 지방채를 갚지 못해 정부가 무려 50조원을 동원하고 국책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당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개발회사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경제적 타당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업이라며 계약조건을 재검토하겠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제로는 전임 민주당(당시 야당) 도지사가 벌여놓은 개발 사업을 후임 국민의힘(당시 여당) 도지사가 무턱대고 떠안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았다.
올해 6.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방 권력이 대거 교체됐다. 전국 곳곳에서 새롭게 선출된 도지사, 시장, 군수들이 호기롭게 인수인계를 받았고 이제 곧 4년 임기를 향한 지방 행정의 닻을 새롭게 올린다. 지방정부 정당이 바뀌었다고, 자신이 새롭게 선출됐다고, 과거 전임자가 했던 정책이나 사업을 정무적인 관점에서 무조건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막대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인·허가 사업이 집중돼 있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특히 그렇다. 인천광역시에서 주택건설 사업을 시행 중인 필자의 지인 중 한 명은 “차라리 대구나 광주에서 사업을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지역들은 지자체 단체장은 바뀔지언정, 정당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 가면서 지방 정부를 차지하다 보니 권력이 바뀔 때마다 과거에 진행해왔던 사업절차들이 대거 변경되고 새롭게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유권자들이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한 것은 과거의 잘못된 정책과 관행을 바로잡으라는 채찍질이다. 재신임을 받은 정당이나 단체장도 그런 채찍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정부의 정책도 연속성이 있어야 하며 예측 가능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4년간의 정책 효과는 냉정하고 엄밀하게 분석해야겠지만, 정당이 바뀌었다고, 전임자의 정책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무조건 백지화해서도 안 된다. 4년전 지방권력 교체기 때 촉발됐던 레고랜드발 자본시장 마비사태는 새롭게 출범하는 지자체 단체장들이 꼭 되새겨봐야 할 반면교사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