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코로나19 쇼크 이제부터… 생산조절 자산매각으로 살길 모색, 정부도 기업지원 발 벗고 나서
김병수, 안재형, 서동철 기자
입력 : 2020.04.27 15:13:32
수정 : 2020.05.02 15:37:07
코로나19 확산이 내수는 물론 한국 경제 성장 엔진인 수출에 본격적인 타격을 주기 시작하면서 향후 경기전망은 물론 기업 실적에 대한 ‘잿빛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쇼크는 4월 수출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석유제품, 반도체, 자동차부품, 무선통신기기 등 주요 품목에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가량 감소하면서 불안하게 출발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4월 1~10일 수출액은 122억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8.6%인 28억달러가 감소했다. 이 기간 조업일수(8.5일)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같았다. 품목별로는 저유가의 타격을 입은 석유제품이 -47.7%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석유제품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7.5%를 차지해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수출 상위 3위 품목이다. 이외에도 자동차부품(-31.8%), 무선통신기기(-23.1%), 승용차(-7.1%), 반도체(-1.5%) 등 주요 수출 품목이 대부분 부진했다. 특히 가장 높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살아나지 못한 게 뼈아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당장 개선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 중국이 전부 만신창이가 됐다. 미국은 실업자가 최근 한 달 새 2200만 명 늘었고, 유럽에선 3월 자동차 판매 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 이상 급감했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은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규모 소비 시장인 미국, 유럽 상황이 악화돼 소비가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유럽, 베트남,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 주요 공장의 조업 차질도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무너진 항공과 중공업을 비롯해 자동차·철강·조선·해운·석유화학·기계·섬유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이 벼랑 끝에 서 있다. 지금의 사태가 언제 종결될지 쉽사리 예측이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태에 놓였다. 위기 대응에 나선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고 정리해고에 나서는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기업들의 정리해고가 아직 본격화되기 전임에도 불구하도 이미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15만6000명으로 작년 3월(12만5000명)보다 3만1000명(24.8%)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 폭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3월(3만6000명)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구직급여는 실업급여에 속하는데 금액으로는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증가 폭이 큰 업종은 숙박·음식업(7600명), 여행업을 포함한 사업서비스업(4100명), 개인병원 등 보건·복지업(3900명) 등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업종들이다. 정리해고가 본격화되면 미칠 경제적 충격파가 상상 이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여파로 소비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그동안 서비스업 위주로 타격을 줬지만, 미국·유럽의 경기위축에 따라 주력 수출산업으로 피해 영역이 넓혀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해 2분기가 1분기보다 더 어려워 연간으로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공
HDC현산, 아시아나 인수 시계제로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본 항공사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시작됐다. 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4월 10일 사내 인트라넷에 희망퇴직 공고를 게재했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모든 계약직·정규직 직원으로 대리, 사원급도 포함됐다.
이스타항공의 직원 수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1680명으로 구조조정 규모는 전체의 5분의 1 수준인 300여 명 이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앞서 3월 30일 1∼2년 차 수습 부기장 80여 명에게 4월 1일 자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을 통보하기도 했다. 이미 기내식과 청소 등을 담당하는 항공사의 하청업체 역시 ‘감원 칼바람’의 피해자가 됐다. 대한항공의 기내식 협력업체 직원 가운데 인천에서 근무하는 1800명 중 1000명이 권고사직을 당했고, 남은 800명 중 300여 명은 휴직 중이다. 아시아나항공 협력업체인 아시아나KO는 5월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한다고 공지했고, 아시아나AH는 직원의 50%에 희망퇴직을 통보한 상태다.
항공업계는 정리해고뿐 아니라 당장 기업활동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상의 영업 중단으로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대한항공이 올해 회사채를 포함해 현금상환하거나 차환해야 하는 차입금은 4조8060억원(2019년 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에 달한다. 한진그룹은 유휴자산 매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유동성 확보에 나선다. 한진그룹은 4월 13일에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유휴자산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 매각대상 유휴자산은 ▲대한항공 소유 서울 종로구 송현동 토지 및 건물 ▲대한항공이 100% 보유한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 운영사 ㈜왕산레저개발 지분 ▲칼호텔네트워크 소유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파라다이스호텔 토지 및 건물 등이다.
금호그룹에서 HDC현대산업개발로 주인이 바뀌게 될 아시아나항공 역시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별도 기준)도 2조원을 넘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심각한 부실과 적자 상태에서 매각이 결정됐다. 이미 작년 5월과 12월 인력 축소를 위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인력 구조조정에도 2018년 1959억원이던 적자는 2019년 8239억원대로 더 심각하게 급증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임원 전원이 이미 사표를 냈고 3월부터 일반직과 승무원은 물론 조종사, 정비직 등 전 직원의 휴직과 함께 임금 역시 30% 정도 축소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올해 더욱 커질 부실과 적자는 인수자에게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HDC현산 측은 당초 4월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인수대금 납입을 사실상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과 항공업계는 앞으로 HDC현산 측과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지원 협의 결과가 아시아나항공 매각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HDC현산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아시아나항공의 대출금 상환 연장, 금리 인하 등을 비공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악의 경우 HDC현산이 2500억원의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대해 HDC현산 측은 “채권단에 아시아나항공과 관련한 지원을 요청한 바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산은 본업은 건설 경기가 악화되고 있고, 면세점 레저 등 최근 벌려온 사업 중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없는 실정”이라며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HDC 인수대금을 예정대로 모두 납입하고 서둘러 계약을 종료하기 힘들어졌다”고 내다봤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입장에서도 아시아나항공 매각 실패로 인한 타격이 큰 만큼 앞으로 HDC현산과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국내 완성차 5社 잇단 셧다운
국내 완성차업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산과 소비 감소에 직격탄을 맞았다. 올 1분기 내수시장은 신차효과를 누린 반면 해외 시장은 판매량 감소가 두드러졌다. 문제는 각 완성차업체의 해외공장이 대부분 멈춰있는 셧다운 피해가 아직 실적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업계는 4월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가 본격 반영되면 적자전환은 물론 부품업계의 경우 연쇄 도산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국내 완성차업계 맏형 현대차그룹이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여타 완성차업체는 물론 부품사들의 위기감이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50여 개 계열사 1200여 명의 임원들이 4월부터 월급 20%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 전 계열사의 경영악화에 임원들도 현금 확보에 동참했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외공장이 멈춰 섰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월부터 3개월째 매출이 급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는 국내 공장 가동과 신차 인기로 버티는 형국”이라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부품조달부터 판매까지 전 방위에 걸쳐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2019 임금협상’을 마무리한 르노삼성과 한국GM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르노삼성은 임단협 타결 이후 지난 3월 내수판매 1만2012대 중 5581대로 판매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XM3’의 유럽 수출물량 확보와 QM3의 후속모델인 ‘캡처’의 올 상반기 국내 출시에 집중할 계획이다. 르노삼성은 현재 닛산 로그의 위탁생산이 중단되며 수출절벽 상황이다. 업계에선 대주주인 르노그룹의 수출물량 배정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르노그룹의 상황도 그리 밝지 않다. 르노는 코로나19 사태로 유럽 대부분 공장이 멈춰서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선 판매량이 급감하며 최근 합자사인 둥펑과 결별, 중국 내 구조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르노삼성 입장에선 임단협을 마무리한 후 부산공장의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르노그룹 상황이 어려워 해외수출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GM의 상황도 르노삼성과 비슷하다. 한국GM은 쉐보레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의 인기에 지난 3월 내수시장에서 전년 동월 대비 39.6% 증가한 8965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같은 기간 트레일블레이저는 내수 3187대, 수출 1만4897대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베스트셀링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GM 본사의 경영악화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GM은 현금 확보를 위해 지난 3월 전 세계 6만9000명 직원의 월급을 20% 삭감했다. 지난 2월엔 호주, 뉴질랜드, 태국 등 수익성이 저조한 지역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해 한국GM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쌍용차는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투자 철회로 경영정상화에 적신호가 켜졌다. 경영난 타개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전 직원 임금 반납, 복지 중단 및 축소 등의 고강도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올 7월 산업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900억원을 갚아야 한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이 500억원 안팎인 상황에 마힌드라그룹이 대규모 투자 대신 긴급 지원한 4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추가 자금 수혈이 없으면 경영정상화가 쉽지 않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과 내수판매가 감소해 신규 투자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렇다 할 신차가 없는 게 쌍용차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전했다.
정유·유화
물보다 싼 기름에 생사기로 놓여
전례 없는 위기에 빠진 국내 정유업체들도 생사기로에 처해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항공유 수요는 80%, 휘발유는 15% 정도 감소했다. 석유 제품 수요가 위축되면서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도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국내 정유 4사의 1분기 영업 손실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가격 급락은 정유사들의 재고 평가 손실로 곧바로 이어진다. 국내 정유사는 중동산 원유를 들여와서 제품으로 판매할 때까지 한 달 이상 시차가 있기 때문에, 유가가 급락하는 시기에는 비싼 원유를 사와서 싸게 팔아야 한다. 지난 2월 하순만 해도 50달러 선이던 중동산 두바이유가 최근 20달러 선까지 하락하면서 고스란히 정유업계에 손실이 쌓이는 구조다.
정유사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있으며 정기 보수를 앞당겨 공장을 멈추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섰다. GS칼텍스는 여수 공장의 정제 설비 정기 보수를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고 있다. 본래 1~2년에 한 번씩 하는 정기 보수를 석유 제품 수요가 감소한 올 2분기에 미리 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초부터 가동률을 일시적으로 80% 수준으로 낮춘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은 SK울산콤플렉스에 있는 나프타분해(NCC) 공정을 12월부터, 합성고무제조공정(EPDM)은 2분기 안에 가동 중단한다. SK종합화학의 NCC 공장은 대한석유공사 시절인 1972년 국내 최초로 상업 가동을 시작한 시설로 연간 생산규모는 20만t이다. 이 공정을 중단하면 회사의 에틸렌 연간 생산량은 80만t에서 60만t으로 줄어든다. 현대오일뱅크는 강달호 사장을 비롯해 전 임원의 급여 20%를 반납하고 경비예산을 70%까지 삭감했고 에쓰오일은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에 나선 상황이다.
정부는 정유사에 한국석유공사의 원유 비축기지를 제공하고, 4~6월분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 징수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하는 등 지원 조치를 내놓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세율 3%인 원유 수입 관세를 유예해주거나 이참에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철강
선박 발주량 예년의 20%, 철강업체들도 감산 나서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선박 발주량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33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810만CGT) 대비 71% 감소한 수치다. 2018년(183만CGT)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특히 올해 1분기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선종인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대한 발주가 없었다. 자동차, 가전, 조선 등 전방산업의 수요가 줄면서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체들도 감산을 검토하고 있다. 철강 생산은 통상 두 달 시차를 두고 전방 산업의 판매량 등 감소에 따른 타격이 오는데, 지난 2월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공장의 생산 중단이 이어지며 사태가 장기화하자 철강업체들은 더 이상 재고를 쌓아 둘 수 없는 시점을 맞게 됐다. 감산을 고민하는 포스코에 앞서 글로벌 철강업체들은 이미 감산에 돌입했다.
코로나19로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T1) 면세점.
유통
롯데 등 오프라인 구조조정 박차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에 진행하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그룹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롯데는 지난 2월 700여 오프라인 매장 중 200여 곳(약 30%)을 5년 이내에 닫겠다고 발표했는데, 롯데마트 점포 124곳 가운데 매장 3곳을 6월 말까지 우선 폐점하기로 지난달 9일 결정했다. 6월 말까지 문을 닫기로 한 롯데마트 세 점포는 양주점과 천안아산점, VIC신영통점(창고형 마트)이다. 영업 적자를 기록 중인 점포 가운데 개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세 점포가 우선 정리 대상이 됐다. 3개점이 문을 닫으면 롯데마트는 1998년 서울 광진구에 첫 매장을 연 이후 처음으로 총 점포 수가 줄어들게 된다. 롯데는 국내에서 백화점 51곳, 대형 마트 124곳, 슈퍼 407곳, 롭스 123곳을 운영 중이다. 롯데는 당장은 감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예정대로 오프라인 매장 약 200곳을 정리할 경우, 1만 명 안팎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롯데 유통 계열사 중에선 하이마트가 3월에 현장직 직원 8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호텔업계는 코로나19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서울 시내 5성급 특급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10%대로 떨어진 상태다. 호텔 공급이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최저임금과 재산세가 동시에 상승한 점도 경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인 도매상(다이궁)에게 매출의 80% 이상을 의존하던 면세점업계는 코로나19에 ‘개점휴업’ 상태다.
가전
수요 급감하며 재고 쌓여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경제가 멈춘 지 두 달이 넘어가면서 수요가 줄어들어 가전업체들의 ‘감산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지화 전략으로 전 세계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오던 업체들이 국내외 공장 셧다운을 실시한 데 이어 이들 업체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업들마저 감산의 기로에 서 있다. 생산 차질로 공급이 감소한 데 이어 소비 수요까지 급감하면서 재고가 쌓이자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공급망 관리(SCM)가 철저한 가전업체들은 일찌감치 수요 부진에 대한 탄력 대응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세탁기 공장을 재가동한 지 이틀 만에 다시 셧다운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주요 시장인 북미와 유럽의 유통망 붕괴로 TV, 가전 등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서 재고를 쌓아둘 데가 없어지자 삼성전자가 결국 생산량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SCM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재고로 쌓아 두지 않고 거의 생산과 동시에 현지 딜러망에 공급하는 사업구조다.
그러나 소비자가 최종 구매하는 단계인 ‘셀 아웃’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요 급감에 따라 공급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TV, 가전 같은 대형 제품은 구매에서 설치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이 같은 서비스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며 “물건을 쌓아 둘 곳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TV 출하량은 약 8208만 대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출하량인 9949만 대보다 17.5% 줄어든 것이다. 특히 2분기만 보면 지난해 4771만 대에서 올해 3875만 대로 출하량이 896만 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2분기에 수요 충격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구조조정의 여파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은 코로나19 피해 확산으로 기간산업 주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 등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경제상황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수립한 상태다. 대응책은 크게 1, 2, 3단계로 구성돼 있다. 1단계는 중소·중견 기업 중심의 대출이다. 2단계는 채권시장안정펀드 및 증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신속인수제, 주채권은행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걸 돕는 지원이다. 3단계는 사실상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는 항공이나 중공업 등에 구조조정 필요성이 인정되면 정부 차원에서 즉시 개입할 수 있도록 여러 시나리오를 예상해 대비해둔 상태로 전해졌다. 산업은행도 만약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호텔업·항공업·건설업 노사가 참여하는 긴급 간담회를 개최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구조조정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도 준비 중이다. 정말 경영이 어려워져 해고가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 작은 사업장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필요해질 것인 만큼 경제위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이 필요로 하는 정부 지원방안을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로 마련해 보려는 것이다.
두산그룹 구조조정 어떻게
알짜 자산 팔아야…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행
재계에선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이 최대 관심사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실적부진이 직접적 원인이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주력사업인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 수주가 급감하면서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계열사 두산밥캣과 두산인프라코어의 호실적에도 1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내는 등 최근 6년간 매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고, 외부 차입이 늘어나면서 부채비율도 치솟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돼왔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원활치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회사채 만기 도래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두산중공업 회사채는 1조2800억원에 달한다. 두산중공업은 1조원의 긴급 지원을 받아 급한 불은 껐으나 유동성 위기는 여전하다.
일단 두산그룹 측이 자체 구조조정안을 내놓은 상태에서 채권단이 실사를 진행 중이다. 채권단은 실사 내용과 두산중공업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토대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한다. 두산그룹이 제출한 자구안에는 전자·바이오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두산솔루스 매각과 그룹 계열사 임직원의 급여 삭감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솔루스는 ㈜두산(17%)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주요 주주를 포함한 특수관계인(44%)들이 지분 61%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 측은 8000억∼1조원의 매각가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1조원의 긴급 자금을 빌려주면서 계열주, 대주주 등의 철저한 고통 분담과 책임이행, 자구노력 등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한 바 있다. 두산솔루스 매각 외에 연료전지 회사인 두산퓨얼셀과 두산중공업 자회사 네오트랜스, 두산메카텍, 석탄 사업부, 인도 법인 등의 매각도 거론되는 이유다. 시장에선 두산중공업의 알짜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 문제를 놓고 채권단과 두산 측의 힘겨루기도 예상된다. 이동헌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 입장에서 자구안의 우선순위를 보면 두산솔루스나 두산퓨얼셀 매각을 시도할 것”이라며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은 제일 후순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그룹 입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두산중공업을 포기하는 시나리오도 시장에서는 거론된다. 하지만 발전사업을 하는 업체가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지 않고 발전용 가스터빈 개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도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그룹 내에 있다. 채권단은 두산그룹이 제출한 자구안과 4월 말 나올 실사 결과를 함께 검토한 후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한다. 추가 자금 지원부터 법정구조조정 절차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