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가 다 나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코스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대한 희망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난 11월 초부터 각 증권사의 리서치센터마다 2020년 증시 전망을 내놓는 데 낙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하단은 낮고 상단은 높다. 2018년 말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미중 무역 분쟁과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로 이미 외국인들은 기록적인 매도세를 보이며 한국 증시가 급락해 이제는 저점이라는 전망이 나올 법도 했던 2018년 말에 여전히 증시 전망은 우울했다. 이미 꺾여버린 반도체 실적과 사이클 때문이었다.
2019년 다시 긍정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도 한국 증시의 어쩌면 유일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MSCI이머징마켓지수에서의 한국 비중 축소와 사우디 아람코 상장을 앞둔 투자금 확보 차원에서 외국인들이 12월 첫째 주 대거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는 남아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2019년 증시의 악재들은 수도 없이 나왔지만 가장 큰 변수는 두 개였다. 반도체 산업 실적 부진과 미중 무역 분쟁. 사실 반도체 실적 부진은 2018년부터 계속 예고되고 선반영까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증시를 계속 짓눌러왔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충돌로 2000포인트를 지나 한때 1900포인트를 위협하기도 했다.
2019년 KOSPI의 고점은 4월에 기록했던 2252였고 저점은 8월의 1892였다.
2019년 거래소 상장기업의 이익은 150조원을 밑돌았다. 반도체 사이클이 시동을 걸며 실적과 주가가 동반상승하던 2017년 전이며 거의 주가가 맥을 못추던 2015~2016년 때의 실적이다. 이미 성장률에 대한 눈높이가 낮아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하향 조정됐다.
2019년 코스피 순이익 전망은 연초 140조원에서 91조까지 하향조정됐다. 한국은 MSCI 달러 기준으로 전 세계 49개 국가 중 37위 수익률(10월 말 기준)을 기록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심한 국면에 한국처럼 수출주도 국가의 기업 이익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연초 반등이 있기는 했지만 연준의 통화정책과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등하며 하락하곤 했다.
▶바닥 친 반도체 사이클로 기대 커지는 2020년 증시
다만 2019년 실적을 더 보면 희망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2019년 상장기업 매출은 한국수출과 마찬가지로 10% 넘는 감소를 기록했는데 기업이익은 30~40% 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비용관리를 못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수익성 지표를 개선할 수 있다면 실적 반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국 증시의 이익 전망치 하향은 2018년 이후 21개월 지속됐지만 일단 9월엔 종료됐다. IT와 경기방어적 업종의 이익 전망치 상향이 두드러졌다. 이익 전망치 반등과 함께 코스피 2000선 초반의 하방지지력도 강해졌다.
전반적인 경제 매크로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GDP성장률은 2019년 1.9~2%로 예상되지만 국내외 기관들은 2020년도 한국 성장률을 2.1~2.2%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 내수 취약성은 여전하지만 대외여건 개선이 성장세 회복을 이끈다는 것이다.
반면 반도체 영업이익 전망이 41조6000억원(KTB투자증권 전망)으로 상향 전환됐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 영업이익 전망이 계속 하향조정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적이다. 지난 11월 126조원으로 하락했다. 2020년 글로벌 경제성장 전망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업황 회복은 일부 업종에만 한정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더 빠른 속도로 감소했기 때문에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PER가 빠르게 상승했다. PER 부담을 감안하면 기업 이익 전망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뤄질 필요가 있으나 지금의 반도체 외 이익 전망 약세가 코스피 상승 모멘텀을 억제하고 있다.
또한 수급 측면에서는 연기금 수급이 걸림돌이다. 그동안 하락장에서 코스피를 지지했던 연기금이 코스피가 2200선이 넘어가면 매수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기금은 2019년 연간(10월 말까지 누적) 8조800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신한금융투자는 코스피와 연기금 순매수는 금융위기 이후 뚜렷하게 반대로 움직이는 모습이라며 2200선 이상에선 과거 연기금 순매수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코스피 지수를 결정하는 것은 2020년에도 외국인 수급일 수밖에 없는데 외국인 순매수가 특정 업종에만 쏠린 것이 문제다. 10월 말 기준으로 2019년 외국인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5조5000억원 순매수를 했으나 나머지 업종에 대해선 2조2000억원 순매도로 대응했다.
미중 무역 분쟁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시각이 보다 우세하다. 이미 지난 12월 1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양국 협상팀이 마련한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려오자 외국인투자자들의 강한 매수세에 코스피 증시는 하루 1%가 넘는 상승폭을 기록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무역 분쟁으로 미국 경기의 둔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도 상호파괴적 속성을 갖는 보호무역 강화는 부담이다”라며 “본질적 타협은 힘들겠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의 봉합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500선까지 기대하고 있는 증권사들의 2020년 증시 전망치
신한금융투자는 PER와 PBR 고려 시 2400선까지 상승여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코스피는 12개월 선행 PER 10배선과 12개월 후행 PBR의 1배선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이를 통한 코스피의 상단 밴드는 2400포인트인 것이다. 하단은 리먼 사태 때 종가 기준 저점인 PBR 0.85배까지 낮출 때 2000선이라고 내다봤다.
KTB투자증권은 코스피 강세장의 필요충분조건은 월별 수출액의 증가라고 진단했다. 월별 수출액은 수출 대기업의 실적을 대변하며 코스피와 밀접하게 동행하고 있다.
2003~2007년이나 2009~2011년의 강세 장은 수출물량과 수출단가가 동반 상승한 시기였고 2017년은 수출물량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수출 단가 상승이 강세장을 주도했다.
2020년 코스피 전망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시각을 제시한 곳은 메리츠종금증권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보고서의 말머리에 ‘당사는 2018년 하반기부터 보수적으로 견지해온 시각을 전환한다’며 ‘2020년 주식시장의 상승여력은 20%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익증가율만 봐도 달성가능한 수치고 경기가 저점을 확인했을 때도 주가는 1년 뒤 평균 20% 상승했다고 덧붙였다. 무역 분쟁은 경기 사이클을 바꾸어놓았는데 2020년 1분기에는 글로벌 경기 저점을 확인하고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 때문에 지난 2년 약세장 트렌드를 탈피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키움증권은 실적 바닥론에도 불구하고 경기 둔화 우려 및 미 대선 등 글로벌 정치 불확실성 때문에 증시 변동성이 예상돼 ‘상고하저’의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코스피 밴드는 1900~2250선으로 제시했다.
미국 대선이 가장 중요한 변수인데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엘리자베스 워런 위원이 민주당 후보로 지명될 경우에도 미국 대형기술주나 금융주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키움증권은 연초에는 수출주나 성장주 위주의 반등이 예상되나 향후 변동성 확대를 감안할 때는 내수주, 가치주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할 것을 추천했다.
교보증권은 코스피 2600포인트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 조건은 시장금리 상승과 주식투자 매력 회복, 신흥국 통화가치 상승, 중국의 개방적이고 포용적 외교와 안보정책의 변화다.
신영증권은 경기 사이클 반전과 기업이익 증익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고점은 2350포인트로 저점은 1850포인트로 봤다.
▶유망업종은 OLED·미디어·엔터
업종으로 보면 반도체, 자기발광다이오드(OLED) 미디어 및 엔터 섹터들이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지연되었던 서버용 디램 반도체가 2020년에는 수요가 회복되고 5G 스마트폰 수요 확대와 중국의 5G 투자가 반도체 사이클을 다시 턴어라운드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PC 교체 수요 증가 등 순환주기와 구조적 수요까지 감안하면 반도체 수요 회복을 기대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글로벌 점유율 1위인 한국 OLED는 2020년 다양한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가 예정돼 있어 긍정적이다. 특히 디스플레이 업종은 그동안 업황 부진 우려가 선반영돼 밸류에이션이 최저 수준에 머물러있는데 턴어라운드를 기대해볼 만하다.
미디어 쪽에선 미국 주요 OTT 플레이어들의 경쟁 격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의 미국 OTT는 미주 시장 포화에 따른 성장률 둔화 우려를 아시아 시장 확장으로 타개하려 할 때 아시아나 이머징에서의 미디어 및 엔터 성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2019년에 이어 여전히 2020년에도 부진할 것으로 보이는 업종은 석유화학이다. 일단 중국의 추가 재고확충이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미국과 중국의 신규 설비 증설로 공급 과잉이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유럽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사용금지 규제가 강화되는 트렌드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미국, 한국, 케냐,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여 장기적으로 화학제품 수요 증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정유 산업은 국제해사기구(IMO) 규제가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올 것으로 보인다. 디젤 신규수요 창출되며 원가와 제품간 차이가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규제에 선제적 대응을 끝낸 한국 정유사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소비주, 자동차는 섣부른 기대 말아야
중국 소비주 측면에서는 면세점이나 화장품 업종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중국 입국자 수는 정상화되고 있으나 면세 사업자의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정부 신규 사업자 선정으로 면세점 업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화장품 역시 실적은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으나 최근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과 중국의 일본 화장품에 대한 수출 확대로 한국 화장품의 지배력은 과거보다 악화됐다. 다만 한국 화장품 업계가 그동안 럭셔리 라인업 확대를 통한 브랜드 가치 제고, 품질에 대한 신뢰도 확보 등을 통해 반등의 발판을 마련해 왔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NH투자증권은 중국 소비주 측면에선 오히려 틈새시장인 의류, 신발, 가방 등이 더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분기 실적과 밸류에이션 상황에 따라 주가 등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면서 선별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는 신차 사이클이나 내수확대 환율효과와 기저 효과로 기업이익은 정상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 환경 규제 강화나 전기차 시장 성장으로 내연기관의 전체 글로벌 수요가 감소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조선은 약 50% 후반대로 늘어나는 신규 수주 전망이 긍정적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한국 액화천연가스(LNG) 수주 점유율은 1위로 독보적이다. 우선 카타르와 모잠비크 등 대형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어 57척의 수주가 예상된다. 컨테이너선은 대형 해운사 중 노후선박 교체 수요가 대기 중이다. 다만, 미국산 셰일오일 개발 붐을 타고 국제유가 상승세가 제한되고 있어 해양플랜트 발주 부진은 2020년에도 지속될 예정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해양플랜트 비중이 낮은 반면, LNG선과 컨테이너선의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이 주가 상승 모멘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제약 및 바이오 쪽은 여전히 전망이 불투명하다. 2019년은 임상 3상 중인 약물도 성공확률은 보장되지 않아 신약 개발은 역시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한 해였다. 에이치엘비, 신라젠 등 바이오 대장주들이 산업 전반에 대한 실망감만 안겼다. 2020년은 이러한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단일 후보 물질보다는 다수의 파이프라인을 갖춘 기업이나 임상 초기에 있는 기업으로 오히려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반기는 주된 바이오 학회 일정이 있어서 주가의 상승 모멘텀은 살아있다.
2020년 상반기 주요 학회 일정은 제이피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1월 13~16일) 시작으로 면역항암제 심포지엄(2월 6~8일), 세계내분비학회(3월 28~31일), 미국암학회(4월 24~29일), 미국임상종양학회(5월 29일~6월 2일), 미국당뇨학회(6월 12~16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