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지나가는 시점, 연말이다.
팍팍한 생활에 연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낭만’이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크리스마스도 크리스마스일 뿐, 특별한 순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도 더 이상 만연해 있지 않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지만 스스로 여기에 매몰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을 이렇게만 계속 보낸다면 시간이 흘러 후회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눈을 밖으로 돌리는 것도 좋다. 색다른 분위기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하면 다가올 새해도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말 유럽은 제격이다. 겨울의 낭만이 어느 정도 남아있고,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도 적합하다.
매경럭스멘이 이런 곳들을 소개한다.
사발렌에서 산타가 썰매를 타고 있다. ⓒ Savalen
▶겨울왕국의 나라,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세계적 화제를 모으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2>에 영감을 줄 정도로 겨울과 어울리는 나라다. 수도 오슬로는 크리스마스의 수도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겨울 내내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슬로 곳곳이 12월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반짝이고, 크리스마스 박람회 등 이색 축제도 문을 연다.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산속 마을 사발렌에서는 연말에 세계 산타들을 초대하여 매년 겨울 게임 산타 월드 챔피언십을 진행한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진저브레드 하우스도 있어 이색 숙박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사발렌의 산타클로스와 아이 ⓒ savalen-norway
오래된 한자 무역 도시 베르겐의 좁은 골목길은 크리스마스 기분에 빠져들고 싶을 때 딱 알맞은 곳이다. 이 모든 곳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크루즈 여객선인 후트루튼 배에서 연말을 보내는 건 어떨까? 오로라가 춤추는 노르웨이의 겨울 해안은 그 자체로 마법 같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진저브레드 하우스 ⓒ savalennorway
▶독일, 로맨틱 크리스마스 마켓
무뚝뚝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독일 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
독일 전역에는 600년 전부터 150개 이상의 다양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며 연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드레스덴의 슈트리첼 시장과 뉘른베르크의 크리스트킨들 시장이다.
1434년 시작된 드레스덴 슈트리첼 마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현재까지 예전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50여 개의 상점 주인과 장인들은 중세시대의 옷을 입고 후기 중세시대 도구로 공예품을 만들기도 한다. 따뜻한 양모 슬리퍼, 수제 가죽 벨트와 드레스덴 펜케이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드레스덴 크리스마스 시장에서는 ‘슈톨렌(Stollen)‘ 케이크가 명물이다.
드레스덴에 펼쳐진 오랜 전통의 크리스마스 마켓 ⓒ GNTB(Sylvio Dittrich)
뉘른베르크 역시 중세의 낭만을 품고 있는 도시로 이곳 크리스마스 시장은 전통을 자랑한다. 크리스트킨트라는 특별한 마스코트가 있다. 드레스덴에 케이크 슈톨렌이 있다면, 뉘른베르크에는 ‘쿠키 렙쿠헨(Lebkuchen)’이 있다. 견과류로 꽉 찬 최상급 렙쿠헨이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 GNTB(Prof.Jorg Schoner)
▶축제 가득한 겨울 파리
빛의 도시 파리의 면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계절은 단연코 겨울이다. 연말 파리는 주요 거리와 대형 백화점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여기에 여러 축제가 더해져 연말 분위기로 가득 찬다.
축제 중에는 일루미네이션 쇼를 주목할 만하다. 샹젤리제 거리, 콩코르드 광장 등 파리 곳곳이 빛으로 물들며 여행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루미네이션을 보다 현명하게 즐기고 싶다면 심야 오픈 버스 투어를 이용하면 좋다. 추위에 떨지 않고 빛으로 물든 파리를 즐길 수 있다. 버스는 오페라 가르니에, 샹젤리제, 방돔 광장, 콩코르드 광장,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등을 지난다.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크리스마스트리 ⓒ Galeries Lafayette
파리의 대표적인 전시장이자 박물관인 그랑 팔레(Grand Palais)도 연말 이색 즐길거리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아이스링크장으로 변신한다. 파리에도 다양한 크리스마스마켓이 운영된다. 겨울 시즌에 빠질 수 없는 따뜻한 와인 음료인 뱅쇼와 치즈, 소시지 등의 먹거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랑 팔레 아이스링크 ⓒ Paris Tourist Office _Amelie Dupont
▶터키서 스키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에서 겨울 스키를 즐긴다? 터키문화관광부가 연말 이색 여행으로 추천하고 있는 테마다. 여름 이미지가 강한 터키에서도 겨울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터키 스키의 매력은 스키를 타기에 적합한 지형과 날씨가 기본적으로 갖춰진 데다, 가성비가 무엇보다 좋다는 점이다. 평균 시즌권 가격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보다 약 세 배에서 네 배 이상 저렴하다. 인기 있는 스키 여행지는 마르마라해 남쪽의 해발 1980미터가 넘는 울루다으에 위치한 팔란도켄 스키 리조트로 201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다.
스키를 즐긴 다음에는 터키식 목욕 하맘이 기다리고 있다. 하맘은 로마 제국의 목욕 문화와 이슬람 종교 의식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터키의 목욕 문화로, 증기로 달궈진 커다란 대리석 바닥에서 몸을 덥히면 피로가 절로 풀린다. 대리석 위에 누워 개인 세신사 서비스를 받고 있으면 술탄이 부럽지 않은 힐링을 선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한 가지 사실. 산타클로스의 실존 인물이라고 전해지는 수도사 성 니콜라스가 활동했던 곳이 바로 터키 남서부 지방의 미라(Myra), 지금의 뎀레(Demre) 지방이라고 전해진다.
터키의 스키 여행지 ‘울루다으’ ⓒ 터키문화관광부
▶베토벤으로 물드는 오스트리아의 겨울
오스트리아의 특별한 연말은 악성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제공한다. 탄생 25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음악의 향연이 빈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독일 출신이지만 빈이 주 활동무대였다. 베토벤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빈으로 이주해 그의 대부분의 음악적 걸작을 빈에서 탄생시켰다.
빈 시립 오페라하우스 전경(Vienna State Opera)
빈 필하모닉이 2019년 11월 23일부터 2020년 6월까지 매달 10일 동안 빈 오페라 극장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하는 베토벤 사이클을 진행한다. 빈 음악협회는 2020년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유명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연주하는 베토벤 콘서트를 개최한다. 콘체르트하우스에서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베토벤의 곡이 생생하게 살아날 예정이다. 2020년 새해 첫날부터 그 다음해 섣달 그믐날까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반복해서 연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