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로 가득 찬 새하얀 공간, 뜻밖에 만난 아늑한 정원처럼 초록빛 식물들로 둘러싸인 오픈 주방이 가장 먼저 손님들을 맞이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다이닝 레스토랑 ‘드레스덴 그린’의 첫인상은 싱그러운 봄을 닮아 있었다. 드레스덴(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린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보석으로 평가받는 녹색 다이아몬드를 지칭하는 말로, 보석을 세공하듯 섬세하게 조리하는 자연주의 음식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컨템퍼러리 양식을 기반으로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파인다이닝을 선보인다. 드레스덴 그린은 국내 최대 파인다이닝 전문기업 오픈(OPEN)이 지난 2021년 7월 처음 문을 연 곳이다. 이후 회사 사정으로 4개월 만에 완전한 폐업 위기에 몰렸지만, 단골손님의 투자로 이듬해 3월 다시 문을 연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나와 미국의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박가람 드레스덴 그린 총괄셰프(36)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드레스덴 그린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박 셰프는 “세공사들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깎아 보석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귀한 재료로 다이아몬드 같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좋은 재료를 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대부분의 식재료를 산지 직송으로 수급하고 있다. 박 셰프는 “산지의 생산자분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그린은 런치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스탠다드 코스와 시그니처 코스를, 디너에는 시그니처 코스만 운영하고 있다. 시그니처 코스는 아뮤즈 부쉬(Amuse bouche·전채)로 시작해 생선요리, 육류, 디저트까지 총 11가지 음식으로 진행된다. 각 메뉴의 이름은 요리 이름이 아닌 ‘맛조개’ ‘병어’ ‘단호박’ ‘로브터’처럼 주재료의 이름이다. 이 역시 드레스덴 그린만의 자연주의 철학을 담은 것이다. 코스 메뉴는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반영해 바뀐다. 지금은 봄 시즌 코스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나 벚꽃처럼 봄기운을 머금은 메뉴들을 선보인다.
드레스덴 그린의 음식이 특별한 이유는 자연 식재료 그대로의 풍미를 살리면서도 하나의 자연 풍경을 엿보는 것처럼 접시 위에 놓인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이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대표적이다. 3~5월에만 나는 제주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저온 조리해 익혀 기둥처럼 접시 위에 세운 뒤 그 위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퓌레를 올리고 식용 꽃, 캐비아, 구운 관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피클을 곁들였다. 오밀조밀 놓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바닷속 산호나 숲속 정원을 연상시킨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는 일반 아스파라거스보다 더 부드럽고 달달한 것이 특징이다. 1㎏ 당 4만7000원일 정도로 귀한 재료다. 퓌레는 쪄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만 그대로 갈아서 만든 퓌레와 묵직한 향을 살린 훈연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퓌레, 라임즙을 더해 상큼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퓌레 등 3가지다.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본연의 담백한 맛을 살리면서도 약간의 변주를 줘 한입 한입 다른 느낌을 완성했다. 캐비아의 눅진하고 크리미한 맛과 화이트 아스파라거스의 퓨어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메인 메뉴로 한우 스테이크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오리’는 드레스덴 그린의 인기 별미다. 오리고기를 14일간 숙성고에서 말려 통으로 구운 뒤 가슴살은 슬라이스해 내고, 다리살은 분해해 콩피(시럽이나 기름에 재료를 넣고 오랫동안 끓이는 기법)로 저온 조리해 표고버섯과 겨자씨, 특제 소스와 버무려 당근 시트로 돌돌 말았다. 당근 시트는 제주 구좌읍에서 난 자색 당근을 얇게 썰어 만든 것으로 찐 당근이 만두피처럼 부드럽게 씹히면서 스쳐가는 흙 내음과 함께 달달한 맛을 더해준다. 한입 베어 물면 한식의 갈비찜 같은 익숙함도 느낄 수 있다.
오리소스는 오리뼈를 구운 뒤 다시 8시간 동안 끓여 만들어낸 것으로 약간의 산미가 더해진 진한 맛이다. 촉촉하게 육즙을 머금은 가슴살 슬라이스는 약간의 소금 간만 했는데도 산초와 고수씨, 라벤더의 향이 살짝 더해져 산뜻하다. 그냥 먹어도 좋고 좀 더 부드럽게 당근 퓌레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메인 메뉴 뒤에 익힌 로브스터와 새우, 누룽지를 미니 스타우브에 넣고 로브스터로 우려낸 국물을 부어 따뜻하게 먹는 메뉴도 시그니처 중 하나다.
봄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 디저트 ‘벚꽃’도 눈길을 끈다. 식용 벚꽃 시럽으로 만든 소르베에 코코넛으로 만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더해져 새콤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상큼한 벚꽃 시럽뿐만 아니라 향기로운 장미 시럽이 믹스돼 은은한 꽃향이 느껴진다. 그 위에 식용 애플 사이더 꽃과 초콜릿을 올려 식감을 더했다. 박가람 셰프는 “벚꽃은 원래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꽃이다. 그런데 거리에 있는 가로수는 농약을 많이 쳐서 먹으면 안 되고 식용 꽃으로 재배한 것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메뉴 곳곳에서는 원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에센셜 오일을 뽑아 소스화해 풍미를 극대화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맛조개에 곁들여진 쑥 오일은 쑥의 쓴맛은 낮춰주고 쑥의 향긋한 향은 은은하게 끌어올릴 수 있어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나노 황금사과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도 감칠맛을 살리는 데 활용된다.
드레스덴 그린의 장르는 어느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박 셰프는 “미술에서도 장르, 화풍을 막 나누는데 우리는 그런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컨템퍼러리’를 지향하고 있다”며 “조리 기법이나 다이닝 트렌드, 심지어는 식재료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프렌치다’ ‘한식이다’ 할 것 없이 제철에 맞는 식재료를 써서 그에 맞는 해석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가람 셰프는 2008년 미국 하얏트호텔 다이닝을 거쳐 지난 2010년 CIA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뉴욕에서 약 3년간 머물며 여러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쌓았다. 세계적인 미식 리스트인 ‘미쉐린 가이드’에서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다니엘(Restaurant Daniel), 르 베르나르댕(Le Bernardin),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sion Park·EMP)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와 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 초이닷(CHOI.) 헤드셰프를 거쳐 드레스덴 그린의 총괄셰프가 됐다.
박 셰프는 “EMP에 있을 때 크리스토퍼라는 셰프님이 계셨는데 개인적으로 그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느 날은 암 말기 환자분이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외출 허락을 받고 EMP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오신 날이 있었는데, 그때 셰프님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분의 마지막 식사를 우리가 최고의 식사로 대접하자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드레스덴에 오시는 분들이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런 마음으로 식사가 끝나면 모든 손님께 한 분 한 분 직접 인사드리면서 수제 청귤청을 선물로 챙겨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국산 식재료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박 셰프는 “랍스터나 캐비아, 트러플처럼 국내에서 생산이 안 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한 것들은 가급적 국내산 재료 가운데 좋은 품질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10년 전만 해도 국산 콜라비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최근 몇 년 만 해도 종류가 많이 다양해졌다”며 “계속 소비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국내 식재료 시장도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재료를 계속 발굴하면서 성장해나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드레스덴 그린
장르 컨템퍼러리 양식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20 청담스퀘어 B동 2층 222호
오너셰프 박가람 셰프
영업시간 목~월 12:00~22:00(15:00~18:00 브레이크 타임), 매주 화·수 정기휴무
가격대 스탠다드 코스(런치) 17만원, 시그니처 코스(런치·디너) 27만원
프라이빗 룸 3개(4인석)
전화번호 0507-1482-8984
주차 건물 주차장 이용
[송경은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