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편안하게 금리인상을 거론할 정도로 외환보유액이 쌓이면서 한국 원화는 최근 3년 동안 최고로 올라 달러당 1020원대로 들어섰다. 지난 4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558억5000만달러로 전월보다 26억3000만달러가 늘었다 1년 전에 비해선 1504억달러나 불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FRB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나서면서 내년 이후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한국에서도 금리인상 논의가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세계경제는 어떻게 돌아갈까.
옐런, 상당기간 저금리 유지 시사
지금 상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상은 아무래도 초저금리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 달러화의 향방과 재닛 옐런 미국 FRB 의장의 행보일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2008년 12월 16일 이후 0.25%를 이어왔다.
이와 관련 옐런 의장은 미국시간으로 지난 5월 7일 미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 경제전망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금리 인상에 대한 기계적인 공식이나 시간표는 없다”는 말로 양적완화 종료와 무관하게 저금리 기조를 상당기간 끌고 갈 것이라고 밝혀 세계 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옐런은 이날 “노동시장 여건이 상당히 개선됐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까지는 거리가 있다”면서 “금융정책과 관련해 연준은 노동시장 여건을 되살리고 인플레이션이 의도된 수준까지 나올 때까지 기존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연준은 “경제와 금융시장 여건의 전개에 맞춰나갈 것이며 경제전망 변화에 따라 정책기조를 적절히 조정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옐런의 발언 이후 미국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양적완화 축소가 진행되면서 연초 3%선을 넘기도 했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뚝 떨어져 5월 14일엔 2.5%를 밑돌기도 했다.
옐런 의장이 당분간 유연한 통화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밝혔지만 미국 경제는 외면상 건강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준은행 총재는 물가안정과 낮은 실업률 유지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로 최근 진행 중인 테이퍼링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 중 4월 중 신규주택 착공건수는 전월 대비 13.2% 증가했다. 다만 5월 미시건대 소비자신뢰지수는 81.8로 전달의 84.1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4월 중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2% 상승해 예상보다 높았지만 여전히 안정적 수준을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 유연한 통화정책을 상당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하자 세계 시장은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증시의 평균을 나타내는 S&P500지수는 5월 중순 한때 1900선을 넘을 만큼 치솟으며 사상 최고 기록을 바꿨다. 역시 금융위기의 여파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독일 DAX지수도 5월 중순 한때 9800선에 육박하는 등 조만간 1만선을 넘어설 기세다.
중국, 선진국 수출 회복 조짐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을 누르고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선 내수판매가 둔화되는 가운데 생산 부문이 활기를 띠고 있다.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1분기 전체로 볼 때 전분기보다 둔화됐는데 4월 들어서 또 3월보다 둔화됐다. 다만 1분기에 마이너스로 급락했던 수출 증가율은 4월엔 소폭(0.9%) 회복세를 보여 희망을 갖게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세를 타고 있는 유럽과 미국 수출이 증가하면서 남미나 중동 등 다른 지역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출은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것으로 진단했다. 대외여건이 개선되면서 소매판매 증가율이 둔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제조업이나 비제조업 모두 구매관리지수(PMI)가 상승했다.
다만 외부에서 우려하는 자산시장 둔화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중국의 주택가격은 지난 연말부터 4개월 연속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최근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서 당분간 중국 부동산의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하반기 상승 조짐을 보이던 상하이지수는 올해 들어선 그림자금융 등의 악재가 불거진 데다 대규모 IPO 계획까지 나오면서 2000~2100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자산시장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내수회복에 희망을 걸고 있는 중국 정부로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초유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부패척결에 나선 시진핑 정부가 당분간 칼끝을 눕히지 않을 것으로 보여 내수보다 수출에 의지하는 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CB 바주카포(대규모 통화공급) 필요성 거론
파이낸셜 타임즈의 마틴 울프 수석경제평론가는 최근 ECB가 또 한 번의 바주카포를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회복세를 보이는 것 같은 유로존에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이에 앞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5월 8일 통화정책회의 뒤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필요할 경우 비전통적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혀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드라기 총재는 “집행위원들이 비전통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ECB가 이런 방침을 정한 것은 유로존 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의 올 1분기 성장률은 0.2%로 시장 예상치(0.4%)보다 낮게 나왔다. 지역 경제가 4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했지만 추세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자 아예 판세를 바꾸려는 카드를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성장률 부진은 독일을 제외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여타 국가들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분기 중 프랑스의 성장률은 제로에 머물렀고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등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한마디로 지역에서 다시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ECB는 은행들이 부실채권이 급증하자 다시 몸 사리기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유로존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8.1%나 늘어나 1조유로가 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ECB가 비전통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은 은행을 통한 통상적인 자금순환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금리수단을 통한 자금순환이 이뤄지지 않으니 직접 시장에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마틴 울프가 바주카포를 언급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흔들리기 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위기를 만날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사사건건 ECB에 반기를 들던 독일 분데스방크도 모처럼 드라기 총재를 지지하고 나서 유로화가 약세로 돌아섰다.
당분간 저금리 기조는 대세
결국 세계 경제의 큰 축이 모두 상당기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이들을 제외한 경제대국들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지난 5월 14일 “금리는 당분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고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영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금리인상을 고려할 때가 됐다는 분석을 내놨지만 그는 시장이 확실히 바뀔 수 있는지 보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일본에선 4월부터 시작된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지난 1분기 GDP가 모처럼 증가했다. 일본은행은 당분간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성장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거나 경제특구를 신설하는 등의 조치까지 구상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당분간 완화된 통화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리스크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당분간 급격한 자금의 쏠림을 걱정하지 않고 자금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통화당국 입장에선 저금리 기조 유지와 환율방어라는 서로 다른 목표 사이에서 갈등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