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출을 해야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나라인 만큼 적정수준 이상의 고환율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가적으로 고환율로 수혜를 보는 쪽의 이익을 피해를 보는 국민들에게 분배하는 정책 역시 강구해야 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산업실장이 최근 환율 움직임과 관련해 제시한 정책 방향이다. 그는 오는 7월에 있을 일본의 참의원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엔저 기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엔화 약세는 아베노믹스와 연결돼 있다. 지금 추세로 볼 때 7월 선거에서 아베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엔화 약세는 탄력을 받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게 한국엔 어려움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선 원/달러 환율보다 원/엔 환율이 더 관심사다. 원/엔 환율이 기업의 국제경쟁력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엔저 기조가 앞으로도 이어진다고 할 때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에는 어려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20년 이상 장기추세로 보면 환율이 아직도 높은 상태라고 하자 권 실장은 경제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환율은 장기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나 원/엔 환율은 장기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물가가 높은 나라의 통화가치가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원/달러 환율이 800대 1, 원/엔 환율 8대 1이었다고 그 당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동안 한국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지금 환율이 장기 평균치보다는 높은 수준이나 이 평균치보다 내려가선 곤란하다.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1000원대 중반, 원/엔 환율은 11대 1 밑으로 떨어지면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보다 원/엔 환율이 많이 내려왔는데 이제까지는 버틸 수 있었으나 더 내려갈 경우 충격이 클 것이란 게 그의 평가다. 특히 원/엔 환율이 지금보다 더 내려가면 국가적 손실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하락한 것은 좋으나 성장률이 너무 빨리 떨어졌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고환율의 이익 분배 틀 만들어야
고환율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리는 문제와 관련해 권 실장은 “환율이 하락할 때 소비자물가가 얼마나 떨어질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는 아직 수출 주도로 성장해야 하는 나라다. 환율이 내려가면 내수 안정 효과보다는 수출 감소로 인한 타격이 더 크다. 이런 까닭에 환율은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균형 수준보다는 높은 게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만 고환율로 수출을 일으킬 경우 그로 인한 이익을 고환율 때문에 피해를 보는 계층에 분배하는 정교한 틀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출을 위해 FTA를 체결했을 때 정부가 지원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피해 농가에 보상을 했다. 고환율에 따른 상대적 손실을 보조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그동안은 수출업체들이 이익을 내고 성장하면 낙수효과로 전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했으나 그렇질 못했다. 낙수효과가 나타나려면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어 지출하거나 수출기업들이 국내에서 써야 한다. 수출을 하는 데 필요한 기계나 장비 등 여러 가지 인풋(Input)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질 못해 거의 외국 수입으로 충당했다. 이것은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점에서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다고 했다. 다만 그 일은 한 정부에서 모두 마칠 수 없는 과제이기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내수가 아닌 수출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이때 중소기업은 내수만 생각하지 말고 수출기업으로 성장해야 많은 문제가 동시에 해결된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 지원은 펀더멘털을 강화해 경쟁력을 향상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며 ‘보호’를 생각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게 지원이 아니다. 보호는 100% 실패한다. 보호라는 게 뭔가. 내수가 얼마 안되는 시장에서 너도나도 보호해달라고 하면 한정된 시장에서 싸우다 모두 망한다. 그런 면에서 중소기업 지원은 경쟁시장(수출)으로 내모는 것이어야 한다. 1회성 지원은 누수로 사라질 뿐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수출산업화 하는 데는 금융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나 정책금융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시장에서 금융과 기업이 리스크를 공유하며 기업을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벤처캐피탈이 됐든 어떤 형태가 됐든 기업과 금융기관이 공동의 이해를 가지고 위험을 함께 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대기업은 국내 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금융기관엔 돈이 남아돌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그 돈을 받아다 쓸 만큼 투명성이 높지 않다. 이런 면에서 서로 노력하며 상대에게 다가가야 한다. 은행은 담보장사 그만하고 리스크 질 수 있도록 열심히 찾아다니며 봐야 하고 중소기업 역시 투명성을 높여 은행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그런 시스템이 작동한다.”
일본경제 금리 상승하면 위험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그는 “돈 풀어서 엔저 국면을 만들어 수출을 촉진해 수익성을 증진시키는 한편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디플레이션 심리를 불식시키고 대신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해 내수와 투자를 촉진시키는 게 근간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엔 연결고리가 점프돼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엔화 약세는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수출기업이 돈을 벌어 임금을 많이 주어 소비를 늘리거나 투자를 한다는데 이게 잘 되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수출기업이 돈 번다고 바로 임금을 올려주고 이를 통해 소비가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또 수출해서 이익 내 투자를 늘려 내수경기를 활성화한다는데 기업의 투자는 그런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장기 플랜에 따라하는 것이다.”
권 실장은 특히 “(일본) 기업들이 엔저가 지속될 것으로 믿을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중반에도 엔저가 있었다. 그때 투자를 늘렸던 기업들이 곧바로 엔고가 돼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소비와 투자가 늘어 임금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으로 가기 전에 인플레이션 심리가 살아날 위험도 있다고 했다.
“경기회복 기대심리만 쏟아져 나와 금리가 올라가면 일본은 재정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일본 국채는 대부분 일본 금융기관들이 투자하고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채권값이 떨어져 기관투자가들의 손실이 급증한다. 경기회복이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기 전에 금리가 먼저 올라가면 재정 부실과 금융기관 부실이 먼저 나타나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경우 일본 경제는 더 악화될 수도 있다.”
한·일 지금이 부채축소의 적기
지금 일본의 분위기는 좋지만 환상을 좇는 일종의 도박으로 평가한 권 실장은 한국도 남의 나라 얘기로만 넘길 게 아니라고 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많아 저금리를 유지하는데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가 큰 타격을 받는다. 지금 역사적으로 초저금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시작됐다고 한다. 저금리 국면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제 채권에서 주식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앞서가는 이야기이나 금리는 지금 바닥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금리가 상승할 확률이 커졌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지금처럼 금리가 낮을 때 부채축소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지금 문제가 된 악성부채는 금리가 낮을 때 조정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정권 초기에 하지 않으면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했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있고 해서 정권의 힘이 있을 때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