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분석과 관련해 아주 오래된 숙제이자 수수께끼는 비싼 운용보수를 받는 액티브 펀드(보통의 주식형 펀드)의 성과가 평균적으로 인덱스 펀드(수익률이 주가지수 등을 따라가도록 설계한 펀드)의 성과를 밑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액티브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7.13%였는데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 평균은 11.85%나 됐다. 지난해 주가지수는 코스피가 9.35% 올랐고 코스피200이 10.57% 올랐다. 인덱스 펀드들은 오히려 시장 평균보다 나은 성과를 보였고, 적극적으로 수익률을 올리겠다고 나선 액티브 펀드들은 오히려 지수보다도 못한 결과를 냈다.
골머리를 싸매고 주식을 고르는 펀드매니저들이 대부분 시장 평균 성적도 내지 못하다면 투자자들은 굳이 비싼 수수료를 물어가며 그런 펀드에 가입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운용사들은 여전히 그런 저질(?) 펀드를 만들어내고 있고 많은 투자자들이 내용도 모르고 따라간다. 무슨 까닭일까. 그 의문의 한 가닥을 풀어준 게 가치주 펀드다.
KB중소형주 펀드 34% 수익률
지난해 가치주 펀드의 하나인 KB자산운용의 ‘KB중소형주포커스A’ 펀드는 연간 34.23%나 되는 높은 수익률을 냈다. 이 펀드의 설정액은 493.56억원으로 아주 작은 편은 아니다. KB자산운용은 설정액 2383.86억원인 ‘중소형주포커스C’ 펀드도 33.43%의 수익률을 냈다. 설정액이 1000억원에 육박하는 이 회사의 또 다른 가치펀드인 ‘중소형주 밸류포커스’ 펀드는 12.78%의 수익률로 역시 평균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최웅필 KB자산운용 이사는 “종목위주로 갔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지수가 9% 이상 올랐지만 대형주에선 삼성전자가 40%가량 올랐고 나머지는 대체로 부진했다. 반면 중소형주가 약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6년 만기 10년의 장기펀드로 화제를 모으며 출범한 한국밸류자산운용의 ‘10년투자증권투자신탁 1(주식)(C)’은 설정액이 6373억원이나 되는데도 20.79%나 되는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역시 가치주 펀드다. 회사별로 전체 성적을 집계해 보면 가치투자를 고수하는 회사의 약진이 확실히 드러난다. 한국밸류 트러스톤 IBK 신영자산운용 등 소위 가치투자에 주력하는 운용사들이 회사별 수익률 랭킹 상위를 휩쓸었다. 일반 주식형 펀드 상위 30개 가운데 한국밸류가 7개, 트러스톤이 8개, 신영이 7개, IBK가 2개를 올렸다. 미래에셋과 삼성자산운용도 중소형주 펀드에선 20% 전후의 수익률로 실적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고수익을 내는 펀드들 때문에 투자자들이 액티브 펀드에 관심을 준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시장 보지 말고 우량종목 찾은 게 고수익 비결
“가치투자 펀드가 얼마나 좋은지는 장기투자의 성과를 보면 잘 나타난다. 지난 2007년 대비 성장형 펀드의 실적은 대부분 보합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데, 가치주 펀드는 대부분 20% 이상 시장을 아웃퍼폼(Out-Perform)하고 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전무는 “투자자들이 성장하는 국내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려면 가치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전무는 한국밸류자산운용의 이채원 부사장과 함께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치투자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신영자산운용은 4조8000억원대의 운용자산 가운데 70% 정도를 주식형으로 운용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에 가치투자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31개 주식형 펀드(설정 1년 이상 기준)가 지난해 모두 플러스 수익률을 냈을 뿐 아니라 수익률이 낮은 펀드조차 7%를 넘을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허 전무는 투자자들에게 시간에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가치는 장기적인 수익창출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우량 기업과 오래 간 게 고수익의 비결이라고 했다.
“우리 펀드의 평균 보유기간은 4년쯤 되며 10년 이상 가는 종목도 있다. 한마디로 회사와 함께 가면서 파트너십을 형성한다고 보면 된다. 장기적으로 보니 그렇게 한 게 수익률이 높게 나오고 있다.”
그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를 권하는 근거다. 허 전무는 특히 시장을 보지 말고 우량회사를 보라고 조언했다.
“지수를 보면 2007년과 유사한데 시가총액은 그동안 300조원 정도가 늘었다. 지수는 이처럼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가치주 펀드는 시가총액이 늘어나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우량주를 계속 편입하기 때문이다.”
올해 글로벌 경제와 관련해 허 전무는 미국과 중국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유럽의 재정위기 지속으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재정절벽 위험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있어 1분기까지는 둔화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른 부양책에 힘입어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시작되겠지만 디레버리징 부담에 따라 회복 속도는 매우 완만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계부채 부담을 안고 있는 국내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2분기 이후 수출이 살아나면서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게 그의 분석이다.
국내 주식시장과 관련해 허 전무는 상반기에는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하락과 상승 모두 제한적인 변동성 국면이 이어지다가 하반기에 경기 안정화와 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완만한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저평가 가치주나 고배당주가 앞으로도 유망한 투자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경기변동에 민감한 고성장주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다. 또 저성장 국면에선 차별적인 고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업의 수도 제한적이다. 이런 면에서 높은 안정성을 가진 저평가 가치주와 고배당주가 상대적으로 유망하다.”
그는 현재 주식시장의 상황이 지난 2004~2005년과 유사하다고 했다. 당시엔 앨런 그린스펀 미국 FRB의장이 장기간 저금리를 지속해 전 세계적으로 자금이 주식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으로 이동해 고배당주와 가치주가 재평가를 받은 바 있다.
“현재 상황은 그 당시와 유사하게 가치주와 배당주에 유리한 투자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강화돼 적립식 투자보다 수익증권 형태의 투자 선호가 예상된다.”
그는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우대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우량 중소기업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우량 중소기업이 재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1999년에도 저조했던 주가가 오르면서 중소형주에서 큰 폭의 수익을 내준 종목들이 있었다.”
허 전무는 특히 국내 자산운용 시장에서 쇠퇴해 가는 혼합형 펀드가 실제로는 큰 장점이 있는 상품이라며 앞으로 이 부문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안전성까지 겸비한 좋은 상품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어느 날 겨울에 산행을 하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아이젠을 차면서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착안해 주식혼합형 펀드 이름을 아이젠이라고 붙였다. 이름 그대로 주식혼합형 펀드는 은퇴자의 자산을 확실히 지켜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운용하고 있다. 지난 10년 이상 운용 경험으로 볼 때 주식혼합형의 리스크는 아주 작다. 주식형의 리스크가 100이라고 할 때 주식혼합형은 40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수익률은 주식형과 유사하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더 사들여 평균 매입단가를 낮추는 게 이 상품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지수가 절반으로 꺾이는 장에서도 이 펀드는 마이너스 17%의 수익률로 선방했다. 그만큼 혼합형은 유리한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