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A씨는 평소 주식투자에서 ‘몰빵’을 즐긴다. 나름대로 분석한 기업이나 점찍어 둔 기업에 전체 투자금 2000만원을 한꺼번에 몰아넣는 식이다.
종목을 여러 개 분석하기도 힘들 뿐더러 투자금을 여기저기 분산하면 오히려 산만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A씨도 ‘분산’이라는 것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비록 3개 종목이지만 투자금을 분산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중 한 종목의 상승률이 아주 높거나 혹은 두 종목은 오르는데 한 종목만 유독 하락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A씨는 ‘셋 중 상승하는 종목에 몰빵했다면 큰 수익이 났을텐데…’, ‘하락 종목을 안 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를 거듭했다. 결국 A씨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몰빵 전략으로 돌아섰다.
#2. 자영업자 B씨는 투자금 1억원을 상장 주식 5개 종목에 골고루 분산투자했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시황을 매일 체크할 수 없을뿐더러 종목의 등락에 따라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분산투자하라는 증권사 직원의 조언도 있었다. 지난해부터 코스피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B씨의 수익은 제법 좋았다. 분산한 탓에 수익률이 최고는 아니었지만 B씨는 만족했다. 5~6월 증시가 하락할 때 B씨는 분산투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5개 종목 중 그나마 오른 종목도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례는 각각 집중투자와 분산투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엄밀히 말해 A씨와 B씨는 모두 집중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집중투자 중에서도 시쳇말로 ‘몰빵’을 선호하는 것이다.
분산투자란 원래 주식이나 펀드, 부동산, 예금, 채권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수익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얘기다. 바구니가 엎어지면 갖고 있던 계란이 모두 깨져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갖고 있는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으면 설사 한 바구니가 엎어져 계란이 깨진다 해도 다른 바구니의 계란이 남아 있으니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주식시장 조정 분산투자 필요성 부각?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앞에 사례로 든 A씨와 B씨는 모두 주식에만 집중투자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주식·펀드, 부동산, 예금, 채권 등에 골고루 나눠 투자하는 것은 거액 자산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시장 내에서 집중투자냐 분산투자냐를 논하고 있다.
지난 5~6월 국내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 받으면서 투자심리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4월까지만 해도 장밋빛 전망 일색이던 주식시장이 연초 대비 이하로 하락하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주식시장의 조정이 예상보다 폭이 크고 시간이 길어 고객들에게 민망하다”며 “요즘 우울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다”고 토로했다.
2분기 주식시장의 조정으로 새삼 분산투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락장이나 불안한 장이 계속될 때 분산투자의 ‘헤지(위험 회피)’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이라는 한 범위 내에서도 집중투자와 분산투자를 논할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주식시장 내에서 집중투자와 분산투자를 가름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종목 수에서는 전문가들마다 차이가 있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0개 종목 이상이어야 분산투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는 “20개 종목이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분산투자의 효과를 연구하고 실증해본 결과, 20개 이상 종목이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상원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 역시 분산투자의 경계선을 20개 종목으로 보고 있다. 이 팀장은 “20개 이상이면 딱히 분산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많아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서재형 한국창의투자자문 대표는 “분산투자라고 하면 30~40개 종목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분산투자를 하려면 최소한 10개 이상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거액 자산가들을 제외하고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 10개 종목 이상에 투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인들이 10개, 20개 종목을 꼼꼼히 분석하기도 불가능할뿐더러 관리하기도 힘들다. 실제로 일반 소액 투자자들에게 20개 종목에 분산해서 투자하라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김석규 대표는 “개인들이 20개 종목을 분석하고 관리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개인들이라면 3개 종목 정도로 투자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3개는 굉장한 집중이니만큼 리스크가 크다”며 “개인이 분산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펀드”라고 조언했다. 개인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현장 전문가와 PB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개인들이 20개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장 PB들 역시 20개 종목을 추천하지도 않는다. PB 본인이 20개 종목을 가려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고객에게 20개 종목에 나눠 투자할 것을 권유하겠느냐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가 20여 개 종목에 분산투자하기는 어려워
투자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이민정 푸르덴셜투자증권 압구정지점 PB팀장은 “종목이 너무 많으면 보지 못한다”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종목 5개 정도로 압축해서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실제로 많은 종목을 보유해 보기도 했지만 손실이 나는 종목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전현진 신한금융투자 명품PB센터 팀장 역시 “될 성 싶은 종목에 집중투자할 것을 권유한다”며 “본인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꼭 아는 종목 2~3개로 압축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전 팀장은 “소액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분산투자라 하면 현금과 투자 비중의 분산이 적당하다”며 “그 안에서 주식은 집중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기관투자가냐 개인투자자냐, 거액투자자냐 소액투자자냐, 장기성 자금이냐, 단기성 자금이냐에 따라 집중투자와 분산투자의 유불리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즉 거액 장기자금은 분산투자가, 소액 단기자금은 집중투자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액 단기자금으로 분산투자하기는 힘들다는 데 의견이 같이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자금의 성격과 액수, 투자자의 위치에 따라 집중투자가 유리할 수도 혹은 분산투자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서 예로 든 직장인 A씨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주식이라고 추천하고 나 역시 분석해본 결과 매우 좋다는 것을 아는데 굳이 왜 다른 것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A씨는 또 “좋다고 판단되면 그것에 올인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말인즉슨 옳다. 다른 주식보다 더 많은 수익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주식에 ‘몰빵’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많은 전문가들은 집중투자를 경계하고 분산투자를 조언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리스크 관리’ 때문이다. 집중투자를 했다가 만의 하나 선택이 틀렸다면, 분석이 잘못됐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한 바구니에 담은 계란을 몽땅 깨뜨리게 되는 화를 초래하게 된다. 김석규 대표는 “‘내가 만약 틀렸다면’이라는 전제를 항상 깔아놓고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몰빵’해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잘 들리지 않는다.
워런 버핏에 따르면 ‘성공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버핏은 성공투자의 원칙을 첫째 ‘돈을 잃지 말라’, 둘째 ‘첫째 원칙을 잊지 마라’고 규정했다. 돈을 잃지 않는 것, 즉 리스크 관리가 성공투자의 첫째 조건이자 원칙인 것이다. 따라서 ‘몰빵’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보다 ‘내가 틀렸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분산투자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성공투자의 바람직한 전력인 셈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 C씨는 약 3년 전 코스닥에 상장된 한 IT업체에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당시 업체에 대한 증권사들의 평가도 매우 긍정적이었고 C씨 스스로 기업을 분석해본 결과도 우수했다. 게다가 그 업체를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C씨가 투자했던 당시 그 업체의 주가는 3만5000원, 3만8000원을 오르락내리락했다. 1억5000만원으로 업체 주식을 분할매수한 C씨의 평균 매입가는 3만6000원. 이후 주가는 4만5000원을 넘어 5만원 가까이 상승하며 C씨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목표가 6만원을 잡아 놓고 있던 C씨는 원금의 거의 두 배가 될 투자금을 상상하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차츰차츰 하락하기 시작했다. 업계 1위 회사였고 실적도 꾸준했다. 기관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외국인들이 계속 지분을 늘리는 까닭에 C씨는 ‘곧 회복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추가 매수 기회라며 ‘물타기’를 해가면서 투자금액을 더 늘렸다. C씨의 투자금액은 이제 3억원. 3년이 지난 현재 업체의 주가는 8000원대다. 3년 이상 본의 아니게 장기 투자자가 된 C씨의 투자금액은 5분의 1 토막이 난 상태다. ‘내가 틀렸다면?’이라는 의심 없이 몰빵한 C씨의 투자 결과는 대단히 치명적이다.
C씨의 경우는 집중투자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집중투자 수익률 VS 분산투자 리스크 관리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몰빵을 한 우를 범한 것 외에도 C씨는 투자에서 몇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 중 하나가 ‘손절매’를 하지 않고 오히려 ‘물타기’를 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집중투자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손절매’를 꼽고 있다.
전현진 팀장은 “집중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손절매”라고 강조했다. 전 팀장은 “집중투자가 수익률을 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분산투자가 리스크 관리에 무조건 좋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분산투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분산을 위한 분산투자’다. 올바른 지식과 정보도 없이 무조건 다양한 종목과 상품에 나눠 투자하는 잘못된 분산투자는 오히려 효과적인 수익률·리스크 관리에 해가 될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목을 여러 개로 분산해 투자한다면 일일이 관리하기도 힘들뿐 아니라 여러 종목을 매매하면서 거래 비용 부담만 증가한다.
또 각 종목과 관련한 뉴스·공시·의견 등을 지나치기 일쑤며 매수·매도 시점을 놓쳐 더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 워런 버핏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즉 여기저기 산만하게 벌려 놓기보다 우량주에 집중투자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단 전제가 있다. 집중투자 하되 잘 감사하라는 것. 집중투자와 분산투자 중 어느 것이 옳다는 정답은 없다. 본인의 상황과 성향, 투자금액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다만 두 가지 투자방법의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리스크 관리다. 분산투자의 속성은 물론이려니와 집중투자의 ‘잘 감시하라’, ‘손절매’ 운운도 결국 리스크 관리와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