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사실상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물론 헤지펀드도 사모펀드의 일종이기 때문에 사모펀드 요건에 맞춰 운용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설립된 헤지펀드같이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할 수 없었다. 헤지펀드 운용의 핵심인 레버리지나 공매도 활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지배받고 있는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공모펀드 외에 각종 사모펀드를 특례를 통해 명시하고 있다. 일반 사모집합투자기구, 적격투자자 사모집합투자기구, 사모투자전문회사, 기업 재무안정 사모투자전문회사 등이 헤지펀드와 관련이 있는 특례 규제를 받는 것들이다. 이런 특례에서 명시하는 규정에 따라 이른바 헤지펀드와 유사한 펀드를 설정할 수 있다. 이 규정을 따르지 않으면 모두 불법이었다.
일반 사모집합투자기구는 공모펀드와 유사하게 운용된다. 사모투자전문회사와 기업 재무안정 사모투자전문회사는 헤지펀드가 채용한 투자기법을 따를 수는 있지만 본격적인 헤지펀드로 보기는 어렵다.
규제 많아 다양한 운용 어려워
특례 규정을 받는 펀드 가운데 헤지펀드와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은 적격투자자 사모집합투자기구다. 하지만 현행법에 레버리지 제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일정 수준 이상 투자해야 한다는 조항 등 규제가 많아 외국의 헤지펀드같이 다양한 운용 기업을 활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산운용통합법(제249-2, 시행령 271-2)에 따르면 운용 주체는 집합투자업자(운용사)로 한정하고 최소 자본금은 20억원이다. 은행과 증권, 보험, 연기금 등 기관만이 적격투자자이며 레버리지는 300%까지 가능하지만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재산의 100분의 50 이상을 투자해야 허용된다. 이런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헤지펀드 설립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하반기 적격투자자 사모집합투자기구에 적용되고 있는 규제 중 일부를 완화해 헤지펀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펀드자산의 50% 이상 투자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조항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또 레버리지와 공매도 한도와 적격투자자에 대한 요건 등이 명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규제들이 정해지면 국내에도 헤지펀드 설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국내에서는 기관을 포함해 많은 투자들이 헤지펀드에 큰 관심을 보였고 투자에도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일반 사모펀드 투자자를 제외하고 국내 기관들만 금융위기 이전에 최고 2조원대의 헤지펀드 자금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기로 헤지펀드 수익률이 급락하고, 심지어 파산하는 헤지펀드가 줄을 이으면서 이 자금은 대부분 환매됐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헤지펀드에 직접 투자할 방법이 없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거액 투자자들이 사모펀드 형태로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대부분 외국의 유명 헤지펀드 몇 개를 복수로 담은 헤지 오프 헤지펀드, 즉 재 간접 펀드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자산운용통합법에는 헤지펀드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그러나 레버리지를 통해 투자하려면 반드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자산의 절반 이상을 배정해야 하는 조항을 비롯해 걸림돌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산운용사들이 외국에서 운용되는 헤지펀드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 결국 현재 헤지펀드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국내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는 거의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헤지펀드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해도 당장 국내에서 설정되고 운용되는 헤지펀드는 등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헤지펀드가 설립된다 해도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를 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국내 증권사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외국 헤지펀드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키우는 쪽으로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현재 헤지펀드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증권사 중 하나가 우리투자증권이다. 우리투자증권은 회사 내 일부 조직을 분사해 헤지펀드를 만드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이미 전담팀을 선발해 헤지펀드 규제 완화 시점에 맞춰 헤지펀드를 출범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투자증권도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다. 본사는 프라임 브로커로 자리를 굳히고 관련 조직을 분산해 헤지펀드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대우증권을 비롯해 삼성, 현대, 미래에셋증권도 궁극적으로 직접 헤지펀드를 운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잠재수요 많아 자금 이전 클 듯
헤지펀드 중 약 3분의 1은 가격이 오를 주식을 매수하면서 동시에 산업 전망이나 지수의 흐름을 고려해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공매도하는 ‘롱 숏 에쿼티’ 방식으로 절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최근 유진투자증권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헤지펀드 적격투자자의 범위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 시장 규모가 달라질 것으로 분석됐다. 또 헤지펀드가 도입되면 잠재수요가 많아 자금 이전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 증권사는 헤지펀드 적격투자자 기준을 너무 높이지만 않으면 도입 3년 안에 기관과 거액 투자자들의 자산을 합쳐 42조원 가량이 헤지펀드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거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자금이 몰렸던 자문형 랩에 있는 돈도 일정 부분 헤지펀드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자문형 랩처럼 대중화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만약 금융당국이 헤지펀드의 부작용을 우려해 레버리지 한도를 엄격하게 하고 적격투자자 요건도 까다롭게 정한다면 시장이 조기에 활성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헤지펀드를 공모펀드 형태로 바꾼 재간접 펀드에는 비교적 규제에 영향을 덜 받고 있어 자금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모펀드 규제를 피해 상승장에서 민첩하게 움직였던 자문형 랩과 절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며 “헤지펀드는 규제가 풀리면 주목받을 수 있겠지만 단기간에 과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헤지펀드가 자문형 랩 시장 규모보다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