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전 세계의 사업 구조와 일자리 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의 관심사는 AI가 어디까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가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초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AI가 특정 직무들을 자동화하기 시작하면서, 고용주들의 41%가 인력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사를 공개했다.
이 같은 전망은 미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4’에 따르면, 챗GPT와 같은 AI로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가 270만개로, 전체의 1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AI로 인한 일자리 위협을 가장 가깝게 체감하는 직군 중 하나는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미국 빅테크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거 포함한 감원을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감원에는 AI의 영향이 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챗GPT와 같은 범용 AI 서비스부터, 개발을 돕는 AI 코딩 툴들이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개발자들이 수일을 들여 작성하던 수 백줄의 코드를 AI가 순식간에 써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 개발자처럼 초급 개발자는 더 이상 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위기감까지 대두된다.
MS를 포함해 인텔, 메타, 아마존 등 굵직한 빅테크들은 대부분 조직 효율화 차원에서 부분적인 감원을 포함해 구조조정을 상시 진행하고 있다.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비용을 관리하고 조직의 성과는 끌어올리기 위한 차원이다. 특히 AI를 활용한 코드 작성 자동화 등이 계속 고도화되면서, 많은 개발자가 감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MS는 지난 5월, 전체 인원의 약 3%에 해당하는 6000명의 인력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해외 지사와 자회사를 모두 포함하는 전체적인 조직 재정비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MS 본사가 위치한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약 2000여 명의 직원이 감원 대상이었는데, 이중 800여 명이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자가 감원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에 대해 AI 기반 코드 작성 및 분석 도구가 확산되면서 기존 소프트웨어 개발자 역할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은 지난 2월 전체 인력의 약 5%인 약 3600명을 해고한 데 이어, 4월에는 가상현실(VR) 관련 부문 ‘리얼리티랩스’ 인력 일부를 줄인 것으로 전해진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올해 1월 “성과 관리 기준을 높이고 저성과 직원들을 더 빨리 퇴사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구글은 지난 2월 클라우드 부문에서 인력 감축을 단행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플랫폼 및 디바이스(기기) 부문에서 수백 명을 감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빅테크들은 이미 개발의 상당 영역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5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자사의 AI 개발자 콘퍼런스 ‘라마콘(LlamaCon)’에서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 대담을 진행하며 “내년에는 AI가 메타의 개발 과정 중 절반을 수행할 것이며,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델라 CEO는 이 자리에서 “MS에 저장된 코드의 20~30%를 AI가 작성했을 것”이라며 “일부 프로젝트는 전체를 AI가 개발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경고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반적인 일자리 생태계를 향한 전망이다. 아모데이 CEO는 최신 모델인 ‘클로드 4’를 발표한 뒤 진행한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금융, 법률, 컨설팅 등을 포함한 사무직과 특히 입문 수준의 일자리가 대량으로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AI는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의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소프트웨어에 필요한 코드를 대신 작성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작성한 코드를 검토하고, 오류를 찾아내거나 검수하는 것에서도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가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 개발자는 “이전에는 기존 코드의 수정 요청을 AI에 맡기는 식으로만 활용했다면, 이제는 필요한 프로세스 전체의 개발을 먼저 맡기고 나는 검토와 테스트만 진행한다”라며 AI 활용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I 모델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코딩 능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추세다. 소프트웨어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SWE 벤치 베리파이드’ 벤치마크에 따르면, 지난해 등장했던 오픈AI의 ‘GPT-4o’ 모델의 경우 33.2%의 정확도를 보였는데 지난 4월 등장한 추론 모델 ‘o3’의 경우 69.1%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일일이 코드를 타이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어로 원하는 개념을 설명하면 AI가 실제 코드를 써내려주는 ‘바이브 코딩’ 방식도 선풍적인 인기다. 마치 “바이브에 몸을 맡기듯”이 흐름에 따라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 바이브 코딩으로 불린다.
개발자는 예전처럼 한줄 한줄 코드를 작성하는 것 대신에 AI와 대화하면서 결과물을 얻고, 추가 작업이 필요하면 AI에 오류 수정과 개선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바이브 코딩 서비스에는 커서, 윈드서프, MS의 깃허브 코파일럿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같은 AI 서비스가 개발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는 5명 이상의 개발자들이 붙어야 했던 업무를 이제는 2~3명의 개발자가 AI 툴을 활용해 더 빠르게 작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인턴이나 신입사원과 같은 저연차 개발자다. 주로 저연차들이 수행하던 반복적인 업무나 초급 개발 업무들이 상당 부분 AI로 대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벤처캐피털(VC) 시그널파이어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 15곳(시가총액 기준 상위 15개의 기술 기업)의 지난해 대졸 신입 채용은 2023년 대비 24.8%가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는 무려 5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빅테크는 2년 이상의 경력자에 대한 채용은 20% 이상 증가한 반면 2년차 미만의 신입 채용은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그널파이어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단순한 채용 감소가 아니라 기대치의 전환”이라며 “오늘날의 테크 기업들은 잠재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입증할 수 있는 결과를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AI 툴이 일상적인 초급 업무를 대체하면서 기업들은 높은 수준의 기술 활용도가 필요한 직무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중 하나인 카카오는 지난 4월 AI로 대체 가능한 업무에 대해 가급적 신규 채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공유하며 업계에 파장을 던지기도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직무는 한때 채용이 대폭 늘었지만, 이제는 새롭게 채용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미국 빅테크 또한 채용보다 정리해고가 많아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의 채용 공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IT 개발 직무의 신규 채용 공고 건수는 상반기 기준으로 2023년 995건에서 2024년 684건, 올해 564건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한편 주요 대기업들은 개발을 돕는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LG CNS는 기존에 코딩 단계에서만 활용하던 AI 코딩 플랫폼을 확장시켜 지난 5월부터는 시스템 분석부터 설계, 테스트, 품질 진단에 이르는 시스템 개발 전 과정에 적용했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은 바이브 코딩 툴인 커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AI는 단순히 채용의 증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업무 방식과 같이 조직의 운영 구조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를 활용하는 고급 경력 개발자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지게 되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AI를 어떻게 업무 전면에 도입해 생산성은 높이고 비용은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나선 상태다. 불필요한 중간 관리직을 줄이고 조직을 효율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진다.
다만 “AI가 개발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직 기우라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한 4년차 개발자는 “AI가 어디까지 수행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종종 든다”면서도 “문제 상황 설정이나 사람 간 소통 등 AI가 완벽히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어떤 서비스를 새롭게 기획하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 나서는 것은 인간의 분야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업무에서 ‘AI 활용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제는 개발 과정에서 AI를 안 쓸 이유가 없는 만큼, 얼마나 AI를 잘 활용하는가 또한 하나의 역량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또 다른 개발자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를 설정하고 AI를 활용해 해결하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상황에 필요한 코드 작성은 AI가 수행할 수 있으니, AI에게 문제와 프롬프트를 던지고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이 인간이 담당하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AI의 급속도 발전이 이어지는 만큼 개발자 채용 시장의 불안정함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연구를 통해 “생성형 AI는 소프트웨어 채용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고급 개발자는 AI 활용, 시스템 설계, 복잡한 문제 해결 등의 역할로 인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초급 개발자는 단순 코딩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인간 개발자들에게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역량은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다. 한국소프트웨어연구소가 전문가 26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꼽은 것은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었으며 ‘다른 분야와의 소통 능력’ ‘협업 능력’ ‘AI 활용 능력’ 등이었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