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경제의 상징인 상파울루 증권거래소(보베스빠). 브라질 중산층은 변동성이 심해 아직은 주식에 보수적이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투자자문업을 하는 패트릭 곤티에 씨(32). 전도유망한 은행원에서 개인사업에 뛰어든 30대 중반의 정력적인 금융전문인이다. 그가 가장 선호하는 금융상품은 의외로 ‘적금’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발전속도와 이에 걸맞게 변동성이 심한 주식·채권시장을 가진 브라질의 중산층이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의외였다.
특히 2010년 브라질 주식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급증해 브라질 정부가 따로 대책까지 냈던 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곤티에 씨는 이에 대해 “브라질 중산층은 변동성이 심해 개인투자가 어려운 주식에 아직도 보수적”이라며 “연 최소 9% 수익이 보장되는 적금이 아직까진 목돈마련의 제1수단”이라고 말했다.
안전자산 선호와 퇴직연금·대체투자 열풍 같은 전 세계적인 재테크 메가트렌드 속에서도 나라별 인기상품은 의외인 경우가 많았다. 각국 주요은행과 전문 투자자문사들이 내세운 상품은 나라별 문화와 세제, 정책방향, 개인선호도에 크게 좌우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잡히는 신호도 있었다. 바로 그 나라 문화에서 가장 안전하고 노후까지 믿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인기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당장 실질수익률이 마이너스라도 수익률보다는 안정성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브라질·중국·일본… ‘확실하고 손에 잡혀야’
세계황금협회에 따르면 작년 3분기에 중국 본토에서 구매한 골드바가 120억 위안에 달했다.
수차례 경기급변을 경험한 브라질은 확실하고 손에 잡히는 투자상품을 선호했다. 최근 10년 새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브라질은 아직 국가수준의 여유자금 축적이 시작 단계다. 여유자금이 있는 중산층은 연 9~12% 수준의 정기예금(Savings account)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여러 차례 경제위기로 돈은 손실 없이 본전만 유지해도 좋다는 의식이 팽배한 까닭이다. 호세 루이스 트러스트 투자자문 대표는 “브라질 중산층은 아직 소비에 눈을 뜨는 수준”이라며 “저축과 투자는 시기를 다소 기다려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경향은 아시아권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금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세계황금협회 자료에 따르면 작년 3분기에만 중국 본토에서 구매한 골드바가 45.1t에 달한다. 돈으로는 120억 위안(2058억원)에 달한다. 이는 분기별 중국의 금 구매액으로는 사상 최고치다. 중국 부자들 사이에선 골동품과 미술품시장에 눈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앙 쉐칭 SC PB센터 PB는 “센터를 통해 미술품 투자를 소개해달라는 문의가 많다”고 귀띔했다. 거품논란에도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최근 홍콩 아파트값 상승세는 중국 본토 부자들이 앞다퉈 투자한 영향이라는 시각이 많다. 강신국 우리은행 홍콩지점장은 “아파트값이 최고를 찍은 데는 아들 유학 보내면서 아예 집을 사는 본토 부자들의 영향이 컸다”고 평했다.
예금을 선호하는 일본은 그 트렌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은행금리가 연 0.03%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과 보수적인 투자성향 탓이다. 미야모토 히로유키 노무라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여기에 정부예금보증을 받는 우체국예금에 대한 선호현상도 현금자산 편중의 한 구실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은 믿어도 달러화는 못 믿어
영국의 금융중심지 커네리워프. 영국의 투자 트렌드는 ‘투명한 헤지펀드, 핵심지역 부동산’이다.
글로벌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선 의외로 자국 주식시장에 연동해 성과를 내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체이스 은행 관계자는 “미국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목돈 안 들고 수익률이 안정적인 이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으론 달러와 자산에 대한 회피현상도 눈에 띈다. 미국인 자신들조차 달러의 통화가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는 얘기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인 완화 정책으로 달러화 가치가 비관적이라는데 월스트리트 전문가들도 의견을 같이 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선 달러채권 대신 위안화, 엔화 등 강세통화국가의 채권에 간접투자하는 펀드형 상품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축통화의 중심국가인 미국이 자국의 주식시장은 믿어도 자국통화는 못 믿겠다는 차별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 현지 금융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투자 흐름 변화를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현금 선호 경향이다. 만약에 대비한 여윳돈 준비 때문에 ‘현금·채권·주식·부동산’ 등 전통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5~10%에 불과했던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아졌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채권 선호도도 강해졌다. 금리가 낮아 채권 수익률은 그다지 높지 않고 경기 회복이 가시화할 때 채권값 하락이 염려되지만 안전자산이라는 측면을 선호하고 있다. 달러 약세로 미국 국공채 대체물인 엔화 채권도 인기다. 셋째, 부동산이나 환차익 등 투자 대상이 다양해졌다. 여유자금이 충분한 부유층을 중심으로 금융위기 회복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부동산과 환투자가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넷째, 은퇴 시점이 늦춰지면서 연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1940년대 후반~1950년대에 태어난 초반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시기에 접어들자 연금보험 가입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세계은행(WB) 보고서는 “평균수명 연장, 베이비부머 은퇴, 미국 국가재정 불안 등으로 개인이 직접 노후를 챙기는 트렌드가 강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은퇴를 앞둔 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투자자들이 ‘조언에 대한 질적 차별성’을 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기지론이나 신용카드, 펀드 등 단순히 상품을 추천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체적인 투자전략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많은 미국인은 조언에 목말라 있다(hungry for advice)”며 “최근에는 아예 은퇴 이후까지 로드맵을 세워 달라는 고객들도 있다”고 전했다.
우량 자산만 골라 고수익
글로벌 위기로 개인투자자 손실이 유독 컸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후 인기상품도 대조적이다. 한때 전 세계 금융산업의 허브로 존경받았던 영국에선 작년부터 헤지펀드 투자가 다시금 인기몰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글로벌 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음에도 다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간 펀드별 차별화가 확연히 이뤄졌고 개인 투자자들이 그만큼 펀드의 개별경쟁력을 판단할 능력을 갖춘 까닭이다.
HSBC 관계자는 영국 인기상품 트렌드를 ‘투명한 헤지펀드, 핵심지역 부동산’으로 요약했다. 2008년 9월, 7억 달러에 머물던 헤지펀드 설정규모가 2011년 1월 현재 16억 달러로 2년3개월 사이 두 배가 넘게 늘었다. 금융선진국 영국이 선호하는 헤지펀드는 ‘질 높은 우량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롱텀에셋 PE’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6~7년 이상의 투자기간을 갖고 사적인 투자자들이 우량자산만 골라 고수익을 노린다는 얘기다. 고위험군 포트폴리오로 분류되는 헤지펀드가 늘어난 영국에 비해 프랑스의 인기상품은 한층 보수적이다. 쏘씨에테제네랄 PB사업부가 설명하는 프랑스 최고의 인기 금융상품은 다름 아닌 생명보험이다. 이미 연금제도가 완벽한 유럽이지만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연금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자라난 결과다. 특히 생명보험은 세제혜택이 있는 데다 글로벌 위기 이후 보험료 부담이 낮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수익률도 높아진 상황이다. 프랑스 재테크의 핵심은 이미 ‘노후대비’로 이동한 셈이다.
이밖에 호주는 국내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호주 내 은행들이 가장 유망한 아이템으로 꼽고 있다. 연금이 받치는 수요가 탄탄한데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상승세에 있는 것도 분명한 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