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복권 이후 첫 공식 경영 행보로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을 찾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특별한 장소다. 이병철 회장이 국내외의 반대와 비아냥을 무릅쓰고 독자적 기술로 세계 시장을 제패하려고 반도체 사업을 태동시킨 곳이자 1993년부터 메모리 세계 1위 신화를 일군 곳이기 때문. 실제로 이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천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기로에 서있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주요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하락세다. 미래 경쟁력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요 경쟁국은 ‘반도체 자국주의’ 기치 아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요동치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선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황을 이슈별로 짚어본다.
8월 19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왼쪽에서 둘째)의 모습.
▶Issue 1. ‘칩4’로 대변되는 반도체 전쟁
中 보복 우려되지만 참여 안 하면 경쟁서 밀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 산업에 인센티브 520억달러를 지급하고 과학기술 분야에 20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총 2800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신규 반도체 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텍사스)와 미국 인텔(오하이오), 대만 TSMC(애리조나)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경우 앞으로 10년간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시설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가드레일(안전장치)을 설치했다. 소위 반도체 산업에서의 중국 배제 전략이다.
세계 1, 2위 메모리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본토 공장들도 향후 중국 내 첨단 설비 도입과 증설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 SK하이닉스는 절반 정도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 물론 중국에 애플, HP, 델 등 미국 완성품 업체들의 제조공정이 밀집한 상황에서 중국 내 반도체 투자 금지의 전면적인 시행이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온다.
이처럼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 정부의 ‘반도체 셈법’도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출범을 앞둔 ‘칩4(Chip4·한·미·일·대만 반도체 협의체)’에서 치열한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현재로선 한국의 ‘칩4’ 가입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장비와 소재, 기술의 상당 부분은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해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칩4 동맹에 가입해 이 같은 움직임에 호응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최대한 결정을 유보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미중 갈등이 수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무조건 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대중(對中) 교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에 중국은 최대 수출 시장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수출액 1280억달러 가운데 중국으로의 수출은 502억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출되는 물량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만약 한국의 칩4 참여에 반발해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에 태클을 걸 경우 한국으로서는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 흔들리는 셈이다. 칩4가 가시화될 경우 현지 공장 가동에 중국 정부의 다양한 규제가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반도체가 아닌 다른 분야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희토류·리튬 같은 소재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양향자 의원은 “미국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갈등 이슈를 최대한 자제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며 “중국을 향해서는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반도체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미국의 원천 기술과 장비를 공급받기 위한 목적임을 지속해서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Issue 2.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실패했다고?
AI·차량용 반도체 두각… 메모리도 기술 추격
반도체 산업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노골적인 패권 싸움을 시작한 가운데 중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200단 이상 낸드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마이크론과 한국 SK하이닉스에 이어 셀(Cell)을 200단 이상 적층하는 데 성공한 세 번째 기업에 등극한 셈이다. YMTC가 공식적으로 제품 개발과 양산 소식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성과라는 견해도 나온다. 최근 미국 정부는 낸드플래시 관련 미국산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중국은 빠른 속도로 반도체 공장을 늘리고 있다. 최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중국은 2021~2024년 반도체 제조공장(팹) 31곳을 건설할 예정이다. 같은 기간 대만(19곳)과 미국(12곳)의 공장 신설 계획을 크게 앞선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었던 칭화유니가 사실상 국영기업으로 되살아난 점 또한 주목받는다. 칭화유니는 198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졸업한 칭화대가 설립한 반도체 설계·제조 회사. 앞서 낸드플래시 양산 기업인 창장메모리(YMTC)와 세계 모바일 칩셋 시장 4위인 반도체 설계 회사(팹리스) 유니SOC(쯔광잔루이) 등 핵심 반도체 기업 20여 곳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미국의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2016년 YMTC 인수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과도한 투자로 부채가 쌓이면서 지난해 7월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 YMTC가 최근 고객사에게 196단 낸드플래시 샘플을 제공하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칭화유니의 자회사들은 파산 절차를 밟는 동안에도 급성장했다. 유니SOC는 작년 2분기부터 글로벌 모바일 칩셋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주춤한 화웨이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의 물량을 흡수하면서 오히려 순위가 올라간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전략은 물량 공세로 중저가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높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최첨단이 아닌 14나노미터(㎚·100만 분의 1㎜) 이상 반도체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실제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노리는 자동차 전장(전자장치)을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전력 공급 장치 반도체 등은 현재 중국의 장비·기술로 양산 가능한 품목들이다.
정부 정책의 뒷받침 속에 중국 기업들의 중저가 반도체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 SMIC는 상하이에 89억달러(약 11조6000억원)를 투자해 28나노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SMIC는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으로부터 145억달러(약 18조9000억원) 규모의 장비도 구매했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7년 13%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26%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창업 움직임도 활발하다. 중국에선 2020년 한 해에만 1만5000여 개의 반도체 기업이 설립됐다. SIA는 “신생 기업 상당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인공지능(AI) 칩 등 고급 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라며 “이미 다수의 회사가 최첨단 칩을 개발했거나 ‘테이프아웃(Tape-Out·팹리스에서 제품 설계를 마치고 파운드리 회사로 설계도가 전달되는 것)’ 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 제조와 AI(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등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기술로도 양질의 차량용 반도체 개발이 가능하다. SMIC, 화훙그룹의 반도체 매출이 급증한 것도 중국이 전기차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중국은 한국의 10배에 이르는 AI 투자를 바탕으로 AI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국을 앞서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AI 반도체 설계 수준이 높은 양대 국가로 평가받는다. 현재 중국엔 7만 개가 넘는 반도체 기업들이 있고, 석·박사급 위주로 채용한 팹리스 기업만 해도 2000개가 넘는다.
중국이 반도체 제조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쏟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웨이퍼 생산 기술력은 높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D램 분야에선 기술력을 인정받는 중국 기업이 거의 없다. 파운드리에서도 28나노급의 범용 공정에서만 SMIC와 화훙그룹 같은 중국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7나노 이하의 미세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이 중저가 반도체 시장을 장악할 경우 향후 판도는 예측하기 힘들다. 낮은 수준의 제품에서 공정·제조 역량을 쌓은 이후 첨단 제품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 확대는, 한국의 대중 수출 4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전직 임원인 A씨는 “과거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중국이 값싼 제품으로 점유율을 높인 이후 첨단 기술에서도 격차를 좁히는 건 시간문제”라며 “반도체 격변기에 한국이 앞서 나가지 못하면 한국에 역전당한 일본의 사례가 재현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결국 한국은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개발로 초격차를 벌려나가야 한다”고 했다.
▶Issue 3. K반도체 경쟁력 지킬 수 있나
메모리 초격차 흔들… 非메모리는 먼 길
“현재 구도를 보면 한국 기업이 메모리 분야에서 앞서가고 비메모리 분야에서 추격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은 물론 미국·일본·유럽의 반도체 기업과 경쟁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SK하이닉스 관계자)
앞에서 보듯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도 ‘반도체 굴기’를 꺾을 생각이 없다. 일본의 경우도 올 4월 반도체 등 필수 공급망에 약 5조원의 재정 지원을 하는 경제안보법이 중의원을 통과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 2월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4배 확대 등을 담은 ‘유럽 반도체법’을 발의했다. TSMC와 미디어텍을 앞세운 대만은 반도체 리쇼어링(본국 회귀)과 해외 진출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역시 중장기적으로 타국에 대한 반도체 의존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SIA와 시장 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54%로 압도적 1위고, 한국은 22%로 2위다.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21%)도 대만(22%)에 이어 2위다. 한국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근 실적도 더없이 좋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여전히 미약하다. 특히 반도체 공정의 첫 단계인 팹리스(설계) 분야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고작 1%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소위 ‘K반도체’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냉랭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잇따른 호실적에도 주가흐름은 좋지 않다. K반도체가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미래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시장의 의구심이 커졌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금이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상 가장 절박한 순간이자 갈림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한국이 절대강자로 평가받는 메모리 분야에서도 격차가 좁혀지는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낸드플래시에선 후발 주자의 매서운 추격으로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시장 5위 사업자인 마이크론은 2020년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를 내놓은 이후 2년도 되지 않아 지난달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을 밝혔다. 지난 20년간 낸드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176단, 230단 이상 등 ‘최초 양산’ 타이틀을 연이어 마이크론에 내줬다. SK하이닉스도 최근 세계 최고층인 238단 낸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적층 기술이 낸드플래시의 기술력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다. 낸드 적층 기술은 가장 위아래 셀을 하나의 구멍으로 연결한 싱글 스택과 두 차례 구멍을 뚫고 이를 이어 붙인 더블 스택으로 나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싱글 스택 기술로 128단을 한 번에 쌓을 수 있는데 더블 스택 기술을 적용할 경우 256단까지 적층이 가능한 것”이라며 “단수는 소비자 수요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내부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쌓을 수 있냐’가 아니라 ‘현 시점에서 시장에 최적화된 단수가 무엇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경쟁사들이 적층 경쟁에서 앞서가자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 임원 출신 인사는 “삼성전자가 이익률 때문에 싱글 스택에 집착하다 단수 경쟁에서 밀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체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도 흔들리는 징후가 분명히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며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한 수 아래로 간주했던 경쟁사들이 기술개발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잇달아 차지하는 등 최근 기류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메모리 초격차 지위가 흔들리고 있고,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팹리스-파운드리-후공정으로 이어지는 전(全) 주기에서 선도국가와의 기술 격차가 여전하다. 삼성전자만 해도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이 무색하게 파운드리 분야 선두인 TSMC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대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파운드리 매출은 지난해 4분기 대비 3.9% 감소했으며 시장 점유율도 18.3%에서 16.3%로 하락했다. 반면 TSMC는 같은 기간 매출액을 11.3% 늘려 점유율이 52.1%에서 53.6%로 확대했다. 삼성전자가 ‘3나노 세계 최초 양산’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반격에 나서는가 했지만 TSMC는 첫 고객사로 애플 유치에 성공, 9월에 3나노 칩 양산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30일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 초도 양산을 시작했지만, 파운드리 수율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게 배경으로 풀이된다. 파운드리의 경우 메모리와 달리 범용성이 낮기 때문에 원하는 시기에 주문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삼성이 확보한 3나노 GAA 고객은 중국 가상화폐 관련 주문형 반도체(ASIC) 업체로 물량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와 2위 삼성전자 간 격차가 워낙 큰 데다, TSMC 역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격차를 좁히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다. 현재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번 돈을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고 있지만 수율 부진, 납기 지연 등 여러 문제에 맞닥뜨린 상태다.
삼성전자 안팎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가 초격자 확대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초 ‘3년 안에 의미 있는 M&A(인수합병) 성과를 내겠다’라고 공언한 만큼 업계는 삼성전자가 올해 안에 비메모리 분야 업체를 인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은 TSMC와 대만이 만들어온 비즈니스 모델로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쫓아가기는 힘든 게 현실”이라며 “TSMC를 제외하면 대규모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 정도라 중장기적으로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지만, 지금이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상 가장 절박한 순간이자 골든타임”이라며 “새 정부에선 말뿐이 아닌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총 120조원이 투자되는 SK하이닉스의 경기 용인클러스터는 범정부적인 지원에도 지자체 간 이견 및 주민민원과 보상 문제로 인허가가 지연됐다. 결국 2017년 12월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4년 6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착공에 들어갔다. 인력문제 또한 반도체 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15만 명 이상의 반도체 전문인력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원)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 축소로 반도체 전문인력 공급은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팹리스(설계) 분야의 경우 설계 인력 부족에다 파운드리 확보 어려움 등으로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후공정(패키징) 역시 TSMC의 생태계를 바탕으로 대만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소부장 생태계도 경쟁력이 부족하고, 핵심 품목에 대한 특정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리스크가 상존하는 분야다. 반도체 생산에는 300종의 소재 및 50종 이상의 장비, 최대 1400단계의 제조공정이 필요한데 현재 소재와 장비의 국산화율은 각각 50%와 20%로 추정된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몇 년 걸릴 일을 미국에선 3개월 안에 해결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고, 주민 반대로 공장 건설이 지연되면 정책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