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관광공사가 내놓은 제주를 여행하는 새로운 방식인 카름 스테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주의 작은 마을을 뜻하는 지역 방언 카름과 ‘머물다’라는 뜻의 스테이(STAY)가 결합된 이 단어는 제주의 마을 여행을 뜻한다. 이는 제주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제주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유명 관광지 관람, 맛집 탐방 등 단순히 보고 먹고 하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이 제주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겨있다. 그래서 카름 스테이는 여행지의 지역과 체화돼 낯섦 속에서 익숙함, 그리고 ‘힐링’을 지향한다.
아직 시행 초기여서 카름 스테이에 참여하는 마을들은 10곳밖에 되지 않지만 각각이 특색을 자랑한다. 제주를 다르게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주목해볼 만하다. 카름 스테이는 쉼, 머묾, 여유, 다정함이라는 4가지를 핵심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 중 일부를 소개한다.
감귤 타르트 만들기 체험
▶하효(서귀포시 하효동)
한라산 남쪽 앞자락에 있는 하효 마을은 제주의 특산품인 ‘귤’이 테마다. 감귤 주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귤을 직접 따는 것부터, 귤을 이용한 상품 생산까지 다양한 귤 체험 현장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제공하는 제주의 전통과자 과즐 만들기가 이색적이다. 하효살롱협동조합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곳은 마을 부녀회원들이 모여 설립한 곳이다. 마을에서 머물며 현지에 녹아들기 좋은 공간이다. 하효살롱의 감귤 과즐 전통방식인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여기서는 감귤뿐만 아니라 한라봉 향초만들기, 감귤 오메기 떡 체험, 풋귤 청 만들기 등 제주의 특산품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농가식당도 운영하는데, 역시 제주에서 나는 것들로 한상 차려낸다.
그래도 여행인데 유명 관광지 한 곳 정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주의 대표 관광지 쇠소깍이 인근에 있고, 휴애리 자연생활공원도 가까이 있다. 상효원 수목원도 거리 멀지 않다.
▶한남(남원읍 한남리)
한남 마을은 ‘마음에 위안과 휴식을 처방해주는 치유 저장소’를 내세운다. 제주의 자연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곳들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여기에 더해 진정한 힐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대표 공간은 머체왓 숲길이다. ‘머체’는 돌이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 ‘왓’은 제주어로 ‘밭’을 의미한다. 돌과 나무가 한껏 우거진 공간이란 얘기다.
머체왓 숲은 태초의 원시림을 간직한 곳이다. 언뜻 봐서는 사람 다닐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숲에 들어서면 2개의 코스가 기다린다. 소롱콧길과 머체왓숲길인데, 두 코스 다 2시간 30분 거리다. 소롱콧길은 한남리 서중천과 소하천 가운데 형성된 지역으로 그 지형이 마치 작은 용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숲을 걷다보면 열대우림에서나 나무들을 만나는가 하면,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도 기다리고 있다.
머체왓숲길 건강체험장에서는 숲에서 나는 건강약재들을 직접 건조해 만든 차와 편백 족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숲에서는 피크닉도 할 수 있다. 원시공간에서 느린 걸음으로 혼자만의 사색의 공간에 빠져 있다가 마주한 편백나무향에 취해보기도 하고, 족욕으로 피로를 달래고 있노라면 일상에서 고달팠던 일들이 어느샌가 추억이 될 듯싶다.
유기농 식단
▶수산(애월읍 수산리)
수산 마을의 테마도 한남과 비슷한 ‘힐링’이다. 하지만 수산에서의 힐링은 몸 안에서의 자연 치유를 통한 심신 안정이란 콘셉트이다.
이곳 물뫼힐링팜이라는 농장에서 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물뫼힐링팜이란 이름이 낯설 수도 있지만, 뜻을 알면 너무도 익숙하다. 수산의 한자어인 물 수(水), 뫼 산(山)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물뫼힐링팜이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웰니스 관광이다. 짧게는 바비큐 파티와 공연을 즐기는 ‘3시간 팜파티’, 해발 700m에서 900m까지 오르는 ‘한라산 힐링 트레킹’, 길게는 ‘제주 밭담길 트레킹과 명상, 요가로 치유하는 2박 3일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 중 제공되는 식사의 경우, 친환경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천연재료만 사용한다. 유기농 식단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생각하는 정원
▶저지(한경면 저지리)
한라산 서북쪽 중산간 해발 120m 고지에 위치한 저지리에는 ‘예술인 마을’이 조성돼 있다. 그래서 제주의 예술마을로 불린다. 마을 전체가 전시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에는 48명의 예술가가 실제 입주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도립현대미술관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을 중심에 일명 새오름이라 하는 저지악이 있어 풍광도 좋다. 동양 최대의 분재 정원으로 알려진 생각하는 공원, 야생화의 전시장으로 사랑받고 있는 방림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천연 난대림 지역인 곶자왈 등 이색 공간도 많다.
곶자왈도 머체왓 못지않은 제주의 천연 원시림을 자랑한다. 제주 도너리 오름에서 분출하여 흘러내려온 용암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독특하고도 신비한 지형을 인정받아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많은데, 제주산 양치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삼광조, 팔색조 등 멸종 위기에 처한 새와 동물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북방한계식물과 한대남방한계식물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마을은 2012년 8월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4호로 지정됐다.
저지리에는 카약파크도 조성돼 있어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천혜의 자연숲에 조성된 수로를 따라 돌면서 제주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동백꽃 들고 있는 동백마을 주민들
▶신흥(남원읍 신흥리)
‘동백나무’가 특징인 마을이다. 300~400년 된 동백나무 군락이 마을 한가운데 있다. 군락은 좁은 마을길과 도로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신흥리가 동백마을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때부터 동백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2007년은 마을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지 300년이 되던 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다. 마을 최초의 집터가 동백나무 군락지 안에 있었다고 한다. 신흥리에 머무른다면 동백나무가 마을의 관광 상품인 동시에 주요 경제 활동의 축임을 엿볼 수 있다.
마을은 2009년부터 동백나무를 이용해 방앗간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규모를 40배 정도 키워냈다. 방앗간에서는 재래식 방식을 이용해 동백기름을 생산해 판매한다. 기름을 짜기 위한 열매는 주민들이 한 알씩 손수 주워 모은다. 동백마을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운 구매협약 1호 마을로 동백열매, 꽃잎 등을 회사 측에 공급하고 있다. 마을은 2011년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됐고, 2013년부터 천연 동백비누 만들기 등의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동백나무 군락지는 1973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됐다.
해녀체험 현장
▶세화(구좌읍 세화리)
제주 바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해녀’일 듯싶다. 거친 바다에서 물질을 통해 삶을 이어온 해녀들은 제주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해녀는 2016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화리는 이 해녀의 삶을 엿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격이다. 해녀박물관이 있고, 직접 물질 체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근 하도리도 세하리 못지않은 해녀 체험의 장이다. 제주 어촌 마을 중 해녀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해녀박물관을 기점으로 숨비소리길이 조성돼 있다. 숨비소리길은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오갔던 길로, 해녀박물관에서 출발해 하도리 해안가로 이어지는 코스다.
제주 동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다랑쉬오름도 이곳의 명물이다. 우리나라에서 패러글라이딩의 최적지로도 유명하다. 세화에서 성산일출봉까지 바로 갈 수 있는 해안도로의 경치도 절경이어서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승마체험, 김만일 기념관
▶의귀(남원읍 의귀리)
해녀와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또 다른 것이 바로 말이다. 제주에서도 의귀리는 말의 고향이다. 여기에는 이곳 출신 조선시대 ‘김만일’이란 인물과 관련이 있다. 당시 한라산 일대에서 말을 기르던 대목장을 소유했던 김만일은 임진왜란 당시 말이 부족하다는 조정의 요청을 받고 군마를 진상했는데, 무려 100여 필이나 됐다. 그 시대 말의 가치를 감안하면 어마한 액수의 지원이었다. 김만일의 이후에도 전란이 있을 때마다 군마를 조정에 바쳤고, 그 수를 합하니 수천 필이나 됐다고 한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김만일은 1628년 헌마공신에 임명됐다. 그의 사후에도 후손들은 제주산마감목관이란 직을 맡아 조정을 위해 말을 공급했다고 한다. 제주에 헌마공신 김만일 기념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념관의 위치는 남원읍 한남리에 있지만 의귀리마을회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말의 고향답게 의귀리에서 말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귀리 마을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옷귀마테마타운을 이용하면 된다. 30분 정도 교육만 받으면 직접 말을 끌고 야외로 나갈 수 있다. 편백숲과 들판에서 경험하는 승마는 승마장에서의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의귀리 편백숲은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의 촬영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루 30명만 승마 체험할 수 있으니, 예약은 필수다.
[문수인 기자 사진 제주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