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보는 상권] (21) 미세먼지가 상권 지도까지 바꾼다… 마트보다 백화점·쇼핑몰 선호도 UP
박지훈 기자
입력 : 2019.05.28 14:43:41
수정 : 2019.05.28 14:44:05
짚신 장수 아들과 나막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는 비 오는 날에는 짚신 파는 아들을, 맑은 날에는 나막신 파는 아들을 걱정했다고 한다. 요즘은 비 소식보다 미세먼지 농도를 매일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매일 아침 일어나 포털 사이트나 미세먼지 앱을 통해 수치를 확인한 뒤 행선지를 정하거나 심지어 외출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생활 속 ‘미세먼지’의 영향력은 커졌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쇼핑과 나들이를 갈 때 자연스레 실외보다 실내를 선호하게 된다. 올해 유난히 지독한 미세먼지가 대한민국을 뒤덮으며 이러한 소비트렌드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와 실내상업시설의 유입정도는 상권분석에 있어서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나이스지니데이타의 상권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전국 대형상업시설이 포함된 지역의 매출변화를 분석했다. 대형상업시설로 구분할 수 있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세이브존’ 등의 대형마트와 ‘신세계·현대·롯데·AK·NC’ 백화점, ‘신세계·현대·롯데·마리오·W몰·2001아울렛’ 등의 아웃렛, ‘스타필드 고양·하남·코엑스 및 고속터미널·잠실 롯데몰·IFC’ 등의 복합몰이 속한 상권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은 ‘대형마트’와 ‘백화점-복합몰’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했다.
맛집·영화관·키즈카페 등
킬러콘텐츠 갖춘 쇼핑몰 ‘쑥’
미세먼지가 사실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봄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를 비롯해 비정기적인 오존주의보 등 꾸준히 대기오염과 관련된 문제는 있었다. 다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맑은 공기’에 대한 요구가 늘어남은 물론 기술의 발달로 초미세먼지까지 측정하여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미세먼지’가 일상에 자리 잡은 영향이 크다.
▶올해 미세먼지 얼마나 심했을까?
2019년 1분기에는 예년에 비해 특히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많았다. 2015년부터 월별 평균치를 살펴보면, 2015년 1~3월이 각각 25-30-30, 2016년은 27-23-32, 2017년 32-28-39, 2018년 32-30-34 정도를 나타낸 것에 비해 2019년 1분기에는 38-35-45를 기록하면서 전년에 비해 23% 정도 수치가 높았다. 월별 평균적인 수치도 전년에 비해 높아졌지만, 더 큰 문제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2019년 1월 11~15일(최소 57~최대 129)과 2월 28일~3월 6일(최소 60~최대 135) 두 기간 동안 발생한 미세먼지는 둔감했던 사람들마저 경각심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실제로 최근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월별 평균적인 수치로 보면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전에 비해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의 편차가 커졌다. 안 좋은 날은 더 심각하게 수치가 높아진 것이다. 야외활동을 자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미세먼지로 인해 소비자들의 소비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롯데백화점 강남점에 문을 연 반려동물 전문 컨설팅 스토어 ‘집사’
▶대형몰 반려동물·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들이 공간으로
가장 눈에 띄는 소비방식의 변화는 실내시설 이용률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야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실내시설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복합기능을 갖춘 ‘대형몰’의 이용률이 높아졌다.
대형몰이 등장한 배경에는 쇼핑시설과 맛집유치, 문화시설(영화관·공연장·수족관·실내 동물원 등), 오락시설(VR방·키즈카페), 미용시설(찜질방·미용실·피부관리숍) 등을 한 번에 배치하여 그 안에서 모든 소비활동을 일으키도록 복합화한 것이 핵심이었다. 여기에 미세먼지 영향으로 인해 더 큰 집객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또 반드시 하나의 시설이 아니더라도 근접한 지역에 여러 개 백화점이 모여 있거나 백화점+패션·의류숍+놀이공원+대형마트+호텔+먹거리촌 등이 결합한 형태의 초대형 쇼핑지역도 미세먼지 발생으로 인한 수혜지역이 되었다.
주말 나들이객 유치엔
키즈카페·애완동물숍 효자
먼저 대형마트 주변의 분석결과를 살펴보자. 전체 357개 표본지역을 대상으로 추정매출액 규모에 따라 연 매출 500억원 이하부터 3000억원 이상까지 나누어 살펴본 결과 전체적으로 대형마트의 매출규모는 3% 정도 낮아졌으나, 시설규모가 큰 마트들은 매출이 증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형마트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미세먼지의 영향을 받아 매출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려우나, 마트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매출이 감소하고, 규모가 클수록 매출이 증가했다. 반면 대형마트보다 더 많은 기능을 가진 백화점이나 복합몰의 경우에는 2018년 1분기 대비 2019년 1분기에 전체적으로 6.6% 매출이 증가했다. 마트와 마찬가지로 소형보다는 대형화될수록 매출 증가율이 높았는데, 이처럼 매출이 증가한 데는 미세먼지의 영향이 한몫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여의도 IFC몰 ‘블루 어드벤처’
▶대형화 못지않게 중요한 앵커시설 다양화!
전체적인 상권의 트렌드가 대형화된 것인지, 미세먼지의 영향 때문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마트에 비해 백화점이나 복합몰의 매출 증가율이 높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더 다양한 기능을 소화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고객층을 유입시키기 때문이다. 한번 유입된 고객은 시설 내에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체류시간이 길어졌으며, 그만큼 지출도 늘어났다.
여의도에 위치한 IFC몰의 경우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영화관을 앵커시설(=키 테넌트, 매장규모나 매출 등의 측면에서 시설의 핵심점포를 뜻함)로 하면서 보완적인 식음시설과 쇼핑시설을 배치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애완동물숍이나 키즈카페 등의 앵커시설을 추가하고, 식음시설도 주기적으로 트렌디한 점포들로 바꿔가면서 시설 전체가 활성화된 케이스다. 최근 주말에 시설을 찾아보면 애완동물을 동반하거나, 아이들과 동반한 가족단위 나들이 장소가 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시설의 특성(공급)과 고객의 특성(수요)을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수요맞춤형 MD를 구성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또 스타필드 하남점보다 1년 늦게 문을 연 스타필드 고양점은 하남점에 비해 ‘토이킹덤 플레이’ ‘펀시티’ ‘메가박스 키즈관’ 등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집중 배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찜질방과 수영장을 결합한 ‘아쿠아 필드’를 배치하여 가족 고객 타깃의 맞춤형 앵커시설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스타필드 하남점에서 개최된 ‘2019 마블 마니아 인 스타필드’ 캠페인
잠실 롯데타워 ‘놀이동산+쇼핑+숙박’
신세계·현대百은 맛집으로 승부
잠실 롯데타워는 예전부터 운영되던 롯데월드(놀이동산)와 샤롯데시어터(문화시설) 등 놀이기능과 문화기능을 이미 갖춘 상태에서 쇼핑시설을 강화하고, 수족관·전망대·호텔 등의 기능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유인한 것이 특징이다. 일반 상권에서는 맛볼 수 없던 특색 있는 음식점을 배치하면서 복합 쇼핑공간으로 발돋움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중기전용매장 아임쇼핑
이외에도 파미에스테이션+신세계백화점 강남, 현대백화점 판교와 같은 최근 가장 북적이는 대형상업시설들을 살펴보면 기존에는 ‘쇼핑시설’로만 각인되던 백화점에 ‘맛집’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오히려 음식점이 고객을 유인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머무를 수 있는 놀이, 관람, 체험, 스포츠, 미용 강화 업종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특징이 나타난다.
현대백화점 중동점 크리에이티브 존
과거에는 한 개의 대형상업시설이 가장 큰 앵커시설로 인해 성격이 규정되고 나서 다른 업종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형보다 더 커진 초대형상업시설로 군집하면서 여러 개의 앵커시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영화관이 있거나 가전매장, 완구매장, 대형 서점, 마트, 키즈카페, 수족관, 수영장, 찜질방, 헬스장 같은 대표적인 시설이 전체 시설의 특징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이 모든 시설들을 한 공간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의 앵커시설만 잘 결정하면 시설 전체가 활성화되던 예전보다 다양한 수요층에 대한 예측과 계획수립 단계가 중요해졌고, 앵커시설을 결정하는 것보다 한 단계 상위 개념으로 전체 시설의 ‘콘셉트(concept)’를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시설에 따라 달라지는 유입거리
이번에는 미세먼지 영향으로 인해 대형상업시설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해 보자. 먼지가 많은 날엔 멀리 나가기 어려워서 이동거리가 줄었을까, 아니면 실내시설을 찾아가야 하니 좀 더 먼 거리까지 나가게 될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일반 로드숍의 유입거리는 줄어들고, 대형시설의 유입거리는 늘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 분석결과에서도 전년에 비해 평균 2.2% 정도 대형상업시설을 찾는 이동거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설규모가 클수록 10㎞ 외 지역에서 유입되는 비중이 2018년 대비 2019년 증가하였으며, 반대로 시설규모가 작을수록 가까운 지역에서 유입되는 비중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객의 이동거리 조사결과는 대형상업시설의 마케팅 대상지역 선정이나, 미세먼지에 따른 고객 수요예측 분석, 역내·역외 소비분석 등 다양한 고객분석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