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0여 년의 서양건축사는 시대순으로 고대서아시아 건축, 이집트 건축, 그리스 건축, 로마 건축, 초기 기독교 건축, 로마네스크 건축, 고딕 건축, 바로크 건축, 로코코 건축, 신고전주의 건축, 근대 건축, 현대 건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 근대 건축은 현대 건축으로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활동들이 있었던 시기다.
근대 건축을 주도한 선구자들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공업 발달에 따른 공업화 재료인 철, 콘크리트, 유리를 사용하여 진보적인 건축을 시도했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의 영향과 산업조직의 대규모화는 도심지에 고층건물의 수요를 촉진시켰고, 도시 계획은 비능률적인 도시 기능의 문제를 지구계획과 교통망 재편성 등으로 해결하면서 발전되었다.
■ 철강재료와 철근콘크리트 등장
근대 건축은 과학 발전의 영향으로 새로운 재료와 공법을 사용해서 건축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건축적 표현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재료는 구조용 철강 재료와 철근콘크리트였다.
철재는 과거에도 건축에 사용되었으나, 강철로 된 보와 기둥은 근대공업의 산물로써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강철구조로 처음 지어진 건축물은 에펠(Eiffel)에 의하여 설계된 파리의 박람회용 대회장이 있으며, 이때 건축된 에펠탑(1889)은 그 시대의 기념적인 작품이다.
철근콘크리트는 19세기 말에 발명된 재료로 강철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장스팬보(long span beam)를 만들어 대규모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새로 개발된 대형 판유리 제조법의 발달은 벽 전체를 유리창으로 하는 계획을 가능하게 하였고, 건물 내부에 자연광의 도입과 통풍을 최대화할 수 있게 하여 거주 환경이 개선됐다.
강철·콘크리트·유리 외에도 경금속재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재료들이 개발되면서 건축 활동에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해졌고, 신기술과 새로운 전기·기계설비의 발전은 건축의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특히 마천루 건축을 가능하게 한 엘리베이터의 출현(1859)과 전기장비, 조명장치, 공기조화설비 등의 발전은 근대 건축 발전에 기여했다.
근대 건축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재료의 공장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건축에 사용되는 모든 공장 제품들은 건축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협업을 통해 개발될 수 있었다. 근대 건축은 사회적 요구와 사상 및 가치관에 부응하는 동시에 건물 사용자를 위한 정서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으며, 근대 건축 이전에 사용되던 목재·석재·벽돌 등의 재료를 적절히 활용하여, 보다 나아진 질감과 형태를 가진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에펠탑
■ 근대 건축의 성장과 아르 누보 운동
근대 건축의 초기 사상은 과학의 진보에 따른 그 시대의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하며 19세기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예술 분야와 접목되어 여러 가지의 실험과 사상을 통해 다양한 운동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건축 사상이 구체적으로 형성된 것은 20세기 초 무렵이다.
1880년경 벨기에에서 반 드 벨데(Van de Velde)의 주도하에 구조와 형태가 건축의 참된 기반이라는 사상을 가진 새로운 경향이 조형예술가 사이에서 시작됐다. 이것이 아르 누보(Art Nouveau) 운동이다. 이 운동이 독일에 전파됐을 때는 유겐트 스틸(Jugent Still)이라 불렸다. 그들은 자연물의 유기적 형태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어 그것을 양식화하여 적용하였다. 덩굴식물, 백합, 이국적인 꽃, 물결과 노니는 백조, 머릿결 휘날리는 여인 등 식물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유려하고 우아한 선과, 파상곡선·당초무늬·화염무늬 같은 흐르는 듯한 생동감 있는 선형 표현으로 힘과 생명력이 충만한 선에 장식적 가치를 두었다. 또한 좌우대칭이나 직선적 구성을 피하면서 형태의 정교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유기적이고 움직임이 있는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였으며, 과거의 양식과 차별화되는 완전히 새로운 생동적인 감각을 부여하려고 했다. 아르 누보 운동의 확산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건축가의 작품은 매킨토시의 ‘글래스고 미술학교(1889)’가 있으며, 아르 누보의 영향을 받은 유명 작품으로는 안토니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1903~1926)’이 있다.
1897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조셉 호프만이 시작한 분리파 운동은 과거의 양식에서 분리와 해방을 지향하는 건축 운동이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되어 각국의 건축가들이 서로의 실험 결과를 교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호프만이 설계한 브뤼셀의 스토클레 저택(1911)은 시세션파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인슈타인 타워
■ 독일 공예가 연맹과 프랑스의 근대 건축
1907년에 창설된 독일 공예가 연맹은 근대공업, 즉 기계생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 운동은 새로운 건축 사상이 현실에 실제로 적용되는 기회를 가져왔다. 페터 베렌스가 1909년에 건축한 베를린의 터빈 공장은 근대 건축 최초의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근대공업의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인 해결을 이룬 최초의 건축물로써 철과 유리 등의 근대적 재료를 합리적으로 활용하여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잘 나타낸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프랑스에서는 근대 건축의 새로운 재료인 철근콘크리트가 발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프랑스의 건축가들은 철근콘크리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여 발전시킴으로써 그 활용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오귀스트 페레(August Perret)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훌륭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많이 설계하였으며, 그중 특히 유명한 것은 파리 ‘프랑클린가의 아파트(1903)’와 파리 근교의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1923)’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철근콘크리트를 구조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매우 합리적으로 사용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 1차 세계대전과 근대 건축 운동
미국에서의 근대 건축 운동은 고층 건축과 시카고 지역의 건축 활동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당시의 고층 건물은 구조의 규칙적이고 선율적인 특성을 외부로 솔직하게 표현하였으며, 이 중 주목할 만한 대표적인 건축은 설리반(L.H.Sullivan)이 설계한 카슨 피레 스코트(Carson Pirie Scott) 백화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중에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독일의 표현파 운동이다. 자유스런 곡선, 부등변의 사각형과 삼각형 및 반원형 등 지금까지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던 형태가 주로 사용됨으로써 안정적이고 정적인 것보다는 불안정하고 동적인 느낌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포츠담에 있는 에릭 멘델존의 ‘아인슈타인 타워(1921)’가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잡지 <드 스틸>(1917년 발간)을 중심으로 한 구성파의 그룹을 드 스틸파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화가 도스부르크, 몬드리안, 건축가 토마스 리트벨트가 대표적이다.이 그룹에 속한 건축가들은 몬드리안이 화면을 검은 선으로 분할하고 몇 가지 색으로 구성한 것과 같이 과거의 예술양식과 장식을 없애 버린 순수하고 객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토마스 리트벨트가 1924년 위트레흐트에 만든 슈뢰더 주택은 그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1919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이전에 아르 누보의 반 데 벨데가 바이마르에 만든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합병하여 바우하우스를 설립하고, 새로운 교육법을 발전시켰다. 초빙된 교수들은 예술의 추상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바우하우스의 교육에 반영하였다.
바우하우스 운동은 실험적이고 진보적이었으며, 근대공업의 산물인 신재료의 과학적인 연구와 합리적인 사용, 생활 기능의 적극적인 파악 등을 근본 목표로 삼아 건축과 공예 교육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바우하우스의 활동도 정치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1924년에 폐쇄되었다가, 1925년 데사우에 이전한 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바우하우스 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는 발터 그로피우스다, 그는 넓은 유리 벽면인 커튼월을 고안·적용하여 건물의 투명성을 표현하였으며, 바우하우스 데사우는 이러한 건물의 투명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1918년 프랑스의 순수파는 입체파의 수정에 의해서 나타났으며 화가 오장팡(Ozenfant)과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중심이 되어 발전되었다. 르 꼬르뷔지에는 1914년에 철근콘크리트 기둥과 슬래브로 된 구조를 창안하여 벽체가 하중을 지탱하는 것에서 완전히 해방되도록 하는 도미노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에 의해 그의 작품의 특징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이와 같은 자유로운 독창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호경기를 누리게 됨으로써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였다. 뉴욕에는 지가 폭등과 상업자본의 융성으로 마천루 건축물이 많이 건설되었으며, 높이 314m의 ‘크라이슬러 빌딩(1930)’과 당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던 381m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은 이러한 고층화 건축의 절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건물이다.
글래스고 미술학교
■ 국제주의 건축활동과 C.I.A.M
국제주의 건축 활동의 구체적인 모습은 1928년 스위스에서 열린 근대 건축 국제회의(C.I.A.M.)의 결성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각국의 건축가들은 매우 자유롭고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는 국제적인 성격이 강한 기능주의 건축물이 많이 건축되었는데, 이를 통칭하여 국제건축양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건축이 성장함에 따라 이와 같은 경향은 점차 지역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1933년 나치 정권의 출현으로 독일 근대 건축가들의 큰 업적은 한때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유명한 많은 근대 건축가들이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초기 근대 건축 사상이 여러 나라에 전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모더니즘 건축은 20세기 전반기 건축의 중심적인 사상으로 산업의 발달과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으며, 19세기 이전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버리고, 시대적인 상황에 맞는 건축을 만들고자 했던 근대 건축 운동이었다. 모더니즘 건축은 당시의 매우 지배적인 운동이지만, 시대적인 배경 및 지역적 특성, 건축가의 성향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운동 및 작품으로 나타났으며, 세부적인 운동, 디자인 학파, 건축 양식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확산된 모더니즘 건축은 국제적으로 많은 건축가와 건축 교육자들에게 받아들여져 20세기를 지배하는 건축 사조가 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모던 사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의 건축은 다양한 사조에 기반한 건축과 지역적 특성 및 건축가 개인의 성향이 강조되는 건축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현대 건축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