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때로 작은 순간을 위해 모든 걸 투자한다. 조용한 공간에 홀로 앉아 차분히 전원을 올리곤 익숙한 선율의 깊이를 즐기는… 다시, 오디오가 주목받고 있다.
“1000만원대 스피커와 2000만원대 앰프를 찾던 한 중견기업 부사장이 그러더군요. 한동안 시계를 좋아해 수집했는데, 친구 집 오디오를 보곤 빠져들게 됐다고. 덕분에 음악에 빠져 지내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서 놓질 못하겠다고.”
한 오디오 컨설턴트가 밝힌 어느 오디오광의 입문 이유다. 또 다른 컨설턴트는 좀 더 체계적으로 원인을 분석했다.
“오디오를 그것도 하이엔드급 오디오를 찾는 분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30~50대 남성들입니다. 가격이 수천만원부터 억대를 호가하기 때문에 전문직이나 사업가, 기업 임원들처럼 여유 있는 층이 대부분이죠. 그분들 특징이요? 우선 첫째, 음악을 좋아하고 둘째, 좋은 소리를 찾아다닙니다. 셋째, 하루 중 잠깐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던데요.”
도대체 어떤 이들이 수천에서 수억원을 주고 좋은 소리를 찾아다니는지 누구냐고 이름을 묻자,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 그건 이 바닥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나 뭐라나.
“이미 알려진 분들 중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오디오광이세요. 그 외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분들이 많은데, 오디오가 취미이신 분들은 오디오로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기기 자체가 워낙 고가 아닙니까.”
▶오로지 홀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취미
하이엔드 오디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양원모 오디오스퀘어 대표는 말한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자기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오로지 오디오뿐”이라고. 곱씹어 생각해보니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액세서리와 달리 오디오는 공간이 있어야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만의 공간과 취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덕분에 다소 높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양 대표가 정리한 오디오 마니아의 특징은 3가지. 첫째, 소리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둘째, 누구나 듣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찾는다. 셋째, 오디오에 대해선 다소 폐쇄적이다. 공유하는 취미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다. 한참을 부연하곤 한마디 덧붙였다.
“시스템이 1억원은 넘어야 하이엔드 오디오라고 하는데, 국내에 수입되는 하이엔드 오디오는 정찰제가 아닙니다. 같은 기기도 대리점마다 가격이 다르죠. 그래서 오디오 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한데, 확실한 건 단가가 받쳐주면 소리는 보장된다는 겁니다.”
가성비가 구매의 척도인 시대에 ‘싼 게 비지떡’이라니. 알쏭달쏭 알다가도 모를 표정을 짓자 대뜸 시장 상황을 전했다.
“우선 소리부터 알아야 하는데, MP3하면 떠오르는 회사 ‘아이리버’가 최근 ‘아스텔앤컨’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뜬 건 알고 계시죠. 아스텔앤컨은 음악파일을 재생하는 소스기기인데, ‘AK240’ 모델은 가격이 거의 300만원입니다. 그냥 손에 들고 다니는 크기인데 300만원이에요. 그런데 잘 팔리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그만큼 좋은 소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거예요. 이분들은 잠재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고객들입니다.”
잠시 업계 상황을 더듬어 보면, 실제로 아이리버는 현재 MP3 대신 아스텔앤컨으로 통용되는 기업이 됐다. 2004년 MP3플레이어만으로 매출 4540억원을 올리며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사세가 줄어들었다. 2009년부터 매출이 하락했고, 2013년까지 줄곧 적자였다. 그러다 회생의 길을 찾았다. 고음질의 초고가 휴대용 프리미엄 오디오 ‘아스텔앤컨’이 든든한 대들보였다. 2012년 10월 출시한 ‘AK100’ 모델은 3개월 만에 10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2014년엔 매출 446억원, 영업이익 17억원으로 흑자 기업으로 돌아섰다. 이 아스텔앤컨의 가장 큰 고객군도 30~50대 남성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화질 TV에 걸맞은 소리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오디오 시스템 구성으로 옮겨오고 있다”며 “한동안 DSLR카메라를 직접 구성하던 취미생활과 다르지 않은 추세”라고 전했다.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 외에 국내 오디오 시장도 대형 홈오디오와 소형 포터블 시장이 각각의 특성에 맞게 자리 잡고 있다. 한동안 5.1채널 홈시어터가 주름잡던 홈오디오는 사운드바가 등장하며 다양한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고, 포터블 시장은 블루투스가 대중화되며 막힌 공간이 아닌 여기저기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음악 감상에 나선 이들이 늘고 있다.
소니코리아가 자체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 헤드폰·이어폰(모노 블루투스 타입 제외) 시장은 금액 기준으로 2011년 910억원에서 2014년 1236억원으로 성장했다. 이 중 2011년 32억원에 불과했던 블루투스 제품 비중이 2014년에는 381억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국내 블루투스 헤드폰·이어폰과 스피커 시장은 연 2배 이상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규모는 2012년 147억원, 2013년 271억원, 2014년 576억원에 달한다.
▶소리를 알 수 있는 첫 단계, 카 오디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디오 좀 안다는, 그러니까 프로필 취미 란에 ‘오디오’란 세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있는 걸까. 최근 부산의 한 중소기업 대표에게 억대 오디오를 구성해준 한 컨설턴트는 카오디오부터 시작하는 게 빠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타는 분이었는데, 자신의 카오디오와 똑같은 브랜드의 오디오를 구해달라고 하더군요. 고가 브랜드가 카오디오로 기본 장착돼 있어서 놀랐는데, 최상위 모델로 구성해봤더니 쉽게 1억원을 넘겼습니다. 그분은 전혀 오디오를 모르던 분인데,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차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다보니 같은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해요. 요즘 자동차 회사들이 카오디오에 공들이는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됐습니다.”
시장 상황은 어떤지 완성차 업체에 문의해보니 한 홍보팀 관계자가 “때로 오디오가 선택의 기준일 수도 있다”며 말을 꺼냈다.
“고급차 브랜드들이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와 함께 플래그십 차량에 장착할 카오디오를 개발하는 건 하이엔드 오디오의 명성을 업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차를 타는 이들이 이 오디오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자연스럽게 퀄리티 마케팅이 진행되는 것도 한몫 단단히 합니다. 고급차나 오디오 모두 30~50대 남성이라는 타깃은 서로 비슷하거나 같거든요. 동급 차종을 두 브랜드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 중엔 장착된 오디오를 먼저 살피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잠깐, 슬쩍 자동차업계로 시선을 돌려보면 실제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의 자동차업계 진출이 활발하다. 현대차가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며 첫 차 ‘EQ900’에 장착한 오디오는 하이엔드 브랜드 ‘렉시콘’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명차로 손꼽히는 ‘롤스로이스 팬텀’과 같은 브랜드다. MP3처럼 압축된 음원파일이 손실되면 실시간으로 복구해 최상의 음질로 플레이하는 ‘클래리 파이’ 기술까지 적용했다. 직접 타본 사람의 말을 빌면 ‘콘서트장 저리 가라’ 수준이란다. 기아차도 뒤질 세라 ‘신형 K7’에 미국 오디오 브랜드 ‘크렐(KRELL)’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개발 단계부터 크렐 본사와 연구를 진행해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구현했다는 후문이다. 생소할 수도 있지만 크렐은 혼다의 플래그십 세단 ‘레전드’에 탑재된 브랜드다. 현대·기아차는 준중형급 차종에 ‘JBL’과 ‘보스’ 오디오를 장착했지만 앞으로 하이엔드급 브랜드의 적용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수입차 시장은 하이엔드 오디오의 활약이 좀 더 활발하다. BMW는 ‘하만카돈’과 ‘뱅앤올룹슨’이 주로 장착되는데, 최고급 플래그십 세단 ‘뉴 7 시리즈’엔 영국 ‘바우어스 앤 윌킨스(B&W)’의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B&W는 세계 최고의 스튜디오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가 선택한 오디오 브랜드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음향을 책임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독일 ‘부메스터’와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개발했다. S클래스에 탑재되는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은 주행 상황과 관계없이 최적의 음감이 유지되도록 하고, 입체적인 서라운드 기능으로 앞좌석과 뒷좌석에 각각 특화된 사운드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영국의 ‘메리디안’, 렉서스도 ‘마크 레빈슨’의 오디오를 탑재했다.
▶오디오의 시작, 라이프스타일 오디오
하지만 카오디오로 소리의 참맛을 느껴보기엔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다. 알음알음 물어 하이엔드 오디오 수입업체 ‘로이코’의 정민석 팀장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정석 같은 답이 돌아왔다.
“우선 자주 들어야죠. 오디오는 다른 취미들처럼 입문서나 설명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귀가 트이면 절로 오디오가 좋아질 걸요. 그런데 그러려면 좋은 소스 기기를 경험해야 합니다. 아무리 앰프나 스피커가 좋아도 CD나 MP3플레이어 때문에 소리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아, 물론 현재는 CD의 시대가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스트리밍 시대예요. 스트리밍이 CD의 음질을 뛰어넘진 못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걸 바로 찾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 모든 음원을 경험하기에 최적의 기기는 아마도 라이프스타일 오디오일 겁니다. 여기 보시는 헤드폰이나 PC스피커, 사운드바가 쉽게 말해 라이프스타일 오디오예요. 소리를 알기 위해선 보다 좋은, 그러니까 하이엔드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를 경험하는 게 빠를 겁니다. 억대 기기를 생산하는 브랜드에도 헤드폰이나 이어폰, PC스피커가 있거든요. 거기에서부터 시작해 보시죠.”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첫 번째 ‘그 남자의 오디오’는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로 시작한다. 가격은 수십만원부터 600만원 이하로 정했다. 성공(?!)적인 연말정산 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향기기의 역사
·1857년 ‘포노토그래프’
폰오토그래프라 불리기도 했다. 1857년 프랑스의 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이 발명했는데, 공기를 통한 전달로 음파를 기록하는 최초의 장치다.
·1877년 ‘포노그래프’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다. 원통형 실린더를 사용했는데, 최초로 녹음한 소리는 “메리는 어린 양을 갖고 있었다”였다.
·1877년 ‘무빙코일 변화기 스피커’
독일의 에른스트 지멘스가 이론을 확립하고 특허를 신청했다. 관악기의 관 형태로 생긴 진동판을 만들어 축음기에 사용, 호른형 스피커로 사용됐다.
·1887년 ‘그라모폰’
에밀 베를리너가 발명했다. 넓적한 원판에 소리홈을 새긴 틀로 음반을 찍어냈다. 이 음반과 재생기를 그라모폰이라 했다.
·1904년 ‘크리스털 라디오’
인도의 찬드라 보즈와 미국의 그린리프 위티어 피카드가 발명했다. 신호가 미약해 한두 사람만 들을 수 있었다. 전력이 없어도 동작이 가능했다.
·1904년 ‘플레밍 밸브’
플레밍이 발명한 2극관이다.
·1906년 ‘3극 진공관’
미국의 리 드 포리스트가 발명한 라디오 수신의 핵심 부품이다. 이 3극 진공관으로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었다.
·1910년대 ‘진공관 라디오’
초기의 진공관 라디오는 고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거대한 가구와 같았다.
·1920년 ‘AM라디오’
1920년 정규 음향방송이 미국에서 시작됐다. 대역폭이 10kHz에 불과해 음질이 낮았다.
·1934년 ‘FM라디오 방송 시작’
1918년 에드윈 하워드 암스트롱이 FM라디오 특허를 낸 후 첫 시험방송이 시작됐다.
·1948년 ‘LP’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이 탄생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에 플라스틱을 주목했고 염화비닐 수지로 레코드를 계량해 나갔다.
·1963년 ‘카세트테이프’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발명했다. 긴 테이프에 자기를 띄게 해 음원을 저장한다.
·1976년 ‘CD’
필립스와 소니가 고안한 CD-DA(CD-Digital Audio) 기술로 만들어진 오디오 매체다. 1978년엔 60분가량 녹음할 수 있는 CD가 탄생했고, 1982년엔 상용제품이 등장했다. 기존 LP나 테이프에 비해 음질이 월등히 뛰어났다.
·1987년 ‘MP3’
MPEG1의 오디오 규격으로 개발된 손실 압축 포맷으로 압축이 안 된 PCM 음원보다 용량을 10분의 1로 줄인 음원 포맷이다.
·2003년 ‘FLAC’
오디오 데이터 압축을 위한 무손실 압축 포맷이다. 현재 가장 많이 보급됐다.
B&W ‘Panorama 2’
TV사운드를 고음질 사운드로 즐길 수 있는 사운드바. 트위터×1, 미드레인지×2, 서라운드×4, 서브우퍼×2 등 9개의 유닛이 구동된다. 기기에 손을 근접해 디스플레이 메뉴를 조작할 수 있다. 370만원.
LINN ‘Kiko System’
스튜디오의 원음을 재생하는 DSM플레이어(DS플레이어에 프리앰프를 합친 기기)다.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하고 액티브 2-way스피커가 장착됐다. 크기는 콤팩트하지만 사운드는 파워풀하다. 600만원.
B&W ‘A7’
B&W의 음향 공학과 애플 에어플레이 무선 스트리밍이 융합된 제품이다. 에어플레이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고, 전용 앱으로 설정과 관리가 가능하다. 케블라 서브우퍼와 4개의 고품질 스테레오 드라이버로 구성됐다. 128만원.
McIntosh ‘McAire’
매킨토시의 콤팩트 오디오 시스템이다. 내장된 에어플레이로 아이패드, 아이폰 등에 저장된 음악뿐만 아니라 PC에서 무선으로 음악을 스트리밍할 수 있다. 3-way 스피커가 장착됐다. 480만원.
B&W ‘P5 Wireless’
고품질 드라이버와 소재에 완충 시 17시간 지속성을 갖춘 무선 Hi-Fi 블루투스 헤드폰이다. 64만9000원.
B&W ‘P7’
자석 고정식 이어패드로 간단히 교환할 수 있다. 아이폰 인증 케이블로 통화나 음악 감상을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다. 64만9000원.
Master&Dynamic ‘MH40’
오버 이어 헤드폰으로 어떤 장소에도 휴대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소리가 풍부하고 수십 년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이 뛰어나다. 55만원.
B&W ‘Zeppelin Wireless’
최첨단 Hi-Fi 테크놀로지와 매끄러운 와이어리스 재생 기능이 융합됐다. 에어플레이를 사용하면 iOS 디바이스, 맥(Mac)이나 iTunes가 탑재된 PC로부터 음악을 쉽게 스트리밍할 수 있다. 95만9000원.
[안재형 기자 자료 오디오스퀘어(audiosqr.blog.me) 로이코(www.roy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