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문고리 3인방’… 왜 그들은 타깃이 됐을까
입력 : 2015.01.08 15:04:27
수정 : 2015.10.08 15:04:53
김기춘 비서실장 등 비서관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군주의 측근들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우면 사람들은 모두 군주가 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마키아벨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현명하다고 생각할까?
지난 한 달 간 시중엔 ‘권력의 측근’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온통 ‘문고리 3인방’ 혹은 ‘정윤회와 십상시’ 얘기로 들끓었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가 이른바 청와대가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이후 그 파문은 일파로 번졌다. 이 문건의 내용이 사실일까?
일단 국민의 절반 이상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이 청와대 공식문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2월 15일에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과반수인 55.7%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실체에 “청와대 공식문건으로 나름 근거가 있는 내용”이라는 대답을 고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의 주장과 같이 “찌라시라고 하는 정보지 수준으로 전혀 믿을 바가 못 된다”고 밝힌 응답자는 22.2%에 불과했다.
靑 초기엔 ‘황당한 찌라시’로 평가절하
이런 국민들의 정서로 보면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정작 청와대는 이 보도가 나온 날 ‘어이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일간지 1면 톱에 보도된 충격적인 기사로 청와대가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본 후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 때문에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사를 읽어본 사람 대부분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이어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진지하게 대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단 이 문건의 가장 중요한 팩트는 ‘정윤회 모임’이다. 정윤회 씨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라는 이재만(총무), 정호성(1부속), 안봉근(2부속) 비서관을 포함해 ‘십상시’라 불리는 10여 명의 청와대 인사들과 한 달에 두 번씩 강남의 유명 음식점에서 만찬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기자들도 이 부분에선 파안대소했다.
서너 명이 1년에 한두 번 몰래 모였다면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잦은 대규모 모임은 대통령을 근접수행하면서 24시간 대기하는 이들로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문건 중 까맣게 가려진 부분의 내용 중엔 황당한 것들이 더 많았다. 당시 청와대의 실세로 꼽히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을 몰아내자는 모의에 이 수석의 최측근이 참여했다는 등 비상식적인 내용이 많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12월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예결위 위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찌라시’라고 쐐기를 박은 것도 이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1월 28일 당일 오전 브리핑에서 ‘찌라시’라고 단언했다. 이 문건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고리 3인방’ 왜 타깃이 됐나
이처럼 문서의 문건은 팩트(사실)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석자들의 증언은 물론 모임의 장소로 지목된 강남 JS가든이란 음식점 CCTV 등 아주 간단히 확인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임은 왜 ‘작문’이 됐을까. ‘3인방’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런 문건에 등장할까.
때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모두 ‘국회 의원회관 545호의 16년 동지’다. 의원회관 545호는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사용했던 사무실이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0·26사태로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후 10여 년의 길고 긴 칩거생활을 끝내고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초선 의원으로 박 대통령이 의원회관 545호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 순간부터 이재만·이춘상·정호성·안봉근 등 4인방이 박 대통령의 옆을 지켰다. 무려 16년이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열흘 남짓 남겨놓고 이춘상 보좌관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이제 나머지 세 명만 남게 됐다.
이들을 뽑은 것이 바로 정윤회 씨다. 정씨는 당시 무급으로 일하는 입법보조원이었지만 다들 ‘비서실장’ 혹은 ‘실장’이라고 불렀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년간 초선 의원에서 재선의원, 당 부총재,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지만 3인은 항상 대통령의 옆에 있었다. 미혼 여성 정치인, 무려 20년 가까운 길고 고독했던 칩거, 경제발전을 이룬 현대사의 주인공이자 독재자였던 전직 대통령의 딸 등 박 대통령만의 특징은 독특한 정치행보를 만들어냈고 이들 비서진은 그 여정의 동반자였다. 보통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이나 비서진은 1년에 한두 명씩은 꼭 바뀐다. 16년 동안 한 사람도 떠나지 않고 똘똘 뭉쳐 있는 경우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희귀한 사례다.
▶‘박근혜 충성’으로 ‘올인’한 인생
맏형 격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말없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샌님’같은 인사다. 그의 한 지인은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인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비서관은 대선 직전까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살았다. 그러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창성동으로 이사를 왔다.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야 하는데 집이 너무 멀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그의 딸이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는 점이다. 이 비서관은 갑작스레 강남에서 강북으로 전학을 와야 하는 딸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즉시 거처를 옮겼다. ‘대통령을 모시는 일이어서 딸도 이해할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이 비서관은 최근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오며 택시 앞자리에 타고 귀가해서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쇼’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지인들은 ‘너무 이재만다운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인사, 재정, 행정, 구매, 시설, 위민 등 6개 팀을 관장하며 비서관실 중 가장 많은 76명의 직원을 거느린다. 예전 정부에선 수석급인 ‘총무기획관’자리지만 이 비서관은 예전 정부 때 방은 너무 넓다며 절반으로 줄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대통령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뜻이다. 실제 정호성 1부속, 안봉근 2부속 비서관은 본관에서 근무하며 항상 대통령의 옆에 있다. 그러나 이 비서관은 본관에서 500m가량 떨어진 위민2관에 사무실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수시로 만난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 의원의 질문에 “매일 뵙지는 못 한다”면서도 “필요한 보고사안이 있을 때 뵙는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부총리나 장관도 독대를 거의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에서 그의 한마디가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려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박 대통령은 말 많고 골치 아픈 인사를 주관하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이 비서관을 배석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 대통령의 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때문에 한때 이 비서관의 모교인 한양대 출신들이 비선라인을 타고 득세했다는 소문도 많이 돌았다.
▶‘결재판 권력’과 ‘휴대폰 권력’
정호성 1부속 비서관은 ‘결재판 권력’으로, 안봉근 2부속 비서관은 ‘휴대폰 권력’으로도 불린다. 정책과 메시지는 모두 정 비서관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전통적인 1부속실의 업무 외에 정 비서관은 외국 정상과의 정상회담에도 배석을 하는 등 국정운영을 큰 그림으로 팔로업하고 있는 청와대의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역대 청와대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었던 ‘상황실장’자리를 없앴다. 특정 인사의 국정전횡을 막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반대로 국정을 실시간으로 큰 그림으로 그리는 역할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런 역할은 김기춘 비서실장 외에 정 비서관 정도만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다.
안 비서관은 직접 대통령을 수행하며 경호와 정무분야의 민원도 올리는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원래 2부속실은 역대 대통령의 배우자를 맡던 곳이어서 독신인 박 대통령 입장에선 필요 없는 부서였다. 한때 폐지설도 돌던 2부속실을 존속시키며 수행비서 역할을 해오던 안 비서관을 앉혀 민원의 통로 역할까지 맡긴 셈이다. 여당과 야당 혹은 여타 정치권 등의 민원과 제안이 모두 안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국회의장이나 여당대표 등의 주요인사의 통화를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안 비서관이 맡는다고 한다.
▶박 대통령 손발이자 ‘가장 약한 고리’
이들은 이처럼 박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박 대통령에게 어쩌면 ‘가장 약한 고리’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박 대통령은 유난히 ‘만기친람’하는 스타일이다.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사람들은 뭔가 ‘이유’를 찾아야 했는데 이들은 너무 좋은 대상이었다. 일단 외부 접촉이 거의 없는 비밀스런 존재여서 사람들이 이들의 실체를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꾸며내도 된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적개심도 기여한 부분이 있다.
실제 박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들 3인방은 쉬운 ‘술자리 안줏감’이었다.
예를 들어 기관장을 뽑을 때 10명의 후보 중 1명이 결국 기관장이 되면 나머지 9명은 모두 ‘김기춘과 3인방’을 욕했다. 근거가 있는지 여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뜬금없이 청와대를 비판하는 경우도 꽤 됐다. 실제 시중에 나도는 얘기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워낙 많다. 화제가 됐던 몇 건의 인선에선 유력한 후보로 언론에 오르내린 인사들 중 아예 최종 후보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여하간 이런 이유로 이들이 뭔가를 조작하고 있다는 얘기는 정권 초부터 지난 2년간 모임과 모임을 통해 수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박 대통령을 흠모하는 쪽이나 미워하는 쪽이나 모두에게 3인방은 ‘타도 대상’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은 ‘피보다 진한 물이 있더라’고 말할 정도로 정윤회 씨와 이들에게 배타적이었다. 특히 과거 마약복용 등 문제가 있었던 박 회장을 주의 깊게 ‘관리’해야 했던 이들에게 박 회장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실패한 국정엔 ‘핑계’가 항상 필요하다. 이들이 ‘사냥감’이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누구보다도 가깝게 권력의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