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걸 기자의 Blue House Diary] 청와대 안방 관리 1년, 베일에 싸인 김기춘 실장
입력 : 2014.09.25 14:35:01
수정 : 2015.06.01 14:40:16
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가 어느덧 1년을 맞았다.
김 실장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인 8월 5일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비서관을 전격 교체할 때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한국 정치의 중심엔 김기춘 실장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1년은 ‘김기춘’이란 이름 석 자를 빼고는 한국 정치를 말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82세에 마쳤다’라는 글 사무실에 걸어놔
김 실장은 1939년생으로 올해 75세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역대 최고령 청와대비서실장이란 기록을 스스로 세워 가고 있다. 최근 자신의 집무실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70세에 이뤄졌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90세에 완성했으며, 괴테는 파우스트를 82세에 마쳤다’는 영어 문구를 걸어 놓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김 실장 체제 1년’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는 김 실장이 재임기간 내내 외부와 일체 교류하지 않고 잠행해 왔기 때문에 더 그렇다.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언론 등에선 호기심이 점점 커진 탓도 있다.
김 실장은 일단 걸어온 인생의 족적부터 눈에 띈다. 30대 초반인 1972년에 이미 유신헌법 초안을 만든 법무부 검사였다. 이어 △박정희 정권 말기 청와대 법률비서관 △고 육영수여사 피격 당시 중앙정보부 담당 검사 △법무부장관(1991.5.27~1992.10.8) △15~17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특히 법무부장관 퇴임 직후 ‘초원복국집’ 사건에 연루되는 등 현대사의 무대에 뛰어들어 굴곡을 직접 피부로 겪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김 실장의 살아 있는 ‘현장 경륜’과 ‘지식’을 높게 사는 반면, 야권에선 김 실장이야말로 ‘유신회귀’나 ‘귄위주의 인사’로 치부한다.
박 대통령이 1년 전 당시 이 같은 김 실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것은 ‘강한 청와대’에 대한 요구로 해석됐다. 실제로 이 기대는 일정부분 이상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김 실장은 취임 직후부터 외부일정을 모두 접고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대통령 보필에만 집중했다. 정부부처와 국회에 대한 강력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여야 정치권과의 창구역할까지 자임하며 청와대 중심의 일사불란한 국정운영을 안착시켰다. ‘기춘대원군’이나 ‘왕실장’이란 호칭은 이런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김 실장은 비서실장으로 들어오자 국정의 핵심 인선을 박 대통령과 본인이 믿을 만한 인사로 채우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김 실장을 신임하는 박 대통령이 비슷한 배경의 인사들을 마찬가지로 신임했기 때문인지 행정·사법부의 요직은 김 실장과 연관 있는 인사들로 상당부분 채워지며 청와대의 구심력은 급격히 강화됐다. 취임 23일 만에 터진 ‘통합진보당 사태’가 빠른 속도로 정리된 점이나 취임 당시 논란이 됐던 ‘경제민주화’ 등의 이슈가 어느새 소멸돼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해진 환경도 공안검사 출신인 ‘김기춘 효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이로 인해 각종 논란, 예를 들면 ‘채동욱 검찰총장 사생활 파문’과 ‘기초연금 공약파기 논란’ 등에선 야당의 단골 표적이 됐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안의 최종결정을 청와대가 도맡으며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김 실장의 업무처리 방식으로 볼 때 야당의 뭇매를 피해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이런 방식의 업무처리가 결국 김 실장을 ‘정권의 아이콘’으로 만들며 야당의 사퇴 공세를 유발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정권 초 불안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김 실장 방식의 국정장악은 반드시 필요했다는 분석 또한 꽤 많다.
김기춘 실장이 항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지금 젊은 세대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의 자기관리나 독특한 업무처리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 그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박 대통령에 대한 ‘극도의 충성심’은 물론이고, 임명 첫날부터 보여준 ‘국정과 조직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몰입하는 태도’이다. 요즘같이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세태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특징들이다. 지난해 부임 직후 청와대의 고위관계자가 “그(김기춘 실장)는 정말 다르다”고 말한 대목이 연상된다.
‘윗분의 뜻을 받들어’ 극단적 충성심 표현
김 실장은 임명 첫날 새 비서실장으로 국민들에게 생중계되는 첫 인사 자리에서 여야 5자회담을 제안하며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는 권위주의에 반감이 있는 일부 국민들에게 ‘국민보다 대통령을 더 떠받드느냐’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꾸로 박 대통령도 김 실장을 ‘무한신뢰’하는 관계다. 김 실장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박 대통령 부녀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 출신이다. 정수장학회 수혜자들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도 지냈다. 박 대통령은 이 정수장학회의 5대, 8대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끊고 살지만 가끔씩 외부인과 만날 때 박 대통령을 ‘ABCDE’로 표현하곤 한다. 지난 연말 김 실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 얘기를 했다. 이외에도 복수의 관계자들이 이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본인이 ‘개발해 낸’ 얘기인 모양이다.